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속 일본말 잔재 그냥 막 쓰면 안 돼요 "
[일요서울|조아라 기자] 한국어 속에 남아있는 일본어 잔재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다행히 광복 이후 정부와 국립국어원이 국어정화에 나서면서 생활 속 일본어투 용어는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뽀록나다, 유도리 같은 일본어투 용어와 신입생·달인·택배·물류 같은 일본 한자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멸사봉공·기합·간벌·가교 등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제국주의 단어도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다. 문제는 표준국어대사전이 이런 잔재를 완전히 순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요서울]은 ‘오염된 국어사전’이라는 책을 통해 일본어가 한국어로 둔갑한 스캔들 현장을 잡아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의 이윤옥 소장을 만나봤다.
“원래 ‘표준국어대사전을 불태워라’라고 제목을 짓고 싶었어요. 표준국어대사전이 너무나도 부실하고 안이해서요. 우리 국민들이 걸러지지 못한 일본말 찌꺼기를 일상에서 그냥 쓰고 있잖아요. 민족적 자존심을 해치는 단어들도 멋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태반이고요. 저는 국어 사랑이 국어사전을 올바르게 재정비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책을 출판하게 됐어요.”
국민의례, 국위선양의 어원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표준국어대사전(이하 국어사전)에도 단어의 풀이만을 해놓았지 유래는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식민 시대의 잔재다. 국민의례라는 말은 일본 기독교단에서 제국주의에 충성하자고 만든 것으로 그 핵심은 궁성요배, 기미가요, 신사참배에 있다. 국어사전에서 풀이한 뜻과는 거리가 있다. 국위선양은 1868년 메이지 일왕이 일본을 만세일계에 알려야 한다고 신하들에게 했던 말에서 유래했다. 이런 식민 시대의 잔재를 우리는 ‘한국을 자랑스럽게 알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은 저서 ‘오염된 국어사전’을 통해 일본어 오용사례를 상세히 밝혀냈다. 이 소장이 우리말 속에 남은 일본어 잔재를 모아 책으로 출간한 건 ‘사쿠라 훈민정음’ 이후 2년 만이다. 일본어를 36년간 공부한 이 소장은 이번 저서에서 국어사전과 일본어대사전 ‘다이지린’을 비교해 국어사전의 문제점을 철저하게 파헤쳤다. 한일 양국의 언어를 비교할 수 있는 장점을 앞세워 국어학자들이 섣불리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한 것이다.
이 소장이 꼼꼼하게 국어사전을 조사해 찾은 단어는 60여개. 그는 책에 수록된 단어의 어원을 명확하게 설명했다. 단어의 유래를 밝혀 국민들의 잘못된 언어생활을 바로잡아보겠다는 의미에서다.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그냥 일본식 단어를 쓴다고 생각해요. 어원을 알면 단어를 쓰기 전에 망설이게 되고 다른 말로 바꿔 쓰려고 하지 않을까요? 물론 여기 실린 단어를 전부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건 쉽지 않겠죠. 당장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 유래라도 명확히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더 많은 국민이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 소장은 국어사전의 무원칙성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현재 국어사전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한 단어들을 일본어로 잘못 분류하고 있다. 간간이, 수수방관, 장손, 양돈, 옥토 등이 대표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겨울 추위를 뜻하는 현명이라는 토박이말은 일본말 동장군에 밀려 사라졌다. 1000년 전부터 사용하던 장황이라는 말도 사용된 지 100년 남짓 된 일본말 표구로 대체됐다. 우리말 핍절이 일본말 품절에 밀려 없어진지도 오래다.
이 소장은 국립국어원의 안일한 태도를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일본식 한자어, 일본식 표현 등을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질문해도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무성의한 답변만을 늘어놓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에 질문해도 국어문법을 제외하면 대체로 잘 모른다고 답변해요. 자체적으로 대답을 해줄 수 없으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자문해서라도 답을 해줘야 하는데 말이죠.”
답답한 마음에 이 소장이 직접 ‘일본 관련 질문에 대해 아는 만큼 조언해주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국립국어원장 앞으로 보낸 적이 있다. 하지만 ‘노력하겠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앞으로도 이 소장은 ‘일본말 잔재’를 찾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갈 계획이다. 여전히 남아있는 일본말 잔재가 많아서다.
“한자문화권에 살면서 굳이 일본 한자를 지적하느냐고 묻는 분들도 계세요. 저는 식민지 시절 일본이 우리를 다스리기 위해 했던 말을 의미도 모른 채 쓰는 건 잘못됐다고 봐요. 일본이 만든 말을 여과 없이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게다가 국어학자들은 일본어를 모르니 일본 한자와 중국 한자를 잘 구별하지도 못해요. 그래서 일본어를 전공한 제가 우리말 속의 일본어 잔재를 찾아 어원을 밝히는 작업을 계속하는 거예요. 이런 게 우리말을 다듬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chocho621@ilyoseoul.co.kr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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