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오피스텔 전세매물 조심해야 ‘비상’
전문 대출사기단 등장 피해액수 만만찮아
해당 시· 군청 통한 거래자 신분확인 필수
전문가들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 시급”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는 서민들을 울리는 부동산 사기가 들끓고 있다. 특히 전세대란이라는 말이 횡행하고 있을 만큼 전세의 씨가 마르고 있는 틈을 노리는 사기꾼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아울러 사기 수법도 교묘해지고 대상도 무차별적으로 확대되고 있어 그 심각성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일요서울]은 본격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수많은 피해자와 피해액을 양산하고 있는 신종 부동산 사기의 유형과 대처법을 알아봤다.
얼마 전 결혼한 A씨(30)는 신혼집 마련을 위해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M오피스텔을 찾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집 상태에 A씨는 곧바로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전세금도 1억 원 정도로 당시 시세보다 값이 싸 더욱 마음에 들었던 A씨다. 그러나 A씨의 신혼살림의 꿈은 오래가지 못하고 모두 물거품이 됐다. A씨가 집주인으로 알고 계약했던 B씨는 전문 부동산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B씨는 2009년부터 해당 오피스텔에서 채당 보증금 1000만 원을 내고 수십 건의 월세계약을 체결한 뒤 이를 다시 피해자들에게 보증금 1억 원 안팎을 받고 전세를 놓는 수법을 사용했다. A씨 외에도 B씨에게 당한 피해자들은 대부분 신혼부부 등 지방 출신의 20~30대 사회 초년생들로 30여 명에 이르렀고 피해액도 30억 원 규모에 달했다.
신혼부부·지방학생 피해
사례와 같이 중개업자 또는 월세세입자가 임차인과 전세계약을 해 전세보증금 차액을 남기는 방법이 가장 대표적인 신종 부동산 사기 수법이다. 또 이 과정에서 오피스텔, 원룸 등의 임대인에게서 부동산 관리 및 임대차 계약을 위임받은 중개업자가 임대인에게 월세계약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면 모두를 감쪽같이 속일 수 있다.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사기꾼이 월세계약 당시 받아둔 집주인 주민등록증 사본에 자신의 사진을 붙여 집주인 행세를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혹은 ‘실제 주인은 자기지만 세금문제 때문에 지인의 이름을 등기부에 올려놨다’는 거짓말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기꾼이 직접 부동산 중개사무소까지 차리는 경우도 있다”며 “조직적으로 공모해 월세로 여러 채의 주택을 임차한 뒤 중개업자와 집주인 신분으로 위장하고 많은 전세 세입자와 중복계약을 체결해 전세보증금을 챙기는 일도 있다”고 조언했다.
결국 정밀한 서류 조작과 함께 계약 당시 집주인이 실제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세입자는 눈을 뜨고도 코를 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 같은 전세난에 이사철이 겹치면 사기꾼들이 들어갈 전셋집이 없다는 분위기에 불안한 세입자들의 심리를 이용하기가 더 수월하다고 지적한다.
금융권도 속절없이 당한다
또 다른 사기 유형은 대출 사기다. 대출 사기단은 은행 대출만으로 미분양 아파트를 사들인 후 대출금을 갚지 않고 아파트를 경매에 넘겨버린다. 이에 세입자들은 갑작스럽게 전세금을 떼일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들의 주 목표물은 서울권 및 지방에 널려 있는 미분양아파트, 즉 ‘땡처리 매물’이다.
지난 7월에도 분양가를 부풀려 금융기관으로부터 거액을 대출받아 부산 경남지역 미분양 아파트를 헐값에 100여 채나 매입한 부동산 땡처리 업자 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 역시 대출금을 갚지 않아 담보로 잡힌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갔고, 이 때문에 명의 대여자와 세입자들만 낭패를 보게 됐다. 이들이 단돈 10원도 들이지 않고 벌어들인 부당대출 금액도 206억 원에 달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1년 5월 경남 진주와 통영 소재의 미분양 아파트 85채와 부산 남구 용호동의 미분양 아파트 22채를 정상 분양가의 60∼65%에 매입했다. 3000가구 규모의 부산의 한 아파트단지였던 이곳은 입주를 시작한 지 5년이 지나도록 미분양으로 골치를 앓던 곳이었다.
이후 이들은 대출 브로커와 짜고 미분양 아파트를 정상 가격에 매입한 것처럼 업(up) 계약서를 작성하는 교묘함을 보였다. 이어 대출심사가 비교적 단순한 모 축산농협과 울산의 모 새마을금고 등 11개 금융기관으로부터 206억 원을 부정 대출받아 미분양 아파트 구입 잔금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차액을 남겼다. 이렇게 구입한 아파트 가운데 78가구는 재분양이 이뤄졌다
또 이러한 이들의 사기 행각에 가장 크게 피해를 본 것은 전세금의 반값에 아파트에 입주한 세입자 16명이었다. 은행에서 대출금을 회수하기 위해 집을 경매에 넘겨 전세보증금을 떼일 처지로 내몰린 것이다.
서울 시내 땡처리 아파트로 유명한 한 아파트 단지의 분양 관계자는 “부동산 떨이를 노리는 악덕 사기의 전형이다. 실거래가가 아닌 원분양가로 계약서가 작성되다 보니 비교적 쉽게 사기를 칠 수 있다”고 전했다.
집주인들은 안전한가
아울러 사기의 진화는 세입자뿐만 아니라 집을 가진 주인들도 당하기 일쑤다. 월세 아파트를 노리는 사기꾼들의 주된 범행 대상은 보증금이 1000만~2000만 원으로 저렴한 수도권 월세 아파트가 된다. 이들은 월세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집주인의 개인정보를 손에 넣어 주민등록증을 위조한다. 그리고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집주인 몰래 허위 전세계약서를 만든다. 전세계약서에 확정일자까지 받은 뒤 담보대출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들의 마수에 걸린 집주인들은 금융사의 가압류 등 피해를 감수해야 했고 전세자금을 대출해준 은행 보험사 등 금융회사와 대부업체도 비상이 걸리긴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사기수법들이 기승을 부리는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은행에서 주민등록증 위조를 쉽게 확인할 수 없다는 맹점을 꼬집고 있다. 또 한 집을 담보로 여러 은행이 동시에 대출할 수 있는 업계의 현실도 지적됐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전세사기에 대해 “중계업자와 거래 상대방의 신분 확인과 거래 등록된 중개업자인지 여부는 해당 시, 군청 등 중개업무 담당부서를 통해 할 수 있다”며 “임차건물 소유자가 맞는지 반드시 확인한 후에 계약금, 중도금, 잔금을 치러야 한다”고 예방법을 일러줬다.
또 “건물 소유자로부터 위임받은 사람과 계약을 체결할 경우 위임 여부 또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면서 “시세보다 거래조건이 좋을 경우 그 이유를 꼭 알아보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각에서는 앞으로 몇 년간은 전세 가격 폭등과 전세난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고 금융권에서 전세자금 대출 한도가 높아진 점을 노리는 등 부동산 지능사기의 진화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