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이범희 기자] LIG그룹이 계열분리 후 오너 부자의 동반구속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지난 13일 법원은 구자원 LIG그룹 회장에게 2000억 원대의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해 개인투자자들에게 손해를 입혔다며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또 구 회장의 아들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43)에게는 징역 8년을 선고했다. 반면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은 분식회계와 CP 발행에 관여하지 않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따라 LIG의 향후 경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속됨에 따라 법원의 ‘기업 범죄’에 대한 엄단의 의지가 다시 한 번 확인됐다는 평이 나왔다. 이에 [일요서울]은 LIG의 수사에서 구속까지의 풀스토리를 들여다봤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설…전망 불투명 // 아빠와 아들 법정구속…검찰 엄단 의지
"소액 투자자에 큰 피해" 이례적 중형 // CP 발행 우리투자증권 불똥 튈까
LIG그룹 오너 일가의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된 것은 19대 총선 직후다.
이때만 하더라도 정권 초에 하는 이례적인 수사라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는 방대했고 2011년부터 수사를 벌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같은 해 8월 금융감독원도 LIG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직전 수백억 원대 기업어음을 발행한 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펼친 것으로 알려진다.
곧바로 검찰도 관련자들의 계좌 추적 작업을 마무리하고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 등에 대한 직접 조사 시기를 검토했다는 후문이다.
검찰은 LIG그룹이 LIG건설의 법정관리를 앞둔 지난해 2월 28일~3월 10일 금융기관에 허위자료를 제출해 242억4000만원의 기업어음을 발행한 경위를 조사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구 회장 일가가 2006년 LIG건설을 인수하면서 담보로 잡힌 주식을 법정관리 전에 되찾을 목적으로 이 같은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금융감독원의 고발에 따라 사건 수사에 착수했으며, 올초부터 이들에 대한 은행ㆍ증권 등 계좌 추적 영장을 발부받아 광범위한 조사를 벌여왔다”며 “중간에 속칭 ‘BBK 가짜편지’사건에 집중하느라 잠시 속도를 내지 못했지만 해당 사건을 종결지으면서 LIG 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들 “구속수사 하라”
이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구 회장이 LIG건설 CP발행 피해자들에게 “사재 출연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배상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구 회장은 같은 달 26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LIG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CP 피해자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께 마음 깊이 사과드린다”며 머리 숙여 사죄했다.
구 회장은 이어서 “2011년 3월 LIG건설 법정관리 신청으로 인해 발생한 모든 문제는 내 부덕의 소치”라며 “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는 의미에서 서민 투자자들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서 LIG그룹은 구체적인 구제책을 내놓지는 않았다. 연말까지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 대책을 발표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당시 LIG그룹 고위 관계자는 “서민 피해자 위주로 최우선적으로 보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구본상 부회장에 대해 검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한 바로 다음날 이뤄졌다는 점에서 아들의 감형을 노린 구 회장의 결단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을 부추겼다.
LIG 측은 이에 대해 "어제까지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자회견을 여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판단해서 오늘 기자회견 날짜를 잡았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LIG 측이 피해자 구제책을 내놓겠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안이 나온 것이 아니라 ‘미안하다’며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계획을 세우겠다는 선언만 한 것”이라며 “이를 피해자들과 원만히 합의했다고 보긴 어렵다”며 수사의지를 꺾지 않았다.
CP 관련 피해자들 또한 오너 일가의 구속수사를 재차 촉구하고 나섰다. 피해자들은 구 회장의 피해구제 약속이 면피용에 그친다고 반발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피해자들에 대한 신속한 손해배상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 등이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고 이를 받아들인 건 법원이었다. 부자의 동반구속이라는 결말을 이끌어 낸 것이다. 또한 CP를 발행한 우리투자증권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지에 대해서도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LIG그룹은 이번일로 인해 기업 이미지와 사회적 여론의 심판대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당분간은 그룹 계열사들이 침체된 분위기일 수밖에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LIG그룹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우선 1심이며, 이런 결과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오너의 공백 사태가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계열사들의 운영에 큰 지장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 등 무리한 사업 확장 '부메랑'
LIG그룹은 과거 LG그룹에서 고 구철회씨가 현재의 LIG손해보험의 전신인 LG화재보험을 분리해 나오면서 시작된 기업이다. 분리 당시 LG는 전자를 주력으로 삼고 LIG는 보험, LS는 전선 등으로 확실히 분할된 영역을 유지하고 있었다. 동맹기업인 GS그룹과도 관계 정리가 확실했다. "향후 5년간 같은 업종에 진출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허씨와 구씨가의 신사협정’을 맺을 정도였다.
그러나 LIG가 건설과 제조업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LIG는 2004년 LG정밀에서 방위산업 부문을 인수해 LIG넥스원을 설립했다.
또 2006년에는 TAS(경비용역업체)를 운영하던 구본상 대표가 중견건설업체 건영을 인수하며 건설업 진출을 선언했다. LIG건영은 새 아파트 브랜드인 LIGA를 선보이고 해외시장에도 진출한 데 이어 LIG건설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종합건설업체로의 도약 의지를 분명히하고 나섰다. 2009년엔 한보건설을 각각 인수하면서 건설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구 대표는 보험영업만으로는 수익모델 창출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건설사 진출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까지만 해도 재벌가의 부동산 사업은 위기 속에서도 난공불락의 맷집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LIG의 사업 확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9년에는 ADP엔지니어링을 인수해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에까지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LIG는 2010년 LCD 생산업체인 LIG에이디피의 경영악화 등이 이어지면서 제조업 진출의 쓴맛을 단단히 봐야 했다.
또 건설경기 악화로 LIG건설이 부도를 맞자 경영권 유지를 위해 사기성 CP를 발행한 것이 결국엔 오너 일가의 구속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불러오게 됐다.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안게 된 셈이다.
LIG의 최대주주이기도 한 구본상 부회장은 고 LG 구인회 창업주의 첫째 동생인 고 구철회씨의 장손이다. 부친 구자원 전 LIG손보 명예회장은 LIG손보 2대 주주이며, 구자훈 LIG손보 회장이 구 대표의 숙부, 구본무 LG 회장이 구 대표의 재종형이다. 이런 이유로 LG가 다시 건설업에 진출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힘을 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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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