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제는 전당포도 ‘명품시대’
[르포] 이제는 전당포도 ‘명품시대’
  • 강휘호 기자
  • 입력 2013-10-07 12:34
  • 승인 2013.10.07 12:34
  • 호수 1114
  • 3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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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층의 제3금융권 “이 가방은 얼마 쳐주나요?”

▲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 명품전당포의 내부

돈 없는 서민들의 급전 유통 수단이었던 전통전당포가 부유층의 현금지급기로 변모하고 있다. 기존의 저신용자 대출용 전통전당포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고가의 명품을 취급하는 명품전당포가 그 자리를 채워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명품전당포는 단기간 내 서울과 대도시를 중심으로 400여곳에 달하는 점포가 생겼을 만큼 성장세 또한 기하급수적이었는데 전문직 종사자나 연예인, 재벌가 자녀들이 명품백, 시계, 골프채 등을 맡기고 급전을 빌리는 일이 많아 부유층만의 제3금융권이라는 수식어까지 생겼다. 이에 [일요서울]은 부자들의 현금 유통 현장, 명품전당포의 세계를 찾아가봤다.

점포수 서울·대도시 중심으로 400여개 달해
주 고객층은 교수·판사·의사·연예인 등 다양
IT제품부터 자동차까지…안 받는 물건이 없다 
서민 급전 대출은 옛말, 부자들의 현금지급기

지난 3일 [일요서울]이 찾은 서울 여의도의 한 명품전당포는 기존 전통전당포와 사뭇 다른 분위기가 흘렀다.

어둡고 칙칙한 조명도 쇠창살 사이로 풍기는 음산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목이 아플 정도로 높은 오피스텔 건물 외관에 내부는 환한 조명, 한눈에 봐도 값나가는 물건들로만 채워져 있어 부자들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가득 차 있었다.

“에르메스 XX백이요? 고객님 상품으로는 600만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고, 월 이자 3%가 적용됩니다. 보증서 포함해서 구성품은 전부 있으세요? 예약하시고 방문해 주시면 됩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분주한 목소리가 들렸다. 명품 가방을 담보로 대출을 받기 위해 상담전화를 건 고객을 응대하는 소리였다. 고객들을 대하는 태도가 은행 직원을 떠올리게 했다.

이후 들어간 고객 접대실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했다. 샤넬·구치·프라다를 비롯한 명품 가방부터 고가의 시계와 보석, 골프채 세트까지 명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돼 있었다. 돈을 빌리러 온 건지 아니면 쇼핑을 하러 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이에 대해 장길태 명품전당포 대부업체 펀아일랜드 대표는 “서비스업의 일종이다 보니 고객들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대부분 부유층 고객이 찾는 만큼 그에 걸맞은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전당포는 이제 완전히 변해 있었다. 악덕 고리업자나 조직폭력배들의 온상이 아닌 정식 대부업체의 일부분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고급으로 진화된 대부업

▲ 명품전당포에 맡겨진 고급제품들. 명품가방, 골프채, 시계 등이 즐비하다.

사실 전당포는 1970~1980년대가 전성기였다. 마땅히 돈을 구할 데가 없는 40~50대 서민들이 금붙이나 시계 등을 맡기고 돈을 빌렸다. 품목도 한정적이었다. 1970년대 카메라, 시계, 반지를 비롯해 1980년대에는 비디오, 휴대용 녹음기 등이 주 거래품목이었다.

더구나 이때는 보석류나 금·은·시계 등의 전당물을 하루만 지나도 처분해 버리고, 이자만 한 달에 5% 내지 7%씩 받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물건의 반값도 안 되는 돈에 저당 잡히는 일은 일반적인 거래조건이었다.

하지만 명품전당포로 진화한 지금은 거래되지 않는 품목도 거의 없을뿐더러 돈을 빌리는 계층도 달라졌다. 범죄나 악덕은커녕 정식 교육을 받은 서비스업으로 진화했고, 고객 연령대 또한 20~30대로 낮아졌다는 전언이다.

일례로 명품전당포에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들이 드나든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딱 어느 연예인이라고 말해줄 수는 없지만 연예인들도 간혹 들른다. 오자마자 자기가 찬 시계를 풀어놓고 ‘해주세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며 “이제 전통전당포처럼 영업하면 절대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전당포를 시작하려면 정해진 교육을 이수하고 시험을 치러야 한다. 이율은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5조 2항에 따라 월 3%, 연 36~39 %를 유지한다. 다만 전당포에 따라 대출금은 중고가 기준 30~80%까지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대출 계약서를 작성한 뒤 물품 상태를 감정하고 대출이 완료되기까지는 채 20분을 넘기지 않는다. 신용등급 확인도 없다. 이점이 명품전당포가 부유층의 현금지급기로 발돋움한 가장 큰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유층의 제3금융권이라는 수식어도 어색하진 않지만 여전히 음지에서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전히 음지인 곳도 있어”

실제 서울에서 명품전당포로 등록된 업체는 20여 곳. 하지만 불법으로 운영되는 곳까지 더하면 100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나머지 80여 곳이 불법이라는 얘기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불법 전당은행까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법상 은행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이들을 양지로 끌어낼 방법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부업법이 개정됨에 따라 모든 업체는 각 지자체를 통해 등록·관리 받아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은행이라는 명칭 사용도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국대부업협회 관계자는 불법 업체들을 솎아내는 방법에 대해 “아직까지 특별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면서 “등록되지 않은 업체가 있다면 바로 신고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고 조언했다. 

이 관계자는 또 “대부업체를 이용할 때는 허가증이 원본인지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며 “계약 기간을 넘긴 담보물 처리 과정에서도 담보물을 통해 업체가 수익을 더 얻는 경우 채무자에게 알리고 차액분을 돌려줘야 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명품전당포 시장이 점점 커지는 추세인 만큼 더욱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며 “불법 업체 때문에 대부업이 좋지 않은 이미지를 쌓는 것을 경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명품전당포 장길태 펀아일랜드 대표
-전당포에 대한 진실 혹은 거짓

▲ 장길태 대표

흔히 전당포라고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질문들이 있다. 어떤 물건들이 높은 가격을 받는지, 물건 보관은 어떻게 하는지, 드라마처럼 조폭들이 많은지, 어떤 에피소드가 있는지 등 알 것 같으면서도 정작 대답은 들어보지 못한 질문들이 그것이다. 장길태 펀아일랜드 대표와 함께 호기심을 풀어봤다.

다음은 장 대표와의 일문일답.

-대출 방법은 어떻게 되나?

▲일단 장물로 의심되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경우는 대출이 안 된다. 확인 절차를 거친 뒤 전문 감정사가 물품 가치에 대한 감정을 진행한다. 그 이후는 알려진 대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대출을 해주게 된다.

-대출금 상환 과정에 어려움은 없는지?

▲예전 전통전당포 같은 경우에는 통보도 없이 물건을 내다 팔아 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계속해서 문자 및 전화 안내를 한다. 한 번 찾은 뒤 다시 찾는 고객들이 많은 만큼 고객 관리 차원에서다. 하지만 열 명 중 한두 명 꼴로 연락이 아예 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기본 3개월 정도의 여유를 주지만 전자제품이나 금 같은 경우 신제품 출시, 시세 하락 등의 이유 때문에 가장 곤란하다.

-대출금이 높은 물건은 어떤 것들인가.

▲품목과 브랜드에 따라 다르지만 아무래도 중고거래 수요가 많은 제품이 수월하다. 같은 브랜드라고 하더라도 인기가 많은 제품라인, 상태가 좋고 보증서까지 있으면 대출금이 많아진다. 또 한 가지 흔한 오해가 있는데 한정판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한정판은 결국 돈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구입하는 물건인데 그 정도의 부자들이 중고를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 수입원은 어디에서 나오나.

▲주인이 찾아가지 못한 물건들을 팔았을 때도 수입이 생기긴 하지만 법정 이자율과 원금을 제외하고 남은 돈은 거의 주인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이자가 수입의 전부라고 보면 된다. 대출금의 출처는 명품전당포가 대출금이 높은 만큼 기본 자본금이 튼튼한 상태에서 시작한다. 돌려막기식 운영은 없다.

-정말 조직폭력배들이 운영하나?

▲아니다. 예전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업체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곳에서 자주 나오다 보니 잘못된 이미지가 심어진 것 같다. 대부업이라고 해도 물건을 담보로 하기 때문에 해당 제품군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것이 일반적이다.
 
-이용 고객들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

▲간혹 있는 일이긴 하지만 마음이 짠해지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일전에 손주 세뱃돈을 마련하고 싶다며 오래된 카메라 한 대를 들고 찾아온 할아버지가 기억에 남는다. 원래는 대출이 안 되지만 10만 원을 대출해 드린 적이 있다. 그 외에도 매우 다양하다. 유흥업에 종사하는 젊은 여성들의 도도함이 인상 깊었다. 대출금이 많든 적든 아무렇지 않게 명품을 맡긴다.

-부자들의 전당포 이용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이유는?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부자들이 왜 돈을 빌릴까’라고 생각하는데 의사들 같은 경우엔 한 달에 병원 운영비만 1억5000만 원에서 2억 원까지 들어간다. 자신이 벌어들인 수입은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하고 전당포를 통해 현금을 가져다 쓰는 일이 많다. 더욱이 부자일수록 자신의 신용등급에 굉장히 민감하다. 전당포를 이용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훨씬 유리할 것이다. 

-전당물로 받은 물건들의 보관 방법은?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보관한다. 먼저 사무실 내 보관 창고가 있다. 가방이나 골프채 등의 물건을 보관한다. 두 번째는 은행 금고다. 가치가 높은 물건이 많다 보니 은행 금고에 보관한다. 자동차와 같이 큰 물건들은 따로 장소를 마련해 관리한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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