
[일요서울|이범희 기자] 동양그룹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5만 명에 달하는 개인투자자와 그룹 임직원들의 피눈물을 낳은 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뉴스와 신문 등이 연일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고, 하루가 멀다 하고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다. 그렇다면 1957년 창업 이래 재계 5위까지 올랐던 굴지의 대기업이 몰락 위기에 처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오너 일가의 ‘비선라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인물의 실체와 이번 사태의 연계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조명해본다. 또한 이번 사태가 ‘내조의 여왕’으로 불리던 이혜경 부회장의 등장과 2008년 동양그룹과 연을 맺은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의 전횡에서 출발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비전문가가 구조조정 …현 회장 입지 줄어
오너일가 알력다툼·책임전가 등 진흙탕 싸움
대기업에 문제가 생기면 꼭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이른바 숨겨진 실세들이다. SK그룹의 김원홍 전 고문이 그랬고 이번에 무너진 동양그룹은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다. 일반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고 김 대표 역시 입장자료를 통해 “이번 일과는 무관하다”며 연계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동양그룹 내부에선 그를 계열사 자산 매각을 지연시키며 이번 위기를 야기한 인물로 지목한다.
김 대표는 1975년생(39세다)이다. 그룹 회장인 현 회장(1949년생·64세)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그룹 장악력에선 현 회장을 뛰어넘었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한 관계자는 “어린 나이에 사장에 올라 그의 이력을 궁금해하는 내부 인사가 많았다. 하지만 오너 일가가 신뢰하는 사람이었기에 함부로 그의 이력을 들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김 대표는 2008년 동양그룹에 입사 후 초고속 승진을 통해 계열사인 동양네트웍스의 각자대표에 올랐다. 함께 오른 인물이 현 회장의 아들인 현승담 대표인 것만 봐도 그의 영향력이 상당했음을 갈음한다. 현승담 대표의 멘토 역할을 했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또한 그가 근무하는 동양네트웍스 강남 사옥에는 그의 집무실과 이 부회장의 집무실만이 있었다고 한다. 현 회장의 집무실은 따로 없었다. 그룹 내 컨트롤타워인 전략기획실이 별도로 있었음에도 김 대표 머리에서 나오는 전략들이 더 신뢰를 얻었다는 게 내부 고위 인사들의 중론이다.
특히 웨스트파인 골프장 매각과 관련해 현 회장의 입김보다 김 대표의 입김이 더 컸다는 후문이다.
동양그룹은 지난해 초 동양증권을 통해 동양레저가 보유 중인 골프장을 팔기 위해 인수자를 물색했다. 장부가인 790억 원에는 못 미쳤지만 500억~600억 원 수준에 사겠다는 투자자가 있었다. 유동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이 가격을 받고서라도 팔아야 한다는 내부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동양그룹은 팔지 않았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김 대표가 현 회장에게 “나중에 팔면 600억 원 이상 받을 수 있다”고 설득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현 회장은 김 대표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골프장은 동양네트웍스로 넘겨졌다.
더 큰 문제는 비전문가인 그가 기업 구조조정 전반을 총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룹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동양네트웍스로의 자산 집중, 동양매직 매각 방안, 동양시멘트의 전격적인 법정관리 신청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게다가 김 대표의 입사엔 이 부회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동양매직과 동양메이저 고문 등으로 남편을 측면 지원하던 이 부회장이 ‘동양의 디자인경영’을 선언하면서 경영일선에 등장한 직후 인테리어와 디자인 업무에 능한 김 대표와 인연을 맺었고, 이 인연으로 동양그룹에 추천됐다는 것이다.
이씨 회사를 현 씨가 먹으려다 ‘배탈(?)’
그렇다면 동양그룹을 총괄했던 현 회장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검찰 출신이기에 그룹 내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이를 수수방관했다는 게 쉽게 이해가지 않는다. 그러나 내부 사정에 밝은 인사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납득이 되는 부분도 일부 드러난다.
재계 최초의 ‘사위 경영인’이란 수식어로 그룹 총수 자리에 올랐지만 장모(이관희 서남재단 이사장)가 살아 있고, 아내가 경영에 관여하면서 입지가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고 추측한다.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남편의 경영 능력 등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는 말이 있다”면서 “현 회장의 결정이 가끔 번복되는 것은 이 부회장의 입김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일각에선 검사 출신의 현 회장이 1983년 동양시멘트 대표가 됐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도 그룹 지주회사인 ㈜동양의 지분에서 부인과 장모에게 뒤졌다. 똑똑한 사위에게 경영을 맡겼지만 그룹 소유권은 여전히 ‘이 씨 집안’ 것이었다. 그러나 현 회장이 2000년대 들어 금융 계열사를 인수하면서 지분을 높여 부인을 제치고 1대 주주가 됐다. 이런 점이 부인이나 처가를 자극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생인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과 달리 내조에 전념하던 이 부회장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시점이 공교롭게도 현 회장이 1대 주주가 되던 무렵이다. 김 대표가 입사한 시기도 이쯤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는 ‘책임론’과 ‘그룹 내 실세 주장’에 대해 공식 반박했다. 그는 입장자료를 통해 “동양그룹의 전반적인 구조조정 계획과 실행은 현 회장 및 전략기획본부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룹 내부 실세라는 설은 다른 임원과의 갈등으로 생긴 오해”라고 해명했다.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동양시멘트 법정관리 신청 전날 동양시멘트 재무팀장의 자금 요청을 받고 부도에 직면해 있는 상황을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경영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고, 국정감사 증인으로 이 부회장과 함께 신청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