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동양그룹 사태로 유동성에 대한 경각심이 증가하면서 동부그룹의 위기가 주목받고 있다. 동부그룹의 주력 계열사 6곳의 차입금은 무려 5조 원을 웃돈다. 이중 1년 내 만기가 도래하는 금액은 절반이 넘어간다. 게다가 비금융부문의 자금 경색이 심각해지면서 금융 계열사가 비금융 계열사를 편법 지원했을 개연성에도 초점이 맞춰지는 상황이다.

차입금 최다 기록한 제철ㆍ건설…단기채 의존
수익 낮아도 비용은 높아…악순환 고리 깨야
동부그룹의 주력 계열사 차입금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동부그룹 계열사인 동부제철, 동부건설, 동부팜한농, 동부메탈, 동부하이텍, 동부씨엔아이 등 6개사의 지난 6월 말 기준 차입금 합산 규모는 총 5조5000억 원에 달했다.
이중 1년 내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 비중은 56.1%로 3조 원을 넘나든다. 게다가 이 6개사가 최근 1~2년간 발행한 회사채는 BBB나 BB등급이 대다수로, 개인투자자들이 사들인 물량이 상당할 것으로 파악된다.
이처럼 차입금 구조가 단기성을 띠는 것은 안정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 쉴 새 없이 찾아오는 만기 속에서 조금이라도 자금조달이 어긋나면 당장 ‘제2의 동양’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계열사 중 동부제철의 자금줄은 휘청한 지 오래다. 동부제철의 순차입금은 지난 6월 말 기준 2조2838억 원이다. 그중 1년 내 만기가 돌아오는 유동부채는 단기차입금 3672억 원, 유동성장기차입금 3226억 원, 유동성사채 5828억 원으로 총 1조3048억 원이다.
반면 동부제철의 현금은 현금성자산을 포함해도 816억 원이며 상반기 당기순손실은 827억 원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같은 기간 이자비용은 927억 원으로 이자비용이 영업이익보다 많은 아이러니를 연출했다.
부채와 자산의 비율이 어그러져 있는 이 간극을 동부제철은 계속 회사채로 메우는 중이다.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는 이익을 내서 갚는 것이 아니라 다시 차환발행해 막는 식이다. 동부제철은 오는 16일에도 차환용 회사채 400억 원을 발행할 계획이다.
게다가 이번 회사채 발행금리는 무려 연 10.07%로 예상되기도 했다. 가뜩이나 죽어 있는 회사채 시장에서 신용등급도 BBB인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금리밴드를 높인 탓이다. 막판에 정책금융기관 중 한 곳이 물량 절반을 인수하기로 결정하면서 발행금리는 9.5%대로 내려갔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회사채 발행 계획을 동양그룹 사태가 불거진 지 이틀 만에 알렸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동부제철이 상환해야 할 회사채는 다가오는 4분기에만 2370억 원이고 내년에도 줄줄이 만기가 예정돼 있다. 결국 시장의 분위기를 따질 새도 없이 자금조달이 시급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계열사인 동부건설도 동부제철과 함께 우려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동부건설의 차입금은 내년 상반기까지 만기가 예정된 금액이 5198억 원이며 부채비율은 500%에 가깝다. 게다가 지난 8월에는 나이스신용평가가 부여한 신용등급이 BBB에서 BBB-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나이스신평은 “공공 공사의 수주경쟁이 심화한 데다 주택경기가 침체되는 등 비우호적인 산업환경이 지속된 가운데 올해 상반기 1170억 원의 주택 관련 대손충당부채가 설정됐다”고 지적했다.
앞서 한기평도 동부건설의 높은 차입금과 단기화된 만기구조 등 재무위험이 확대된 것을 지적한 바 있다. 또 적절한 금융비용 충당을 위해서는 사실상 레버리지 축소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꼬집었다. 더불어 개선된 수익성이 견지되지 못하면 영업창출현금으로 금융비용을 충당하지 못하는 구조가 지속될 것으로 진단했다.
이는 비단 동부건설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부그룹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보통 장기 차입금의 원천으로 꼽히는 회사채가 동부의 경우에는 대부분 1∼2년물에 집중돼 있는 점이 그러하다. 즉 계열 전반의 차입구조 개선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자칫 재무 부담이 가중되면 그룹의 유동성 문제가 급속도로 번지게 된다.
한기평은 “동부그룹의 비금융부문 주요 계열사들은 실적 저하와 저조한 수익성, 과도한 금융비용 부담, 영업현금창출 규모를 웃도는 투자에 따른 차입규모 증가 등의 요인이 악순환하면서 과중한 재무 부담을 지고 있다”며 “재무 부담 가중 시 그룹 전반의 유동성 위험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동양그룹과 같은 사태를 차단하겠다며 동부그룹을 전면 겨냥하고 나섰다. 동양그룹 계열사 채권을 동양증권이 팔았듯 동부그룹 역시 금융 계열사를 통해 편법으로 자금을 끌어모았을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 또 부채가 많은 동부그룹의 재무상태를 점검해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최근 동부그룹의 자금난이 가중되는 점과 계열 금융사를 거느린 점에서 동양그룹과 유사한 측면이 있음에 주목했다. 현재 금감원이 주시하는 곳은 동부화재, 동부증권, 동부저축은행 등으로 알려져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까지 드러난 문제점은 없지만 계열사 자금난이 심화되면 최후의 카드로 금융 계열사에 손댈 수도 있어 미리 대비하려는 것”이라며 “동양그룹 역시 동양증권을 통한 불완전판매와 계열사 부당 지원이 애초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