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대세는 ‘욱’ 회장(?)
재계 대세는 ‘욱’ 회장(?)
  • 박시은 기자
  • 입력 2013-10-07 10:28
  • 승인 2013.10.07 10:28
  • 호수 1014
  • 3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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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상무·빵 회장 이어 신문지 회장까지…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강태선(64) 블랙야크 회장이 폭행 물의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 27일 비행기 탑승 지연으로 실랑이를 벌이다 항공사 직원을 신문지로 때린 것. 특히 강 회장은 최근 사회공헌재단을 설립하는 등 모범을 보이는 재계인사라는 평을 받아 왔던 터라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신문지 회장’ 논란이 거세지면서 강 회장이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불매운동까지 거론되며 여전히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회공헌재단 발표 당시 ‘최초’라는 거짓 표현으로 홍보 활동을 벌인 의혹도 받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게다가 사회적 지위를 이용한 ‘생떼’가 ‘폭행’으로 이어진 사건은 라면 상무, 빵 회장을 비롯해 올해만 벌써 세 번째다. 이에 [일요서울]은 폭행 혐의로 논란을 일으킨 사건들을 되짚어봄과 동시에 파문 이후의 근황을 들여다봤다.

막나가는 사회 지도층…올해 벌써 3곳 폭행 논란
블랙야크 회장의 신속한 사과에도 여론 안 좋아

▲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

최근 재계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대신 ‘욱’ 하는 회장 및 임직원들로 곤욕을 치르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 4월 포스코에너지의 라면 상무 사건을 기점으로 시작된 폭행 논란은 잠잠해질 틈도 없이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으로까지 이어졌다.

지난달 27일 강 회장은 전남 여수에서 열리는 슈퍼모델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오후 3시 10분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으나 1분 전에야 공항에 도착했다.

해당 항공편은 출발 5분 전까지 탑승구에 도착해 셔틀버스로 이동해서 탑승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 강 회장의 탑승은 불가능했다.

강 회장이 무리하게 탑승을 요구하자 이를 제지하는 아시아나 소속 용역업체 직원과 실랑이가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강 회장은 욕을 하며 직원의 얼굴을 신문지를 말아서 때렸다.

이후 강 회장은 문제를 일으킨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고의로 때린 적은 없다고 부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문을 던진 것이 직원의 얼굴에 맞았다는 것.

아시아나 측도 처음엔 강 회장 관련 사건에 대해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다. 사건 당일 항공사 당직 근무자에 의하면 오히려 회사 윗선에서 피해자가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문제가 커지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겨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한 모습이었다.

그동안 강 회장은 도서와 다큐멘터리를 통해 ‘경영을 하는 산악인’으로 알려져 왔다. 그는 국내 최초 국산 등산장비 전문점을 연 당사자이자 엄홍길 대장을 발굴해 지원하며 대한산악연맹 부회장을 지내는 등 35년간 산악인으로 살아왔다.

특히 산악회를 조직해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해발 8848m)와 네팔의 안나푸르나(8091m) 등을 대장 혹은 단장 자격으로 직접 오르기도 했다.

더욱이 강 회장은 과거 국민훈장을 받기도 했으며 지난달 26일에는 사회공헌재단을 설립해 사회적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인 27일 ‘신문지 회장’ 사건을 일으키면서 그간의 행적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고, ‘블랙야크 회장의 두 얼굴이 드러난 사건’이라는 오점을 남겼다.

또한 블랙야크가 사회공헌재단 설립을 ‘업계 최초’라고 홍보한 것과 다르게 최초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미 에베레스트 남서벽 루트를 개척하다 사망한 박영석 대장의 이름을 딴 사회공헌재단 ‘박영석탐험문화재단’이 2010년 3월에 설립돼 있다는 것.

박영석탐험문화재단은 노스페이스가 매년 4억 원가량을 재단에 기부하고 있고, 영원아웃도어가 실제적인 운영을 맡고 있다.

밀레 또한 2009년 4월부터 ‘엄홍길휴먼재단’을 통해 네팔에 8번째 교육사업을 전개하는 등 블랙야크보다 앞서 문화사업단을 사내에 신설해,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신문지 회장’ 사건의 여파가 심각해지자 강 회장은 “이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대해 부인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며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라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또 현장에서 즉시 당사자에게 사과를 했고, 약 1시간 후 재차 당사자를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했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블랙야크 측은 “공항에 늦게 도착해놓고 생떼를 부린 것이 아니다”며 “수속도 미리 다 밟아 놓은 상태였지만 검색대를 지나는 과정에서 몰려 있는 인원이 많아 시간이 지체됐던 것”이라 말했다. 동행하는 직원들을 모두 챙겨서 가려다가 버스에 탑승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공헌재단의 진정성 여부 의심과 거짓 발표 내용 논란을 두고 블랙야크는 “표현을 하는 기준의 차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공헌 공익재단과 재단법인이 동시에 출범하는 상황에서 ‘최초’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인데 전달 과정에서 오해가 생겼다”며 “사회공헌 공익재단이 순수하게 자사의 자금으로만 세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해명했다.

박영석탐험문화재단을 설립한 노스페이스는 재단 출연금이 100% 자사 부담이 아닌데 비해 블랙야크는 100% 자사금 출연으로 세워진 재단이라는 점에서 ‘최초’가 맞다는 것이다.

이처럼 강 회장이 공식 사과의 뜻을 전하자 아시아나 측도 공식 입장을 밝혔다.

아시아나 측은 “지난 27일 김포~여수 항공편 탑승수속 과정에서 발생한 승객 미탑승 상황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탑승객을 위한 공항 현장 서비스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항공편은 탑승교를 통해 직접 항공기로 들어가지 않고,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비교적 탑승 마감 시간이 빠르게 진행됐다”며 피해 직원에 대한 언급보다 사건의 마무리를 원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경찰 역시 “112에 신고됐으나 현장에 출동했을 때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원만하게 합의한 것으로 보고 사건을 정식 접수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항공사의 인터뷰 제재가 있었다는 점과 폭행 피해 직원이 용역업체 직원이라는 점, 논란이 커지기 전까지 강 회장이 폭행 사실을 부인했던 모습을 보인 것을 염두해 볼 때 현재의 결과가 개운치만은 않다. 이를 지켜본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불매운동을 실천하자”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빗발치는 비난에 해임·폐업까지

일각에서는 강 회장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관련 소식을 접한 국민들의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 이유가 신문지 회장과 같은 사건이 재계에서 처음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으로 거론되고 있다.

올해 첫 논란을 일으킨 왕희성(54) 전 포스코에너지 상무는 대한항공 기내에서 “자리를 바꿔달라”, “라면 맛이 형편없다”는 등의 이유로 여승무원을 폭행한 후에도 “항의를 하던 중 손에 들고 있던 잡지가 승무원의 얼굴에 스친 것”이라고 해명해 논란을 일으켰다.

왕 전 상무는 탑승하자마자 옆 좌석에 승객이 있는 것을 보고 “자리가 비어 있지 않다”며 욕설을 했고, 이후 기내식이 제공되자 “밥이 설익었다”는 이유로 라면을 요구했다. 제공된 라면을 두고도 “설익었다”, “짜다”, “너 같으면 먹겠냐” 등의 폭언을 퍼부으며 잡지책으로 승무원을 폭행해 ‘포스코=라면 상무’라는 불명예를 남기고 해임됐다.

강수태(65) 프라임베이커리 회장이 롯데호텔 지배인을 장지갑으로 때려 공분을 산 사례도 있다. 강 회장은 공무 목적인 임시 주차장에 주차를 한 상태였다. 지배인은 강 회장으로 인해 다른 필요 차량이 진입하지 못해 이동주차를 요구했으나 돌아온 건 “네가 뭔데” 등의 욕설과 폭행이었다.

당시 목격자들은 “지배인이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강 회장 지갑 속에 들어있던 카드 등이 10m쯤이나 날아갔다”며 “10여분간 욕설과 폭행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라면 상무와 다를 바 없는 갑의 횡포로 불리며 국민들의 분노를 샀고 프라임베이커리는 결국 사과와 함께 ‘폐업’을 선언했다.

반면 호텔 측은 “강 회장이 지배인에게 사과했다”며 “고객에 대한 프라이버시 때문에 공식적으로 확인해 줄 수 없다”고 여론화되는 것에 부담감을 보이는 모습이었다.

프라임베이커리는 매출의 약 90%를 코레일관광개발에 의존하며 경주빵과 호두과자 등을 생산해온 업체였으나 ‘빵 회장’ 사건을 계기로 납품을 중지당했다. 결국 강 회장은 폐업을 선언했고 하루아침에 직원들을 실업자로 만든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후 ‘강 회장이 폐업을 선언해놓고 새로운 포장지와 쇼핑백을 구비하는 등 영업 재개를 준비한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지난 6월 폐업이 아닌 휴업상태임이 확인된 바 있다.

‘갑의 횡포’ 논란 틈타 “피해자 됐다” 주장도

또 강 회장은 지난달 26일 롯데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사건은 왜곡보도 된 것이며 그로 인해 나뿐만 아니라 회사의 명예가 짓밟혔다”며 “개인정보를 유출한 롯데호텔 직원을 해임하라”고 시위를 벌였다. 또 언론사를 ‘허위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며 사건 당시 불매운동을 확산시킨 누리꾼들도 고소할 예정이다.

강 회장은 “당시 호텔 직원의 요청에 화가 나 욕설과 반말을 하니 직원이 ‘반말을 하지 말라’고 말해 ‘내가 나이가 몇인데 반말도 못하냐’며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지갑으로 얼굴을 한 대 때렸다”면서도 “사건 직후 당직 지배인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가 잘못했다’는 사과를 받았고, 나 역시도 사과와 함께 명함을 주고 좋게 마무리됐었다”고 말한다.

또 강 회장은 사건 다음날 모 기자가 “광고비를 부담하라”며 롯데호텔에서의 싸움을 거론했고, 상황을 설명했음에도 허위보도를 했다고 말한다.

해당 기자는 “광고비 요구 문제는 사실무근이며 호텔 CCTV를 확인해 보면 강 회장의 주장이 엉터리임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연차(68) 전 태광실업 회장은 2007년 비즈니스석 탑승 당시 승무원으로부터 “곧 이륙하니 좌석 등받이를 세워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내가 누군데!”라며 욕설을 퍼붓고, 기내 경고방송을 무시하며 경고장까지 찢은 적도 있다.

이 외에도 지난 5월 남양유업 영업직원이 대리점주를 향한 욕설 음성이 공개되면서 ‘욕설우유’ 파문이 일기도 했다. 당시 이 사건은 영업직원 개인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업계 관행’이라는 점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같은 일이 연이어 발생하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회사 밖에서도 저런 일을 저지르는데 회사 내부에서의 모습도 훤히 보인다”면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의 우월감에 젖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행동의 대가가 반드시 치러져야 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라면 상무, 빵 회장, 신문지 회장 사건의 공통점은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들이 ‘고의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는 점 ▲사건 피해자가 모두 서비스업 종사자였으며 ▲소속 회사들이 오히려 사건을 덮고 넘어가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피해 업계 태도·관행 논란도…
과잉친절보다 강경대응 필요 주장 거세

이를 계기로 ‘감정 노동자’들에 대한 동정 여론이 형성됐고 자사 직원을 보호하지 않는 업계의 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 서비스 업종이 유독 과잉친절을 강조해 업계 내 진상 손님 퇴치가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강경대응으로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하고 자사 직원들의 무조건적인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진상 손님들일지라도 그 대상이 기업의 회장 및 임직원일 경우 발생하는 압력과 이면에 감춰진 상호 관계 때문이라도 현재 논란이 된 사건들을 해당 업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시각도 존재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건 자체는 안타깝지만 그들은 ‘진상 손님 중 하나’일뿐더러 서비스업이다 보니 일이 커지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또 “특히 항공사의 경우 승무원들의 매뉴얼에 ‘무릎을 꿇고 빈다’는 항목이 있을 정도로 손님에게 100%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려 하는데 어느 누가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원하겠냐”며 “신문지 회장 사건의 경우 해당 항공사 직원이라고 할 수 없는 용역업체 직원이다 보니 해당 항공사보다 직원이 속한 용역업체와 블랙야크 간의 관계에 직접 개입하기 힘들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seun897@ilyoseoul.co.kr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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