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해요] 육아휴직 후 사표
[어떻게 생각해요] 육아휴직 후 사표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3-09-16 09:29
  • 승인 2013.09.16 09:29
  • 호수 1011
  • 4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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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사냐? 기금만 챙기는 먹튀냐?

기다린 동료 생각 않아 무책임…인사담당자 속앓이
회사 내 ‘결혼·임신’ 숨기는 사례 급증…얌체족 늘어

아이를 낳으면 휴가를 준다. 최대 1년 범위 내에서 준다. 남편도 준다. 그것도 ‘육아휴직’이라는 명분으로 유급휴가를 준다. 정부 지침이기에 대부분의 기업이 이를 따른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업들 사이에서 이 정책을 두고 찬반논란이 뜨겁다. 유급 육아휴직 후 회사를 떠나는 ‘얌체 직원’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 때문에 사측은 불필요한 경비를 지출해야 하고, 동료들은 회사 업무 차질로 피해를 보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런 와중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육아휴직을 거부하는 기업에 대한 명단 공개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일부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한숨을 쉬고 있다. 그 이유를 알아본다.

출산을 한 A씨는 1년간의 육아휴직 후 화려하게 복귀했다. 동료들의 축하메시지를 기대한 그녀였지만 오히려 바라보는 시선에서 따가움을 느껴야 했다. 그녀가 돌아오지 않을거라 생각한 동료가 더 많았다는 사실을 듣고서는 충격에 빠졌다. 그 이유는 함께 출산휴가를 갔던 옆 부서 여직원 B씨 때문이었다.
B씨는 결혼과 함께 임신을 하더니 출산을 이유로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늘어난 업무에도 동료들은 B씨를 축하해줬고, 그녀는 축복 속에 출산휴가를 떠났다. 그러나 그 축하는 곧바로 동료들의 피해로 돌아왔다. 육아휴직 복귀 하루 전 사표를 낸 것이다.
다음 차수의 대기직원도 있었지만 ‘육아휴직녀는 먹튀녀’라는 꼬리표 때문에 주변 동료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이처럼 육아휴직을 악용한 사례가 직장 내에서 빈번하게 이뤄지면서 인사담당자들의 하소연이 늘고 있다.
한 인사담당자는 “이런 사람 정말 많이 본다. 업무 분담하며 기다렸던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겠느냐”며 “동료들에겐 멘붕이 온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담당자는 “이러니 회사에서 육아휴직제도는 없어져야 한다고 떠드는 것”이라며 “육아휴직을 원하는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 주는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5일에는 인기방송인이자 유명 개그맨 유재석씨의 부인 나경은 아나운서의 먹튀 의혹이 알려져 육아휴직에 대한 찬반논란이 한층 더 높아졌다.
한 매체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육아휴직을 받고 최근 MBC에 복귀하기로 했던 나 아나운서가 가정과 육아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사측에 표명하고 사직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인터넷에선 단순히 회사를 그만둔 것에 대한 이야기보다 나 아나운서가 1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자마자 회사를 퇴사한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우리나라는 근로자들의 임신과 출산에서 최적의 기업환경을 만들어 출산율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2001년 11월 1일부터 근로자들을 상대로 육아휴직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해당 사업장에 1년 이상 근무하고 만 6세 이하의 초등학교 취학 전 자녀를 둔 근로자가 양육을 목적으로 사업주에게 휴직을 신청하는 제도로서 남편이든 부인이든 1명이 1년 범위 내에서 신청할 수 있는 유급휴직제도다.
2012년 기준, 전국의 육아휴직자는 6만4069명. 올해는 7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고용노동부는 예상한다.
고용보험기금에서 육아휴직급여가 지급되기 시작한 2001년(25명)과 비교하면 2500배 증가한 수치다. 남성 육아휴직자도 2001년 2명에서 작년엔 1790명으로 늘었다.
육아휴직급여 역시 지난해 총 3577억 원으로 해마다 20~30%씩 늘고 있다.
육아휴직 시 지급되는 육아휴직급여는 매월 통상임금의 100분의 40을 지급하고, 급여 중 100분에 15를 직장복귀 6개월 후에 합산해 일시불로 지급한다.
즉 휴직급여의 85%는 1년간의 육아휴직 기간에 지급하고 나머지 15%는 육아휴직 후 회사에 복귀해 6개월간 근무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상한액은 월 100만 원이고 하한액은  50만 원이다.
제도 취지는 ‘근로자의 육아 부담을 해소하고, 계속 근로를 지원함으로써 근로자의 생활 안정 및 고용 안정을 도모하는 한편, 기업의 숙련 인력 확보를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육아휴직이 끝나갈 때쯤 “아무래도 일을 못하겠다”며 사표를 내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는 비율은 70~75% 정도. 나머지는 자의·타의에 의해 회사를 그만두고 있는 실정이다.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도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수백개의 댓글이 달리는 등 ‘찬반 전쟁터’가 됐다. 상당수 네티즌은 먹튀 직장인들을 “얌체 같다”고 비난했다.
한 네티즌은 “동료들이 일감을 나누면서 고된 일을 다하며 1년을 기다렸는데 하루 전날 사직의사를 밝히면 그만큼 맥 빠지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며 “개인주의가 선의의 출산휴가자들의 덫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옹호하는 글도 있다. 닉네임 ‘포미**’은 “복직해야지 생각하다가 막상 출근하려니 막막해서 그럴 수도 있는데 먹튀라고 하시면…(집안 어른들이) 봐주시기로 했는데 사정이 생겨서 갑자기 못다니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고 적었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에서 육아휴직 불참 기업에 대한 명단 공개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져 논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은 육아휴직 관련 규정을 어긴 사업주 명단을 공개하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지난 6일 전했다.
이번 개정안은 고용노동부에 ‘상습법위반 사업주 명단공개 심의위원회’를 만들고, 육아휴직·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규정을 상습적으로 위반한 사업주를 심의해 관보 또는 고용노동부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할 수 있게 했다.
신 의원은 “근로자들이 육아휴직을 당당하게 신청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업주들의 경각심을 일깨워 상습적으로 규정을 위반하는 기업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 육아지원 제도가 빠른 속도로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가뜩이나 현 정부 들어 세무당국의 조사가 한창인 상황이고, 국정감사가 불과 한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신 의원의 발의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모 기업 인사담당자는 “육아휴직자의 이탈 방지를 위한 법부터 마련해야지 무턱대고 기업만 죄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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