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민족의 대명절 한가위가 다가왔다. 특히 올해 추석은 주말을 포함해 장장 5일간의 긴 공식연휴를 맞게 된 터라 저마다 고향방문, 해외여행 등 특별한 추석나기를 계획하는데 더욱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재벌 총수들은 각자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을까. 재벌다운 초호화 명절을 구상 중일까, 한 그룹의 총수답게 경영에만 몰두할 계획일까, 혹 둘 다 아니라면 그저 한 사람의 평범한 가장으로 돌아가 일상의 소소함을 즐길까. 그들의 추석나기를 조망해 봤다.
삼성 이건희 회장 해외출장 후 “경영구상에 몰두”
LG·현대차 휴식 등 가족과 함께 개인일정 소화
SK·CJ·한화 감옥·병원에서 명절 맞는 우울한 회장님
KT 신사업 시작 “쉬고 있을 시간 없다” 분주함 보여
재계 총수들의 추석 연휴 풍경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천양지차를 그릴 것으로 보인다. 그룹 내 특별한 우환이 없는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따로 일정 없이 휴식을 취하면서 현안 처리 및 하반기 경영구상을 예정 중이다.
반대로 갈 길 바쁜 이석채 KT 회장은 ‘추석은 없다’는 정신으로 경영 일선에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거의 매년 추석을 앞두고 해외 출장을 다녀오는 이건희 삼성 회장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해외 일정을 소화하고 있으며 연휴 중에도 경영구상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주요그룹 대부분의 총수는 3·4분기 경영실적을 점검하고, 내년도 경영전략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완전한 휴식은 취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무소식이 희소식”
하지만 일부 총수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는 것에 초점을 맞춘 상태다. 다만 휴식이 진짜 휴식인지는 의문이다. 우선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 그룹 회장은 세간에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만큼 병원에서 치료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오는 27일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올 추석을 구속된 상태로 맞이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총수가 연휴에 잠시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큰 우환이 없다는 뜻이다. 특별한 경영 일정 없이 개인 시간을 보낸다는 소식이 바로 희소식이다”라고 말했다.
올 추석엔 LG그룹이 이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은 올 상반기 M&A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면서 활발한 사업조정을 보였다. 비주력이나 한계사업을 부지런히 정리해 계열사 증가를 최소화하는 가운데서도 스마트TV의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하고자 HP사의 웹OS를 사들이는 등 다채로운 움직임을 드러냈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LG그룹은 상장사 영업이익이 2조2288억 원으로 26.6% 증가해 10대그룹 중 가장 높은 영업이익 증가폭을 자랑했다. 주력 계열사인 LG전자와 LG화학에선 영업이익이 하락했지만 이외 계열사들 실적은 호조를 보였다. LG유플러스 영업이익이 316.3 % 급증한 가운데 LG이노텍, LG하우시스 역시 2배 넘는 성장률을 보였다.
이처럼 LG그룹이 비교적 괜찮은 상반기를 보낸 터라 구 회장은 마음 편한 연휴를 보낼 수 있게 됐다. LG그룹 관계자도 “회장님의 경영일정은 딱히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가족들과 일정을 보내지 않을까 한다”고 전했다.
다만 구 회장이 지난 10일 임원세미나를 통해 “우리의 강점인 융복합 IT 역량에 틀을 깨는 창의력을 더해 시장의 판을 흔들어야 한다”고 밝힌 만큼 연휴 기간에도 LG전자의 사업발전을 구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 역시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그룹 3사가 추석을 앞두고 협력사의 자금 부담 완화를 위해 협력사 납품대금을 추석 연휴 전에 조기 지급한다고 밝히고 추석을 맞이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지난달 미국 판매량도 11만8126대로 전년 동월 대비 6.3% 증가, 8월 기준 사상 최대 판매실적을 올리며 호조를 보였다. 또 오는 2016년 중국 생산량이 200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생산 확대가 빠르게 진행 중이라는 예측이 많다.
그 때문에 대외적으로 정 회장의 행보는 추석을 개인 일정으로 맞이한다고 밝힌 상태다. 다만 그룹 내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현대위아, 현대로템, 현대제철, 현대모비스 등 주요 계열사 노조가 모두 오는 29~30일 집중투쟁을 벌이기로 결정한 것이 유일하지만 최대 과제일 것으로 보인다.
앞서도 정 회장이 “자동차, 철강 등 투자를 차질없이 진행하겠다”고 밝혔고 노사갈등 문제 역시 중대한 사안인 만큼 연휴 동안 해외사업과 노사갈등 해법을 고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석채 KT 회장은 앞선 두 회장의 행보와는 다르게 현장 경영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KT는 미래창조과학부와 해결해야 하는 900㎒의 주파수 간섭 문제, 광대역 LTE 망과 900㎒를 묶는 광대역 LTE-A 선점 등 당면 과제가 많다.
“9월이 승부, 바쁘다”
또 주파수 할당 정책으로 인해 수도권은 9월 중, 서울은 10월에 서비스를 앞두고 있다. KT는 이동통신3사 중 가장 빠른 9월에 가장 먼저 광대역 LTE 서비스를 시행할 계획이다. 이통사 중 KT만 유일하게 기존에 사용하던 1.8㎓의 인접대역을 낙찰 받아 별도의 장비 교체 없이 바로 서비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KT 관계자는 “주파주 경매가 이제 마무리 된 이상 9월 중에는 쉴 시간이 없다”면서 “회장님도 경영 일선에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 회장이 ‘1.8GHz 황금주파수’ 획득 이후 최근까지 향후의 전략 방향을 공유하고 직원들의 고충을 함께 듣는 ‘현장경영’을 진행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재계 1위 삼성그룹의 총수 이건희 회장의 추석은 어떨까.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하반기 경영 구상에 몰두할 것”이라며 “현재는 해외출장 중이라 추석을 어디에서 보낼지는 지켜봐야 알 것 같다”고 대답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은 워낙 조용한 시간을 즐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IOC총회 및 해외 순방 일정이 끝나면 그동안 해온 것처럼 조용히 경영구상을 마치지 않겠냐”고 예측했다.
“최악의 명절 보낼까”
한화, CJ, SK그룹의 수장들은 인생 최악의 명절을 보낼 위기에 놓였다.
이재현 CJ 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은 거의 같은 처지다. 두 회장 모두 서울대병원 특실에서 지병을 치료 받고 있다.
양 그룹 관계자들 역시 “지병 치료에만 집중할 것”이라며 “그 외엔 어떠한 일정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특히 CJ 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은 수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이 매우 불편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게다가 이들에 대한 주변의 시선 역시 곱지 못한 상태라 병원을 나서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언이다. 이 회장과 김 회장 둘 다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 중 질병을 이유로 구속집행 정지 결정이 내려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이 치료를 받고 있는 병실은 가족실, 회의실, 거실, 주방 등이 모두 갖춰져 있어 개인 일정을 보는 데 불편함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그래도 이들의 상황이 최태원 SK 회장보다는 낫다. 현재 구속수감 중인 최 회장은 오는 27일 재판부가 판결문을 작성해 판결을 내리는 선고공판만 남겨두고 있다. 결국 민족의 대명절이라는 추석을 감옥 안에서 보내야 할 판이다.
SK그룹의 한 관계자는 “별 다른 방법이 없다”고 토로하면서 “최 회장을 제외한 경영진은 특별한 경영일정 없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전했다.
최 회장이 지난 1월 31일 구속수감된 이후 8개월째, 재판부가 검찰의 구형대로 최 회장 징역 6년, 최재원 부회장 5년을 그대로 선고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