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사진 불법 게재 죄책감 없어 “잘못인가요?”
‘잊혀질 권리’ ‘네티즌 도덕적 성숙’ 필요해
지난 6일 조선일보는 채동욱 검찰총장의 숨겨진 혼외아들이 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문제는 그 후 후속보도를 통해 채 총장의 혼외아들로 지목된 채모(11)군의 학교, 혈액형은 물론 그 모친 임모(54)씨의 거주지, 이들 모자의 출국일 등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 이에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함께하는시민행동 등 시민단체가 개인정보 유출 혐의로 조선일보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또한 이 같은 개인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곽상도 전 민정수석도 고발했다. 조선일보 기사에서 근거자료로 제시한 가족관계등록부와 학교생활기록부, 입주자 카드 등은 모두 개인정보 유출이며, 이를 제공한 곽 전 수석 역시 동일 혐의라는 것이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 심각
개인정보 유출 사례가 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타인 사진 게재를 통한 신상 털기로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있다.
지난 4일 거제도 도심 거리 한복판에 주차된 빨간 마티즈 차량에서 술에 취한 남녀가 성관계를 맺고 있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졌다. 일명 ‘마티즈 동영상’은 순식간에 모든 인터넷 사이트에 퍼졌다. 2분 30초 분량의 영상에는 모자이크 처리 없이 남녀의 얼굴과 함께 차량번호가 찍혀 있었다. 즉시 출동한 네티즌 수사대는 차량번호를 통해 차주를 알아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주의 이름, 사진, 회사가 전부 퍼졌다. 이로 인해 차주가 해고를 당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지난 4월 국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Anonymous)'가 북한의 대남 선전용 누리집 '우리민족끼리'의 회원 정보 9000여 건이 포함된 명단을 공개하자 일부 네티즌들이 이름과 이메일주소를 토대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는 ‘신상 털기’를 벌였다. 네티즌들은 이들의 사진, 전화번호, 근무처를 게시했으며 심지어는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과 사진까지 올렸다.
또한 잘못된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일반인(OO녀)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신상 털기가 이뤄지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청소부에게 욕설을 퍼부은 ‘경희대 패륜녀’, 15세 제자와 성관계를 맺은 30대 여교사 등이 이런 경우다.
이렇듯 신상 털기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피해 사례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거제도 마티즈 동영상 속 차주 신상 털기 과정에서 엉뚱한 사람이 차주로 지목되며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아 다녔다. 지하철에서 노인을 상대로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하는 내용이 담긴 동영상 속 주인공인 ‘지하철 막말남’은 동영상 업로드와 동시에 학교와 이름, 개인 홈페이지까지 인터넷에 급속도로 유포됐다. 그러나 이 신상정보의 주인공은 ‘지하철 막말남’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으며, 해당 학교는 명예를 훼손시켰다며 유포자를 처벌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
이처럼 인터넷에 올라온 동영상과 사진 속 주인공들의 개인정보가 너무도 쉽게 유포되면서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신상 털기는 엄연한 불법이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고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한 자와 제공받은 자는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또한 형법 제307조에 따라 상대방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유출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할 경우 명예훼손죄가 성립되며 이에 따라 최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벌칙)에 의하면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항목도 있다. 개인정보법, 형법, 정보보호법 등 개인정보 유출에 관한 법률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상 털기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신상을 터는 네티즌들은 자신들이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비도덕적인 일을 행한 사람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게재해서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라는 생각에서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구글 같은 검색엔진이나 대형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 개인정보 유출이 이뤄지고 있다.
이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올바르게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관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며 “비도덕적인 행동을 한 사람의 개인정보룰 유출하고 직접적으로 비난함으로써 도덕적 우월감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행동에 대해 잘못이라는 생각을 잊게 된다”고 설명했다.
신상 터는 네티즌 수사대
신상 털기를 하는 네티즌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찰 관계자는 “해외 서버를 이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면 당사자를 찾기 쉽지 않다”며 “잡아서 처벌하는 것도 좋지만 네티즌들이 도덕적으로 성숙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정보 유출에 관한 자료와 교육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다음 번 피해자는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신상을 털기 전 한 번이라도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18세 이하 미성년자에게 SNS와 포털사이트에서 자신과 관련된 기록을 지우거나 숨기도록 요청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성년자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성인이 된 후 사회생활에 방해가 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유럽연합(EU)에서도 지난해 초 잊혀질 권리를 내용으로 하는 정보보호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우리나라 역시 ‘잊혀질 권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다. 국회에서는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입법화에 따른 영향평가 작업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잊혀질 권리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어 앞으로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