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존재와 가치’란 무엇인가. ‘참된 나’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불쑥 꺼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식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먹고살기도 바쁘고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쓸데없는 소리야.”
과연 그럴까. 오직 눈앞의 생활에만 매달려 이렇게 재미없이, 보람 없이 평생을 살아가야만 할까. 평생 현장에서 발로 뛴 베테랑, SBS 남달구 기자의 생각은 조금은 다를지 모른다. 그는 서두에서부터 불쑥 고백을 던지고 반성을 한다.
공자는 천하에 도적보다 더 위험한 다섯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가 아는 것이 많으나 마음이 흉악한 자요
둘째, 행실이 좋지 않으면서 고집만 센 자
셋째, 분명히 거짓말을 하나 변론을 잘하는 자
넷째, 오로지 추한 것만 기억하고 널리 기록하는 자
다섯째, 그릇된 일을 따르면서 이를 은덕으로 포장하는 자라 했습니다. 이런 자는 간웅奸雄이니 미리 제거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풍진과 세파에 찌들어 살아오다 보니 다름 아닌 바로 내 자신이 이런 종류의 인간이 돼가고 있었습니다. (…중략…)
‘나의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며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것일까?’
나를 찾아 길 없는 길을 떠나는 여행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향한 여정보다는 내면의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의 항로에 조각배를 띄워 느릿느릿 기억의 강물을 거슬러 기억 저편 너머에 갇혀 있던 삶의 편린들을 더듬었습니다. 그 여행의 쉼터에서 이 못난 졸고를 쓰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 경력에 걸맞은 대접을 받고 조금은 거창하게 자신을 드러내도 될 시기이지만 저자는 오히려 스스로를 낮추어야 할 시기이기에 이 글들을 썼다고 한다. 세상살이가 힘든 까닭인지 몰라도 스스로를 높이지 못해 안달이난 사람이 넘치는 이 시대에, 그의 조용하고 차분한 고백에 더욱 눈길이 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책 『그대 인연을 사랑하라』는 기자가 이 세상에 내놓는 첫 번째 책이지만 안에 담긴 ‘맛과 멋’은 장인의 솜씨와 열정 그대로이다. 1부에서는 수차례의 수상 경력과 인지도 1위 기자의 명성이 어디에서 나왔는가를 보여준다. 데스크에 앉아 펜을 굴리기보다는 특종을 위해 현장 일선에 뛰고 또 뛰어야 했던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기사가 더욱 사랑을 받았던 까닭은 자극성보다는 ‘가치와 진실’에 초점을 맞춰 현장을 누볐다는 데 있다. 「세종대왕 친필 - 어사희우정」 「잃어버린 국보 - 남명천화상송증도가」 「동여비고 - 다시 쓰는 고대사」 「가슴 아픈 민족의 혼 광개토대왕릉」 등에서 드러나는 우리 것, 우리 역사를 향한 애정 또한 남다르다. 눈앞의 이득에만 급급하다가 삶을 망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이 다시 주목을 받는 까닭도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는 잊은 채 앞만 보며 달려온 우리 사회가 앓는 후유증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남달구 기자가 전하는 기사들은 한결같이 더불어 잘 사는 사회, 인간으로서의 존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에 의의가 있다. 온고지신을 늘 가슴에 새겨,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드러내는 기자의 솜씨에 그저 감탄이 따를 뿐이다.
북한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 평양을 오갔던 기억, 한국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과의 만남을 담은 「한국현대사 증언」 시리즈 등은 그가 얼마나 우리 사회, 우리 민족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 본인의 영달만을 위해 기자 생활을 했다면 이미 언급된 명성을 쌓는 것도, 어쩌면 기자 생활을 오래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특종과 이슈보다는 ‘가치와 진실’ 그리고 ‘참 나’를 찾아 떠난 여정이었기에 그는 누구보다도 진실하고 아름다운 기자다.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배는 없다
2부부터는 자신의 삶과 주변에 관한 이야기, 철학과 사상에 관한 에세이가 주로 이어진다. 제법 감칠맛이 나는 조곤조곤한 말투, 이따금 등장하는 촌철살인의 문장들은 과연 이 책이 첫 번째 작품이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원숙한 맛을 낸다. 어지러운 세상사에 돌진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참 나’를 찾아 길 아닌 길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갔던 그의 이야기는 우리 마음이 직접 와 닿는 파문처럼 힘이 있다.
또한 설파가 아닌 설득을 통해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는 곳을 향해 나아갈지를 이야기한다. 물론 이런 주제들이 너무 현학적인 방향으로 전개된다면 설득력을 얻지 못하겠지만 그 누구보다 세상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 ‘기자’의 글이기에 공감과 신뢰감, 나아가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깨달음 또한 전해진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봐도 소용이 없다. 저 넓은 바다, 심한 바람을 일으키는 저 높은 하늘이 어찌 우리의 마음대로 될 수 있겠는가. 아직 갈 길이 멀고 많은 부족하다면서 손사래를 치는 저자이지만 그의 글은 충분히 아름답고 따뜻하다. 평생 그가 행한 ‘참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책 『그대 인연을 사랑하라』는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참된 나와 진실한 세상으로 가고자 하는 독자 누구에게나 명확한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이다.
남달구 지음 ㅣ 도서출판 행복에너지
인터넷팀 기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