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지난달 26일 ‘서강 금맥(금융 인맥)을 아시나요?’라는 동영상이 유튜브와 금융감독원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 일반인에게 유포됐다가 사라져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이 동영상은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의 주최로 서강대에서 열린 ‘캠퍼스 금융토크’에 맞춰 제작된 것으로, 금융계의 서강대 출신 주요 인물의 사모임인 ‘서강금융인회(서금회)’, ‘서강 바른 금융인 포럼(서강포럼)’ 등을 보여주고 있다. 후배들에게 이 모임에 동참하라고 말하는 선배들의 ‘응원’도 담겼다.
마치 ‘금융권에서 출세하려면 사조직에 들어오라’고 독려하는 뉘앙스마저 풍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이 모임이 박근혜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작 의도에 대한 의구심마저 덧붙여지고 있다. 상당한 아부성 제작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일부 네티즌이 “현직 대통령의 출신학교를 지나치게 의식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제기했다.
최수현 금감원장 '서금회'·'서강포럼' 등 사조직 극찬
금감원 “서강대 인맥 추켜세울 의도 없고, 순수 응원 차원”
문제의 동영상은 이덕훈 키스톤 PB 회장, 이상돈 전 외환은행 부행장, 임창섭 하나대투증권 사장 등 서강대 출신 주요 인물들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여준 뒤, 이들이 우리나라 금융을 좌지우지하는 서강금맥이라고 소개한다. 동영상 하단에는 ‘우리나라 금융을 좌지우지하는 서강 금맥(금융 인맥) 캐기’라는 문구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밖에도 동영상에는 서울대 출신인 최 원장이 서강대 재학생들을 격려하는 모습과 서강대 출신 금융인들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등이 담겨 있다. 그동안 금감원이 여러 대학교를 돌아다니며 금융계 취업을 독려하기 위해 만든 동영상과 같은 맥락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동영상에 거론된 ‘서금회’가 2007년 박근혜 대통령의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서강대 출신 금융인이 모여 만든 사조직으로, 금융계 팀장급 이상 회원 등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해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박 당선인이 패한 데 따른 동문들의 아쉬움도 모임 결성의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후문이 곁들여지면서 정치적 색깔이 입혀졌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제작 의도가 순수치 못했다는 지적이 들끓고 있다.
현재 서금회 멤버는 은행, 증권, 보험, 카드 등 금융업계 팀장급 이상 동문 200여 명이다. 박지우 KB 국민카드 부사장(정외75)이 회장을 맡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김윤태 산업은행 부행장(경영75), 이광구 우리은행 부행장(경영76) 등이 대표적인 서금회 멤버다.
우리금융지주의 전병윤 부사장(영문75)과 김홍달 전무(경영76)도 서강대 출신이다. 금융 투자업계에서는 정은상 GS자산운용 전무(사학81)를 중심으로 멤버가 형성돼 있다. 이현 키움증권 부사장(철학76), 이정철 하이자산운용 사장(경영76) 등도 중량급 인사다.
동영상에서 함께 거론된 ‘서강 포럼’ 역시 2011년 대선 때 만들어진 사조직이다. 서금회가 1970년대 후반 이후 학번의 현직 금융인 중심이라면 서강포럼은 1970년대 초반 학번들이 주축이 돼 결성됐다.
이 포럼의 회장은 이상돈 전 외환은행 부행장(경제73)이 맡았고, 산은 회장 출신인 민유성 티스톤 회장과 우리은행장 출신인 이덕훈 대표 등이 활동하고 있다. 이 대표는 최근 우리금융지주 회장직에 도전했다가 낙마하기도 했다.
아부성 제작이냐 우연의 일치냐
이에 따라 일각에선 “금융권에서 출세하려면 사조직에 들어가라고 권장하는 것 아니냐?”, “현직 대통령 출신학교 인맥을 강조해 새로운 학연주의를 전파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런 영상이 자칫 학생들에게 금융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학맥을 형성해야 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금융기관의 관리 감독을 총괄하는 금감원이 특정 대학의 인맥을 알리고 홍보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공공기관은 학맥이나 인맥 등을 거론하는 것 자체를 신중해야 한다”며 “학생들을 격려하려는 의도라고 해도 금감원이 이를 배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서강대 출신 한 관계자도 “어린 학생들도 아니고 공공기관인 금감원이 이런 내용이 담긴 영상을 배포했다는 것은 부적절하게 생각된다”며 “오해의 소지가 있는 상황에서 서강대 인맥을 이야기할 때는 더 조심하고 신중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금감원 측은 이에 대해 “특정 대학교 인맥을 알리고 홍보하기 위한 목적은 없다”고 밝혔다.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한 동문 선배들의 순수한 응원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권 관계자들은 서강대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동영상이 금감원 ‘FunFun한 금조사역’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 등에 올라온 점은 문제의 여지를 남겼다는 반응이다.
현재 이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삭제된 상태로 해당 블로그에는 “잘못된 주소이거나, 비공개 또는 삭제된 글입니다”라는 문구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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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