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연필은 겨울연가가 가져다 준 인생의 선물”

[일요서울|조아라 기자] 일본 정부는 지난 3월 재일 조선학교를 고교 수업료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내 모든 고교생이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학교만이 제외돼 논란이 됐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당시 조선학교는 일본 정부로부터 어떠한 복구기금도 받지 못했다. 재일조선인총연합회 계열이라는 이유로 한국의 무관심과 일본의 차별에 시달리는 조선학교. 이들을 돕기 위해 처음 뜻을 모았던 소모임 ‘몽당연필’이 지난 3월 비영리단체로 등록하며 상설기구가 됐다. 몽당연필의 대표를 맡고 있는 배우 권해효씨를 만나봤다.
“재일 조선학교의 역사는 차별의 역사입니다.”
재일 조선학교의 역사는 길다. 그 역사는 일본으로 강제 징용됐던 조선인들이 재일조선인연맹을 만들어 1946년 민족교육을 위한 학교를 세운 것에서 출발한다. 가난과 차별로 고된 삶이었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잊지 않게 하겠다는 자부심과 자긍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선학교가 1957년 이후 북한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국내에서는 이곳을 ‘조총련 학교’라고 부르며 기피했다.
하지만 이 학교 재학생 중 약 70%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사람들은 조선적(朝鮮籍)을 가진 무국적자다. 최근 축구선수 정대세와 오디션프로그램을 통해 가수로 데뷔한 권리세 등이 조선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곳에 궁금증을 갖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권해효 몽당연필 대표는 2004년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된 것을 계기로 조선학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드라마와 관련해 일본에 갈 때마다 종종 재일교포들이 통역을 맡았는데 권 대표는 그들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이 궁금했다는 것이다. 재일교포 중에서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조선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 권 대표는 개인적으로 조선학교와 교류를 시작했다고 했다.
“일본에서 조선학교로 아이를 보내는 순간부터 스스로 사회의 소수자가 되는 거예요.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알면서도 자녀를 조선학교에 보내는 건 ‘차별’ 때문이에요. 일본사회에서 한국인으로, 조선인으로 살아가면 엄청난 차별과 마주하기 때문에 재일동포들은 학교를 중심으로 뭉치게 된 거예요. 차별을 이겨내는 공동체의 중심이 학교인거죠. 그래서 조선학교를 보면 공동체의 가치와 그 원형을 배울 수 있어요.”
현재 일본에는 70개 미만의 조선학교가 있다. 한때 500개 이상의 학교가 운영될 때와 비교하면 많이 줄었다. 조선학교는 일본에서 운전학원, 요리학원같이 기타학교로 분류돼 있어 학력인정과 재정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다. 학비도 일본학교에 비해 5~7배나 비싸다. 2010년 4월 일본 내 재외(在外)학교마저 학비 무상화가 됐지만 일본 정부는 외교상의 문제를 이유로 조선학교를 배제했다.
유엔 아동권리조약위원회조차 “조선학교 무상화 제외는 유엔아동권리조약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묵묵무답이다. 이에 지난 1월 오사카조선학교, 히로시마조선학교 등이 고교무상화 제외 조치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350여개의 양심 있는 일본 시민사회단체들도 함께 반대운동에 나서고 있다.
현재 일본에는 한국 정부가 지원하고 재일대한민국민단(민단)에서 운영하는 한국학교가 있지만 열도에 단 4곳뿐이다. 재일동포들이 자녀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고 싶다면 조선학교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민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는 일본 사회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교육이 아닌 한국 대학 입시교육 위주로 수업을 하고 있다. 재일동포들이 아이를 보내기엔 다소 괴리가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침략전쟁, 수탈, 만행 등이 1965년 한일협정으로 문제가 해결됐다고 뭉개버리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재일동포와 조선학교가 과거의 일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일본 입장에서는 재일동포들이 자꾸 자신들의 치부를 들어내는 것 같으니깐 이들을 끝없이 차별하고 배제하는 거죠. 그럴수록 재일동포들은 엄청난 울분과 자긍심으로 뭉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고서는 그 긴 차별의 역사와 어려움 속에서 자녀들을 조선학교에 보낼 수가 없는 거죠.”
권 대표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 한국을 고향이라 부르고 북한을 조국이라 부르는 조선학교 아이들이야말로 특별한 정체성을 가졌다고 말한다. 전쟁 피해자인 재일동포들이 동북아 평화시대엔 남과 북, 한국과 일본, 북한과 일본을 연결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한나라당 김충환 전 의원이 2011년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재일 조선학교가 남북 간 이념대립의 장이 아니라 민족교육의 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조선학교가 북한 지원을 받아 조총련계 학교가 된 것은 광복 이후 우리 정부가 재일동포에게 보여준 기민정책에도 책임이 있는 걸 부정할 수 없다”며 “과거와 달리 조선학교도 변하고 있기에 이곳을 이념 대립의 장이 아닌 통일을 대비한 교육의 장으로 삼아야한다”고 주장했다.
‘몽당연필’은 작지만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의미와 배움과 학교라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이 주가 돼 모인 단체인 만큼 앞으로 몽당연필은 문화행사를 통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내년엔 동북아 평화와 반전, 통일에 대한 열망을 담아 ‘반핵·반전의 도시’ 히로시마에서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몽당연필은 제 인생에 선물 같아요. 연기자로만 살았다면 평생 알지 못했을 만남이고 엄청난 감동이거든요. 어떤 성과를 내기 위해 시작한 활동이 아닌 만큼 ‘행복하고 재밌다’고 느끼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묘하게 조선학교와 관련된 일에 몽당연필이 대표성을 갖게 됐지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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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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