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뭐길래…’ 인천 용현동 母子 살인사건 전모
‘돈이 뭐길래…’ 인천 용현동 母子 살인사건 전모
  • 이지혜 기자
  • 입력 2013-09-30 10:09
  • 승인 2013.09.30 10:09
  • 호수 1013
  • 2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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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살짝 파고 자갈 깔고…” 차남 부부 계획 범죄 드러나
▲ 지난 28일 오후 3시께 '인천 모자(母子) 살인사건'과 관련 차남 정모(29)씨가 현장 검증을 위해 인천 남구 용현동의 어머니 집에 도착했다.

[일요서울|이지혜 기자] 어머니와 형이 사라졌다며 실종신고를 한 정모(29)씨. ‘인천 모자 실종사건’은 불과 한 달여 만에 모자의 시신을 찾으면서 ‘인천 모자 살인사건’으로 변했다. 평소 도박에 빠져 살던 정 씨가 돈을 이유로 어머니와 형을 죽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한민국이 경악하고 있다. 거기에 지난 26일에는 정씨의 공범 혐의를 받고 있던 그의 아내 김모(29)씨가 자택에서 ‘억울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건은 혼란 속으로 빠지고 있다. 피의자 관리 소홀과 강압 수사 의혹이 일고 있다.

도박중독·과소비로 인해 생계곤란… 7월말 범행 공모
자살 아내 “억울하다” VS 차남 정씨 “아내과 같이 범행”

지난 8월 16일 인천광역시 남구 학동지구대로 정모(29)씨가 찾아왔다. 그는 어머니가 2일 전 등산을 한다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며 실종신고를 했다. 세상을 경악시킬 ‘인천 모자 실종사건’은 이렇게 알려졌다. 당시 정 씨는 8월 13일 인천시 용현동에 위치한 어머니 김모(59)씨의 집에 갔으나 아무도 없었고, 형인 정모(32)씨가 “어머니는 등산갔다”고 말해 그 말을 믿고 2일 동안 집에서 보냈으나 시간이 지나도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내비·블랙박스 메모리카드 없어져 의심

실종 신고가 접수된 지 2~3일이 지나도 어머니 김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형인 정씨도 찾을 수가 없었다. 김씨는 13일 오전 8시 30분께 집 근처 은행 ATM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모습이 찍힌 CCTV가 마지막 행적으로 확인됐다. 또한 형 정씨는 같은 날 오후 7시 40분께 친구와의 통화를 마지막으로 행적이 끊겼다.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형 정씨는 다음날 회사에서 재계약이 예정돼 있었으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편 경찰은 인천시 용현동에 위치한 김씨의 집을 찾았다. 김씨 집에서는 락스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경찰은 이때부터 몇 가지 수상한 점을 발견하고 차남인 신고자 정씨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김씨 모자가 휴대전화, 지갑 등 생필품을 집에 그대로 두고 사라졌으며, 결혼 후 따로 떨어져 살던 정씨가 뚜렷한 이유 없이 김씨의 집에서 2일간 머물렀던 것이다. 또한 실종 시점에 정씨가 형의 차를 이용했는데, 해당 자동차의 내비게이션과 블랙박스 메모리카드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씨는 자신의 이혼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어머니 김씨의 집을 방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날 저녁 들어온 형에게 김씨가 등산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형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잠을 잤는데 다음날(8월 14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형이 가방을 들고 승용차를 타고 나갔으며, 자신은 술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다음날(8월 15일) 아침 형 정씨가 자신을 깨워 집으로 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형이 집을 나갔다는 시간에 신고자 정씨가 형의 자동차를 이용해 강원도 정선과 경북 울진에 다녀온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차남 정씨를 제외하고 누구도 형 정씨를 본 적이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이에 8월 22일 경찰은 차남 정씨를 김씨 모자 살인 혐의로 긴급 체포했으나 정씨가 정선과 울진에 다녀온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됐다.

‘김씨 모자 실종사건’의 실마리는 다른 쪽에서 풀리기 시작했다. 차남 정씨의 아내 김모(29)씨가 입을 연 것이다. 아내 김씨는 “남편이 화해여행을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다. 정선과 울진에 다녀왔는데 당시에는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시신을 넣은 것으로 보이는 가방을 남편이 가지고 내린 것 같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씨가 알려준 위치에서 어머니 김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실종사건’이 ‘살인사건’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어머니 김씨의 시신 발견 소식을 들은 차남 정씨는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며 범행을 시인했다.

9일만에 차남 체포 증거 불충분으로 풀어줘

어머니 김씨는 10억 원대의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자산가였다. 차남 정씨가 지난 2011년도에 결혼하자 김씨는 1억 원 상당의 빌라를 마련해줬다. 그러나 도박에 빠진 정씨가 어머니 김씨와 상의 없이 빌라를 처분하자 모자사이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도박 빚 8천만 원을 진 정씨는 어머니를 찾아가 돈을 요구하다 거절당했다. 당시 김씨는 주변 지인들에게 “막내아들의 눈빛이 무섭다. 나를 죽일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알려졌다.

차남 정씨는 7월 말 도박 중독, 과소비 등으로 인해 생활이 힘들어지자 아내 김씨와 함께 어머니 김씨의 재산을 노리고 김씨 모자를 살해하기로 공모했다고 자백했다.
차남 정씨는 어머니 김씨와 대화하던 중 김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으며, 그 후 퇴근한 형 정씨에게 수면제를 탄 맥주를 마시게 한 뒤 잠든 상태에서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9일 만에 차남 정씨를 김씨 모자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보고 긴급 체포했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풀어준 바 있다. 당시 경찰은 미흡한 수사로 혐의도 제대로 밝히지 못한 채 유력한 용의자를 석방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14시간 동안 증거나 혐의를 밝혀내지 못한 채 차남 정씨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이번 사건이 장기화 되고 ‘미제 사건’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경찰은 차남 정씨가 형 정씨의 차를 이용해 강원도 정선과 경북 울진을 다녀왔다는 증거와 차남 정씨가 운전한 차에 김씨 모자의 체중만큼의 물체가 차량 하중에 실려 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CCTV 영상 분석 결과를 확보했다. 그러나 여전히 차남 정씨는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고 묵비권을 행사했다. 경찰이 직접적인 증거 및 범행 흉기 등을 발견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황상의 증거만 발견돼 본인 자백이나 시신 발견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차남 정씨는 ‘완전범죄’를 위해 모든 흔적을 지운 후로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자백을 할 이유가 없었다. 차남 정씨는 어머니와 형을 살해한 뒤 락스를 3통이나 사용하며 혹시 남아있을 혈흔을 지웠다. 또한 강원도와 경북으로 시신을 나눠 유기하면서 경찰 수사에 혼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사용했던 차량의 내비게이션과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도 제거했으며 고속도로 요금소에서는 하이패스 단말기가 있음에도 일반 출입구를 이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또한 차남 정씨의 집에서는 실종 사건 관련 동영상과 서적 등이 발견됐다. 범행을 저지르기에 앞서 관련 내용을 공부한 것이다.

결국 경찰은 정씨의 아내 김씨의 진술을 토대로 어머니 김씨의 시신이 발견된 23일에야 차남 정씨의 자백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부터 자기 최면을 걸어 나는 억울하다”

차남 정씨가 구속되자 경찰은 아내 김씨를 참고인 신분에서 피의자로 전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여러 정황상 김씨가 차남 정씨의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범행 일체를 부인했다. 그리고 26일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씨는 유서에서 자신은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경찰에서 욕설과 폭언, 인신모욕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유서에는 “남편이 진실을 이야기하고 자백을 하기 위해 한 달 동안 설득했다. 하지만 나는 화해여행으로 알고 떠났고 대부분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수면제를 먹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편이 내린 것이 기억나 경찰에서 조사를 받은 것뿐이다. 정말 억울하고 두렵다. 시댁 식구를 찾는 데 도움을 드렸을 뿐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어 경찰의 실명을 거론하며 “욕설과 폭언, 초등학생들에게도 안 시키는 ‘똑바로 서’, ‘고개 숙이지 마’, ‘우리가 X같냐’ 등의 여러 인신모욕과 욕설, 폭언 등을 했다. 그리고 내 인권마저 짓밟아 버렸다. 그 OOO 경찰은 꼭 징계를 당해야 하니 내 유서를 언론에 알려 억울함을 풀어주고 다시는 나 같은 피해자가 없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차남 정씨가 아내 김씨와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고 밝혔다. 차남 정씨는 경북 울진에서 형 정씨의 시신을 내릴 때 아내 김씨도 함께 내렸다고 진술했다.
또한 경찰은 차남 정씨와 김씨의 SNS 대화 기록을 조사한 결과 ‘땅을 살짝 파고, 자갈을 깔고’와 같은 범행 모의 기록을 발견했으며, 아내 김씨의 휴대전화 복원 과정에서 ‘이제부터 자기 최면을 걸어 나는 억울하다’라는 메모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어 유서 내용에 대해서 경찰은 “욕설 폭언 등 유서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유서의 내용을 모두 거짓으로 보고 있다”고 반박했다.

경찰이 용의선상에 오른 아내 김씨의 신변을 확보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피의자 관리 소홀’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경찰은 구체적인 증거와 진술이 없는 상황에서 아내 김씨가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강제 구인을 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차남 정씨가 25일까지만 해도 “형이 엄마를 죽이고 도망갔다. 형은 내가 죽였다”며 자신의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여경을 적극적으로 집 안에 동숙시키려 했으나 아내 김씨가 반대 의사를 표시해 확인서만 받고 집 밖에 감시조를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내 김씨의 공범 여부는 계속 수사할 것이며, 김씨가 사망해 공소권이 없으므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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