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택배 블랙리스트 작성 파문
우체국택배 블랙리스트 작성 파문
  • 박시은 기자
  • 입력 2013-09-30 10:31
  • 승인 2013.09.30 10:31
  • 호수 1013
  • 4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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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결성 막으려 권모술수 난무”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국가기관인 우정사업본부가 내부적으로 우체국 위탁업체 택배기사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구직활동까지 방해해온 정황이 포착됐다. 블랙리스트는 파업에 참여한 택배기사들을 중심으로 작성됐고, 이런 사실이 없어도 누명을 쓰고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간 이들도 있었다. 우체국 위탁택배기사 생존권 사수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진경호·이하 비대위)는 [일요서울]과의 인터뷰를 통해 민주당 을지로위원회(乙을 지키는 길)와 함께 집회를 열고, 대표자회의를 거쳐 파업 여부를 결정할 계획임을 밝혀 블랙리스트 파문이 택배 파업 대란으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 우정사업본부가 택배기사들의 재취업을 방해했다는 의혹을 산 문건

재취업 방해 및 중량수수료제 악용 일삼아
‘위탁’ 명분하에 ‘해줄 수 있는 것 없다’ 발뺌

우체국택배 기사들은 우체국 소속이 아니다. 우정사업본부는 그간 택배기사들과 직접적인 계약을 맺지 않고 업무를 위탁받은 중간업체를 이용해 계약을 맺어 왔다. 그 때문에 택배기사들은 법적으로는 개인사업자에 해당하며 개인 소유의 트럭을 이용해 수화물을 배달한다. 현재 우체국택배 기사들은 10년이 넘게 제자리걸음 수준인 건당 기본 960원의 낮은 위탁수수료를 받고 있다.

그런데 국가기관인 우정사업본부가 위탁업체를 이용해 책임을 회피하고, 특수고용자 지위에 있는 기사들을 관리해온 것이 밝혀졌다. 비대위 측에 따르면 우정사업본부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이름이 거론된 이들의 재취업을 막아온 것이다.

[일요서울]이 확인한 블랙리스트 문건에는 “보안사항(외부 유출자는…)을 별도 관리하고 바로 삭제 부탁드립니다”는 내용과 함께 “2011년 11월 서울금천우체국에서 배달원 스트라이크(파업)를 주동했던 기사들의 명단이다. 현재 수원우체국에서 배달 업무를 하고 있으나 그만둔 뒤 여의도, 양천우체국 쪽으로 갈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경인청 내 다른 우체국에서 채용되지 않도록 업체에 주지시켜 달라”는 당부의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한 차례 당부를 한 뒤에도 “외부에 유출되지 않도록 부탁”이라는 문구가 다시 한 번 기재돼 있었고, 택배기사들의 실명과 영업용 차량 번호가 기재된 ‘관리명단’이 들어 있었다.

밖으로 유출된 문건의 작성자는 경인지방우정청 우정사업국의 한 공무원이며 수신자는 우정청 소속 복수의 공무원들로 밝혀졌다.

이에 택배기사들은 비대위를 통해 대대적인 반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블랙리스트를 통해 재취업을 막을 뿐만 아니라 우정사업본부 지시로 위탁업체에 압력을 넣어 계약 해지시키는 일도 가능하다”며 “이유 없이 계약해지를 당한 사건에 대한 다른 기사들의 반발을 막으려고 배달수수료 인상 협상을 제시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 뿐만 아니라 “1년마다 재계약을 명분으로 지시에 복종하지 않는 택배기사를 해고하거나 집단 해고까지 들먹여 왔다”며 “심지어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기사들이 리스트에 오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충남 동천안우체국의 경우 진경호 비대위원장이 집단적인 반발의 움직임을 보이자 우체국 국장과 물류과장, 집배실장이 위탁업체에 소속 기사 전원을 계약해지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진 비대위원장은 “현재에도 우정사업본부의 압력으로 국마다 심각한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만 문제 돌파 의지가 깊어 모두 감수하고 있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30일 단체교섭 진행 파업사태 우려

현재 비대위가 주장하는 부당 대우는 ‘블랙리스트’에 그치지 않는다. 우정사업본부가 기사들을 상대로 중량·단가 후려치기, 허위 구인광고, 일방적인 계약서 작성 등을 일삼고 있는 것.

올해부터 우정사업본부는 기사들에게 돌아가는 수수료를 높인다는 취지로 ‘중량별 차등 수수료제’를 도입했다. 문제는 단가를 정하면서 무게가 가벼운 물건의 예상 비율을 턱없이 낮게 잡아 오히려 택배물 단가 자체가 인하돼 제도 도입의 취지와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버렸다.

또 우체국에서 택배 접수를 받으면서 실제 중량을 속이는 일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었다. 실제로 접수된 한 택배의 중량은 24.8kg이었으나 2kg으로, 25kg은 5kg 등 제각각으로 표시돼 있었다. 비대위는 “물량 대부분의 중량을 속여 수수료 자체를 기표지에 의해 차감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우정사업본부가 2002년부터 택배 업체와 체결한 표준계약서는 모든 모임과 단체행동을 금지토록 하고 있다. 이는 행복추구의 자유와 단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급여 실수령액도 차량할부금과 유류비, 보험료, 번호판 지입료, 전화비, 식대 등이 차감되면 120만~170만 원이다. 하지만 배송기자 모집 광고에서는 ‘월 평균 300만 원’이라 광고하고 있다.

비대위는 “입사가 결정되고 나면 2년 물류계약에 따라 190만 원의 권리금을 줘야 하는데 2년을 채우지 못하면 위약금 및 권리금을 강탈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차량할부금도 덤핑을 통해 뻥튀기한 금액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내고 있다”며 “정기휴가와 부가세 환급 및 유류보조금 지급이 복리후생으로 거론되는데 사실상 성립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우원식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은 “공정위 약관 심사를 의뢰하고 불공정행위에 대한 조사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블랙리스트 파문 담당 유승희 의원 측은 “블랙리스트 파문에 대한 문제제기를 지속적으로 이끌 것"이라며 “현재 택배기사들의 요구사항으로 내세운 ‘중량별 차등 수수료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지만 우정사업본부에서 어떤 계획이나 답변은 돌아오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비대위와 을지로위원회는 우정사업본부 앞에서 전국 택배기사 500여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한 후 우정사업본부와 대표자회의를 진행해 파업 여부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우정사업본부는 “현재 비대위가 요구하는 사안인 ‘중량별 차등 수수료제’는 구조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며 현 제도는 유지하되 중량 자동계량 시스템 설치 개선안에 대한 뜻에 변함이 없음을 내비쳤다. 또 “위탁 체제로 운영하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 파문에 대해서는 “리스트라고 말할 수는 없다”며 “위탁업체들과 1년에 한 번씩 정기 총회를 여는데 업체측이 기사들에 대한 정보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요청한 사안에 대해서 알려준 것이 와전된 것”이라며 일축했다.

seun897@ilyoseoul.co.kr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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