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 “경영권 포기”선언 직후 거액 빼돌려(?)
‘고의 법정관리 신청’ 등 소문 무성한 웅진그룹
동양과 웅진그룹은 회장의 부인이 개인 재산을 빼돌리려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동양그룹 주요 계열사의 법정관리 신청 파장을 일으킨 가운데 부인인 이혜경 부회장이 동양증권 대여금고에서 거액을 인출해 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부회장은 현 회장의 부인이자 동양그룹 창업자인 고 이양구 회장의 큰딸이다.
동양증권 노조는 “법정관리 신청 직후 6억 원가량의 인출이 이뤄졌다”며 “현 회장이 사재를 털어 그룹의 위기를 막으려 했다는 주장과 사과는 모두 거짓이다”고 말했다. 앞서 현 회장은 지난 3일 언론을 통해 “동양그룹의 빚을 갚기 위해 가족 생활비 통장까지 모두 털었다”고 밝힌 바 있다.
조사에 들어간 금융감독원은 “이 부회장은 동양ㆍ동양레저ㆍ동양인터내셔널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다음 날인 지난 1일 수행원들과 함께 동양증권 대여금고에서 물건을 찾아갔으며, 이 물건은 금괴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일행이 떠난 자리에서 금괴 포장지와 상자가 발견된 것. 금감원은 대여금고가 있는 본사 2층의 폐쇄회로 TV 분석 작업을 벌였지만 어떤 물건을 찾아갔는지는 확인하지 못해 이번 의혹이 미궁에 빠질 위기에 처한 상태다.
또 이 부회장은 동양생명에서 최근까지 매달 3000만 원의 고문료를 받아 왔다. 동양생명에서 공식적인 직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광고와 디자인 업무에서 일부 조언을 한다는 이유로 고문료 형식으로 거액을 받아온 것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현 회장과 이 부회장의 소유 재산은 동양그룹 각 계열사의 지분을 제외하고는 서울 성북동 자택 정도가 전부다. 공식적으로 경영 사정 악화 돌파를 위해 사재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의혹과 같이 오너 일가가 사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나 미술품, 귀금속 등의 방법으로 재산을 보유하고 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품목들은 사생활 보호에 따라 금융당국도 정확하게 조사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동양그룹 측은 “이 부회장의 인출 사실에 대해 회사 측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대여금고 자체가 개인금고이기 때문에 입출금 정보도 개인정보에 해당하므로 사실상 파악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동양증권 노조 측은 “현재 이 부회장의 재산 빼돌리기 정황을 입증할 방법을 논의 중이다”며 “우선은 현 회장 고소 관련 사항부터 진행할 계획”임을 밝혔다.
웅진그룹 역시 윤석금 회장의 부인 김향숙씨가 계열사인 극동건설 부도로 웅진그룹의 주가가 하락하기 이틀 전부터 웅진씽크빅 주식 4만4000주를 모두 팔아 비난을 받았다. 또 법정관리 신청 직전 웅진씽크빅과 웅진에너지에서 빌린 530억 원을 웅진홀딩스로부터 조기상환해 오너일가가 계획적으로 움직였다는 의혹까지 샀다. 사전에 법정관리를 염두에 두고 계열사 지원 차원에서 대여금을 미리 갚았을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극동건설이 법정관리 신청 직전 자회사인 오션스위츠 호텔 지분 100%를 계열사인 웅진식품에 매각한 것 역시 논란이 됐다. 영업이익 14억 원, 매출 107억 원을 기록한 오션스위츠를 웅진식품이 34억 원에 사들이면서 법정관리 직전 알짜 회사를 계열사에 넘겨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행위들이 모두 법정관리 신청 하루이틀 전에 일어난 것으로 볼 때 오너일가가 경영권 방어를 위해 계획적으로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던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다수다.
이에 웅진홀딩스는 “본래 짧은 기간만 쓰려고 했던 자금이기 때문에 상환일보다 3일 일찍 갚은 것을 조기상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말들로 의혹을 잠재우고자 했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잡음들로 인해 윤 회장은 “초심으로 돌아가 어려운 상황을 개선해 경영을 정상화시키는 책임을 다하고자 했으나 여러 오해가 생기고 있다”며 웅진홀딩스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주식 팔아 세금 낸 강덕수 STX 회장, 사실일까
팬택 떠난 박병엽 부회장 4600억 원 축적 의혹
STX 역시 그룹 공중분해 위기에 직면하면서 아직까지 난항을 겪고 있다. STX를 성장시킨 원동력이었던 과잉투자가 덫이 된 것. 동양·웅진그룹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황 속에서 강덕수 회장은 이들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강 회장은 그룹의 워크아웃, 법정관리 위기가 오자 가장 먼저 내부 임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사과와 향후의 계획을 설명했다. 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백의종군하겠다며 보유 지분을 포함한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서울상공회의소 부장직 등을 모두 물러나며 그룹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강 회장은 사재출연까지 강행했음에도 이사회의 결정에 의해 STX중공업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에서도 물러났다. 그룹 회생을 위해 과감히 CEO 직함과 지분을 포기한 것이다.
이후에도 강 회장은 딸이 대주주인 STX건설의 신축공사 물량 몰아주기로 인한 증여세 납부를 위해 그룹 보유 지분 1.53%, 모두 92만3000여 주를 팔아 43억 원을 확보한 뒤 납부한 바 있다. 그룹의 위기와 여력 부족 속에 국세청이 공지한 날짜에 맞춰 세금을 내지 못하고 국세 체납 상태로 넘어가게 되자 지분을 팔아서 세금을 납부한 것이다.
한편 STX 채권단은 STX중공업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은 예정대로 후임자를 물색하되 STX엔진 이사회 의장직은 강 회장으로 유지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관계자는 “강 회장이 그동안 수차례 백의종군할 뜻을 밝혔고, 그룹 수장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채권은행 주문에 따라 일부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이 그동안의 강경한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서자 우리은행을 비롯한 채권은행 다수도 이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져 STX의 향방에 더욱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앞면은 고군분투 뒷면도 일치할까
팬택도 3000여 명의 전 직원을 대상으로 무급휴직 신청자를 받아 800명의 인원 감원에 들어갈 만큼 경영난에 몸살을 앓고 있다.
팬택은 올 상반기 561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으며 지난해에는 776억 원의 적자를 기록해 2007년 1254억 원 적자 기록 이후 5년 만에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현재 스마트폰 시장이 삼성전자와 애플에 장악되다시피 하면서 팬택과 같은 3위 이하의 제조사들은 대규모 자본과 마케팅을 펼치는 1·2위 기업들에 밀린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이에 박병엽 전 부회장은 경영난과 건강상의 이유로 부회장직에서 물러난 상태다.
하지만 박 부회장이 떠난 뒤 “박 부회장이 총 매출 4600억 원대에 이르는 개인 회사를 5개나 보유하면서 매출의 상당 부분을 팬택에서 올려 왔다”며 “제몫을 챙기기 위한 일감 몰아주기가 자행돼 왔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박 전 부회장 일가가 소유한 회사는 ‘팬택씨앤아이’와 ‘피앤에스네트웍스’ 두 곳이다. IT 컨설팅업체 ‘팬택씨앤아이’는 박 전 부회장이 100% 지분을 갖고 있으며 국제물류주선업체인 ‘피앤에스네트웍스’는 박 전 부회장의 40% 지분 외에 두 아들 성준, 성훈씨가 각각 30%씩 보유하고 있다.
팬택씨앤아이는 모바일 유통업체인 ‘라츠’와 휴대전화 부품 제조 업체인 ‘티에스글로벌’, 인적자원용역을 제공하는 ‘피앤에스네트웍스’를 각각 자회사로 두고 있는데, 총체적으로 봤을 땐 박 전 부회장이 팬택 외에도 5개 기업을 지배해 온 셈이 된다.
문제는 이 5개의 회사 매출이 박 전 부회장이 그룹 위기를 돌파하겠다고 선언한 2007년 이후 급성장했다는 점이다. 수익의 대부분이 매출의 구조가 대부분 ‘팬택’을 통해 이뤄져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라츠의 경우 2478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팬택씨앤아이는 976억 원, 피앤에스네트웍스는 636억 원, 티에스글로벌은 568억 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조사돼 개인 소유 회사를 통해 제몫 챙기기에 나섰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겉으로 드러난 의혹들은 동양·웅진그룹 사태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이나 팬택 측이 말하는 속사정은 따로 있다. 워크아웃에 돌입한 2007년 당시 기존의 거래 회사들이 모두 ‘팬택’과 거리를 두면서 박 전 부회장이 개인 회사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는 것.
팬택의 한 관계자는 “회사 운영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제품을 계속 만들어야 했지만 기존의 거래처들이 거래를 꺼리자 박 전 부회장이 개인회사를 세워가면서까지 거래처를 만든 것이다”며 “공급업체를 만들기 위함이 목적이었으므로 채권단들도 박 전 회장의 개인회사 설립 때부터 이미 다 알고 있었고, 거래 내용도 함께 관리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 측에 대한 확인 절차도 없이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도 있어 박 전 부회장에 대한 논란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재계의 영향력 있는 그룹의 오너일가 대부분은 재산을 관리하고 더 나아가 비자금 등 활동자금을 운용할 목적으로 별도의 사람 혹은 팀을 두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회자돼 왔다. 주로 ‘관재팀’으로 불리는 조직과 조직원들이 이 같은 작업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위기 상황 속에서도 재산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한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최근 동양과 웅진 등의 사태로 볼 때 말로만 무성하던 이야기들의 실체는 이미 드러난 것과 다름없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