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전시관, 10인 이상 단체 및 개인 관람 신청 가능
대테러·산업보안·사이버안전·북한정보에서 댓글까지?
지난 9일 오후 1시 30분께. 국정원 안보전시관 견학 신청 시간에 맞춰 헌인릉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하니 건너편에 커다란 건물이 보인다. 길을 건너자 2인 1조로 순찰을 도는 전경들과 ‘미인가 차량진입불가’ 안내문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정문에서 500m가량 내려가면 안내소가 보인다. 이곳에서 예약 신청을 확인하면 어깨에 ‘NIS 방문’이라고 적힌 하얀 스티커를 붙여준다. 10명의 관람객이 모두 모이자 휴대전화를 반납한 후 국정원 안으로 들어갔다.
다양한 간첩장비 전시
안보전시관이 있는 건물 입구에서 가방과 가지고 온 소지품을 모두 맡기고 나서야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어떤 물건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는데 ‘아 역시 보안이 철저하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다.
제일 처음 눈에 띈 것은 드라마 아이리스에 출연했던 배우 김태희의 패널이었다. 김태희와 이병헌은 아이리스 방영 이후 국정원의 명예요원으로 등록됐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패널을 뒤로하고 영상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대한민국 독립과 아리랑에 대한 10분 남짓의 영상을 보고 전시실로 이동했다. 전시실로 들어가는 복도에는 외국 정보국이 국정원 방문 후 건넨 기념품과 각 나라의 정보보안 포스터, 역대 우리나라에서 사용한 간첩 신고 포스터 등이 전시돼있다. 간첩 신고 시 최고 1억 원이던 포상금이 5억 원으로 올랐다는 요원의 설명이 이어지자 ‘우와~’라는 탄성이 나왔다.
전시실에 들어가기에 앞서 국정원의 활동 내용에 대한 영상을 봤다. 대테러, 산업보안, 사이버 안전, 북한 공작원 적발 등 요원들의 활동 범위와 활약상을 보니 우리를 안내하는 요원이 새롭게 보일 정도였다.
제1전시실에서는 국가정보원의 변천사와 역사 속 정보활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간첩 사건들의 증거와 당시 간첩들이 입었던 옷·무기 등이 그대로 전시돼 있어 호기심을 일으켰다.
1997년 드러난 최정남·강연정 부부간첩사건 당시 압수했던 총, 독침, 독약 샘플과 탈북자로 속이고 황장엽 암살을 시도했다가 발각된 북한 공작원이 가지고 있던 펜 모양의 독침, 총, 독약과 라이터 모양의 총도 볼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만 보던 물건들을 눈앞에서 확인하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2전시실에서는 국정원의 안보수사 활동, 마약·위폐·밀수·여권위조 등 국제범죄 실태 및 적발 사례, 대테러 활동, 국가사이버안전센터, 산업스파이 색출·첨단기술 보호 등의 활동에 대한 전시물을 볼 수 있다. 테러 진압 시 요원들의 의상, 적발 사례, 위조지폐 식별 기기부터 마약까지 직접 볼 수 있다.
그 옆 3전시실에는 포토존, 영화·드라마 포스터, 첩보장비 체험코너가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는 국정원 본관을 배경으로 합성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포토존 옆에는 아이리스, 7급 공무원, 쉬리 등 국정원 요원이 주인공으로 나온 드라마·영화의 포스터들이 전시돼 있다.
이렇게 한 시간가량의 관람이 끝나면 국정원에서 주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 태극기 배지와 볼펜, 다양한 국정원 안내 책자가 들어 있었다. 북한의 무력 도발, 간첩선의 유형, 111(간첩 신고 전화) 신고 내역 등 국가 안보에 대한 내용이 담긴 만화 책자였다.
수상한 사람 보면 111
로비에서 10여분의 휴식이 끝나면 반납했던 가방과 휴대전화를 돌려받는다. 이렇게 국정원 탐방이 끝났다. 기념사진이라도 남기고 싶었지만 국정원 안에서는 보안 유지를 위해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해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들어왔던 곳과 반대쪽 문으로 나가니 ‘남재준 원장님 힘내세요’, ‘국정원 요원 당신들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등의 내용이 담긴 현수막이 길을 따라 걸려 있었다. 그 많은 현수막 중 최근 논란이 됐던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시 내곡동에 위치한 국정원 안보전시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사전 예약 후 관람이 가능하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예약번호로 전화를 하면 관람 가능한 일정을 안내 받을 수 있다. 그 후 홈페이지에서 관람 신청을 하면 예약 확인 전화를 받은 후 그 날짜에 맞춰 안보전시관을 방문하면 된다.
대한민국 정보기관 50년의 역사
대한민국 국가정보기관의 역사는 1961년 6월 ‘중앙정보부’의 창설과 함께 시작됐다. 중앙정보부는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 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국가 기밀에 속하는 보안 업무, 형법 중 내란 죄, 군형법 중 반란죄 등에 대한 수사를 담당했다.
중앙정보부는 김종필 초대 중정부장이 취임하고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부훈과 함께 그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으며 1967년 동백림 거점 간첩단 검거, 1974년 울릉도 거점 간첩단 검거, 1975년 학원침투 간첩단 검거 등의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박정희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감금·고문하고 간첩으로 조작하는 등(인혁당 사건 등)의 반 윤리적인 모습을 보여 많은 비난을 받았다.
1981년 1월 중앙정보부는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안기부는 1983년 미얀마 아웅산묘소 폭파사건 조사,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 검거 등의 활약을 보였으나 전두환 정권의 독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불법 감금, 고문했으며 박종철에게 폭행,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가하다 사망하자 “탁 치니 억하고 사망했다”고 거짓 발표를 해 6월 항쟁의 불씨를 만들기도 했다.
1999년 지금의 국가정보원이 출범했다. 국정원은 2006년 일심회 간첩사건 관련자 검거, 2010년 황장엽 암살기도 간첩 검거 등 국가 안보를 위해 힘쓰고 있으나 최근 민간인 사찰, 대선 개입 의혹 등을 받고 있다.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