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가들 “한국정치 자기역할 못한 지 이미 오래”
[일요서울ㅣ안은혜 기자]조용한 여의도, 시끄러운 시청 앞. 청와대는 여의도에 등 돌리고 ‘나 홀로 정치’에만 열중하고 있다. 여의도 정치 역시 내부에서부터 “민주당은 샐러리맨, 새누리당은 공무원으로 전락해 한국정치가 실종됐다”는 냉소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에게도 “민주주의 국가를 운영하는 기본 원리를 지키지 않는 대통령”이라고 혹평을 한다. 정치평론가를 통해 본 한국정치의 현실을 점검해 봤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이러한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 혐의’수사로 국회를 파행으로 몰아간 국정원의 대선 불법 개입 의혹,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 각종 복지 공약 축소와 세제 및 전기 요금 개편안 논란을 잦아들게 만들었다. 청와대의 일방통행과 여의도 정치의 실종으로 이어질 것이란 예상도 이어졌다.
“민주공화국에 사는 게 맞나?”
‘이석기 사태’로 민주당의 입지는 축소되는 분위기다. 민주당이 지금껏 박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김한길 대표와 박 대통령의 단독 회담을 주장해온 것은 국정원 개혁 요구를 관철시키겠다는 전략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수사의 주체가 국정원이기 때문에 당장 국정원 개혁 요구에 대한 수위와 방식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단 민주당은 이번 사태의 영향권에 휘말리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이석기 사태’에 대한 민주당의 공식 입장도 초기의 “현 사태를 엄중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유보적인 입장에서 점차 통합진보당과 선을 긋는 쪽으로 바뀌었다. 장외투쟁의 출구를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추석 연휴를 감안해 정기국회 초반은 등원을 미룬다지만, 그 이후에도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이번 사태로 올 하반기는 여야 청와대간 경색 국면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 정치평론가는 아예 올 하반기를 ‘공안 정국’으로 규정한 뒤 “새누리당이 무기력증에서 탈피하지 않는 한 당분간 박 대통령의 ‘나 홀로 정치’만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여준 ‘울림’ 협동조합 이사장은 지난 12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가끔 ‘내가 민주공화국에 사는 게 맞나’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여야를 떠나서 한국정치가 자기 역할을 못한 지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래됐다. 그래서 국민들이 정치권을 극도로 불신하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취임한 뒤 어떻게 보면 현실정치와 국가운영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태도를 자꾸 보이는데, 이는 정말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윤여준 이사장은 이어 “야당으로서는 정치는 없고 통치만 있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정치를 안 하고 어떻게 통치를 하나”라고 격노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민주주의 국가를 운영하는 원리는 헌법에 정해져 있다. 그런데 이를 지키지 않으니까 야당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시청 앞에 천막 친 지 한 달이 넘었다. 야당이 회담 제안한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게 정상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해외순방을 마치고 들어온 박 대통령은 3자 회동에 동의했다.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지만 청와대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남북 관계를 필두로 한 외교안보 분야의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국정 운영 동력도 웬만큼 확보한 상황으로 낙관적이다. 명지대학교 신율 교수는 “민심과의 접촉면이 넓고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한 여의도 정치가 위축되는 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이런 때일수록 박 대통령이 여야 정치권과의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도적으로 국회의원 존중할 필요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간 3자 회담이 16일 국회에서 열린다. 민주당은 지난 13일 회담 제의를 수용했다.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벌인 지 47일 만에 이뤄지는 회담이다. 이와 관련해 이철희 정치평론가는 지난 12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청와대에서 3자회담을 제안하긴 했는데 회담내용에 대해 잘 몰라 뭐라 답변하기 어렵다”면서 “회담 제안은 많이 늦었지만 늦었더라도 모양새를 만들어가는 것은 잘 한 일이다. 이벤트 저렇게 푸는 것 보다는 빨리 제도적으로 국회의원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윤여준 이사장은 청와대의 3자 회담 제안에 대해 “늦은 감이 없는 정도가 아니다. 대통령은 진작에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하고) 만났어야 했다”며 “형식은 3자회담을 제안했다고 하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서로 주문사항이 있을 테니까 조율이 되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야 간 극한 대치와 국회 파행으로 얼룩졌던 정국이 3자회담으로 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하게 될지 주목된다. 현직 대통령이 여야 지도부와의 회담만을 위해 국회를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이처럼 파격을 넘어선 형식만큼 당일 회담의 성과도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국민의 마음을 달랠 수 있을지 여부다.
민주당은 회담 제의를 수용하면서 박 대통령이 이번 회담을 통해 국정원 개혁으로 상징되는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의지와 결단을 보여줘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이는 국정원의 지난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대통령이 나서 유감과 함께 책임자 처벌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는 의미여서 박 대통령이 어떤 생각을 밝힐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민주당의 회담 수용에 대해 “잘된 일”이라면서도 민주당의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겠다”고만 말했다.
한편, 이철희 소장은 정당정치와 현안에 대한 [일요서울]의 질문에 “제도적으로는 ‘양당구조의 정치가 옳다, 다당구조가 옳다’ 어떤 것이든 정답이 없다. 선거제도가 비례대표제인지 단순 다수제인지가 중요하지, 정당 구조가 양당이냐 다당이냐는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정치현안에 대해 ‘이석기 사태’의 경우 한국정치의 위기라고까지는 볼 수 없다. 다만 언젠가는 터질 문제가 터진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iamgrace@ilyoseoul.co.kr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