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성인문화가 우리보다 발달한 일본 콘텐츠들이 시장을 잠식하지 않겠어요.” “무너질 대로 무너진 시장에서 더 이상 위축될 것도 없죠.”일본문화개방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국내 성인업계 관계자들의 상반된 말이다. 정부는 9월 16일 영화, 음반, 게임 분야의 일본문화를 내년 1월1일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됐던 방송과 극장용 애니메이션도 보완 조치를 마련해 개방 범위를 조율한 뒤 2004년 1월 1일 함께 개방키로 했다.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정보화, 세계화의 시대적 조류에 부응하면서 한일양국간의 활발한 문화교류가 양국 국민간 이해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관점에서 방송과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영화와 음반, 게임을 과감하게 전면 개방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화·음반 업계의 반응은 그 동안 점진적으로 일본문화가 개방되어 왔고 인터넷을 통해 일본영화와 음악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4차 개방이 몰고 올 파장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오히려 국내 가수와 연예인들의 일본무대 진출이 보다 활기를 띨 것으로 연예계 일각에선 전망하고 있다. 반면 성인업계에선 시장잠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일본문화개방에 따른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는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일본 대중문화 개방조치의 내용 때문이다. 문광부가 발표한 개방조치 내용에는 ‘18세 이상 관람가’ 및 ‘제한 상영가’ 등급의 극장용 영화, 비디오 시장의 전면 개방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영화와 같은 수준으로 전면 개방되는 비디오 시장은 일본에 잠식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대두되고 있는 것.
성인비디오업계의 관계자는 “국내 영화시장은 할리우드 영화와 대결해도 승리할 수 있을 만큼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데 에로 영화, 즉 성인비디오 시장이 문제다”며 “일본의 경우 국산 성인비디오보다 한층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어서 그렇지 않아도 침체되어 있는 시장이 일본 성인비디오 물에 빼앗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일본 문화개방 조치가 큰 파장을 몰고 오지 않을 것이란 조심스런 분석도 나온다. 한시네마의 한지일 사장은 “내년부터 일본의 성인영화가 개방된다고 하지만, 이미 인터넷을 통해 국내에 많이 들어와 있다”면서 “단지 우려되는 점은 2000년부터 사양길로 접어들어 위축된 성인비디오 시장을 일본 성인비디오물과 나누어 가져야 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한 사장은 또 “일본 성인비디오의 경우 노출 수위가 높고 우리보다 좀더 자극적인 것이 많다”며 “정부도 개방에 발맞춰 국내 성인비디오 물에 대한 심의조건을 완화시켜 주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인업계의 또 다른 축인 인터넷 성인방송업계도 의견이 분분하다. N 성인사이트 관계자는 “인터넷 성인시장은 해외 포르노물의 무차별 공습과 해외에 서버를 두고 실제 섹스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포르노 사이트의 등장으로 침체된 지 오래”라며 “이런 상황에서 내년에 일본 문화까지 개방되고 나면 설자리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비관론을 내놓았다. 그는 또 “일본은 성에 대해 개방적이어서 다양한 주제로 성인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면서 “규제와 제약이 많은 우리현실에 비춰볼 때 우리가 그들과 경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본 문화개방을 기회로 삼는 곳도 있다. 인터넷 성인방송의 선두 두자 역할을 했던 바나나 TV는 일본의 성인콘텐츠를 활용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바나나 TV 관계자는 “국내 성인시장이 침체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일본의 다양한 성인 콘텐츠를 활용한다면 지금보다는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일본의 성인업계와 활발하게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의 일본문화개방 발표이후 일본 현지의 성인업계에서도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 1월 일본 성인 비디오 업체 ‘쿠키’가 완전 한글화한 ‘쿠키닷컴’을 선보이며 한국 성인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동안 해적사이트나 공유사이트를 통해 일본 AV 비디오가 나돌았었지만, 일본의 제작사 측이 전면에 나서 공개적으로 한국시장에 들어온 적은 없었다. 쿠키의 경우 일본 5대 메이저 제작사들을 포함, 총 25개의 성인 콘텐츠업체들과 제휴하고 있는 일본 AV업계의 총판격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인 콘텐츠업체의 해외 관련 인터넷과 위성 방송 등의 판권들을 독점적으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일본 쿠키사는 이미 2년여 전부터 일본 대중문화 전면 개방에 대비, 치밀하게 한국 시장 상륙을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여배우들의 누드동영상 등을 서비스하며 새로운 성인시장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한 모바일 쪽은 일본의 성인콘텐츠를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4차 일본문화 개방 발표에 발맞춰 업체들이 내년 초 해금되는 일본 에로영화들을 서비스하기 위해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부는 일본의 성인 콘텐츠와 관련해선 선별해 개방한다는 방침이다.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은 일본문화개방관련 기자간담회를 통해 “저질 일본영화의 수입은 등급분류와 수입추천제도를 통해 선정성, 음란성 영화의 국내유입은 봉쇄하는 등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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