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쪼개서 개발 vs 전면 백지화 대립 여전해 // 해당지역 주민들 ‘대출금 상환 폭탄’에 덜덜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총 사업비 31조 규모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개발사업이었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의 회생 여부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서울시는 당초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사실상 마무리된 것으로 보고 지난 12일 개발대상 지역의 도시개발구역 지정 해제를 통해 토지거래제한을 풀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주인인 코레일(한국철도공사)과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이하 드림허브) 간 토지 이전 절차가 마무리 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찬반으로 나뉘었던 해당지역 주민들은 사업재개 기대감을 드러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사업백지화에 따른 후폭풍을 대비 중이다. 더욱이 정치권에서의 책임공방이 여론악화 몰이로 전개 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 파장에 따른 경제적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코레일 토지대금 반환…시행사 드림허브 자격 상실
등기이전 마무리하면 사업 최종 무산…피해주민 속출
지난 6일 [일요서울]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부지와 인접한 서부이촌동을 찾았다. 적막한 분위기가 역력했고, 일부 주민들의 모습은 시무룩했다.
서부이촌동 인근 건물 벽면에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에 대한 부당함을 알리는 글귀나 찬성하는 글귀들이 붙어 있었고,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푸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민재산 강탈하는 개발사업 결사반대”, “삶의 터전 짓밟는 서울시를 규탄한다”, “중산서민 죽여 놓고 국제업무단지 만들어서 무슨 영화 원하는가”등의 원색적인 글귀도 눈에 띄었다. 서울시가 도시개발구역 지정 해제를 예고하면서 ‘제2용산참사’가 될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레 흘러나왔다.
코레일이 잔금을 갚으면서 시공사인 드림허브가 자동 탈락되는 일이 발생한 직후여서 이러한 분위기가 더욱 엄습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주민들은 “개발구역으로 묶을 때도 주민 의견을 단 한번 묻지 않았던 서울시가 구역해지를 할 때도 또다시 과오를 되풀이한다면 이촌2동 주민들은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내놨다.
이촌 2동 11개 구역 동의자 대책협의회는 “드림허브가 용산개발 사업시행사 자격이 상실된다 하더라도 서울시가 직권으로 지구지정을 해제하겠다는 것은 주민의사를 철저히 무시한 절차”라며 “개발구역 해제를 위해서는 반드시 주민공람 공고와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 합리적인 행정절차를 거쳐 주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는 도시개발구역 지정 해제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으로 맞섰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행 도시개발법에는 구역해제 절차와 관련된 규정이 없는 상태여서 벌도의 심의 없이 구역 지정을 해제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며 “해제 고시가 되면 도시관리계획 수립 등 주민들을 위한 대책마련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해 후폭풍을 예견했다.
구역해제 고시 연기
주민들 희비 교차
[일요서울]이 지난 12일 또 다시 찾은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표정은 지쳐보였다.
서울시의 토지거래 제한 해제가 무기한 연기됐다는 사실이 알려줬지만 여전히 사업이 오리무중인 것은 변함없었기 때문이다.
당초 서울시는 이날 용산국제업무지구 도시개발사업 대상 부지에 대한 구역지정을 해제하려 했으나 사업시행자인 드림허브가 여전히 대상지에 대한 토지 소유권을 유지하고 있어 예정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규상 서울시 지구단위계획과장은 “아직 땅주인인 코레일(한국철도공사)과 드림허브 간 토지 이전 절차가 마무리 되지 않아 구역지정 해제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소유권 이전등기 신청 후 실제 명의이전이 되기까지는 며칠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를 확인 후 구역해제를 다시 고시할 방침이다. 마찬가지로 서부이촌동 일대에 지정됐던 이주대책 기준일 역시 구역해제와 함께 해제됐다.
그동안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국제업무지구 사업과 관련해 찬·반 으로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아파트, 단독주택, 상가, 세입자 등 소유관계에 따라 개발사업 추진에 대한 이해관계가 달랐다. 이 지역 주요 아파트 주민들은 재산권이 침해된다며 통합개발에 반대해왔고 인근 단독주택 일대 주민들은 보상비 등을 기대하며 개발에 찬성해 왔다.
김재홍 대림아파트 생존권사수연합회 대변인은 “사업시행자인 드림허브가 돈도 없고 부도위기에 있어 불안했다”며 “주민들이 동의해주면 집단대출을 받아서 사업비에 쓰고 이자는 내주겠다고 했는데 주민들이 책임질 수도 있는 불안감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이모씨는 구역지정 해지 소식과 관련해 “그동안 불안감에 살았는데 이제는 걱정 없이 살 것 같다”며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끝났음을 암시했다.
반면 단독주택에 살며 개발에 찬성했던 주민 김모씨는 “주민들이 대출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해 계속 경매로 주택이 나오고 있다”며 “이주비와 보상금이 나온다고 해서 이를 믿고 미리 대출받아서 집도 마련해놓고 한 것인데 쓸데없이 이자를 물고 낭패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이 내건 현수막에서도 주민들의 생각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아파트 입구에는 “공기업 한국철도공사 주민재산 인질 잡아 개발이익 챙기는 악덕 깡패기업이냐? 통합개발 포기하고 주민고통 배상하라”는 현수막이 걸린 반면 단독주택 일대에는 “경매로 집 잃고 거리로 내몰리는 것보다 내 목숨 잃고 가족 지키는 것이 낫다. 코레일과 롯데관광 밥그릇 싸움 관심 없다. 즉각적인 보상 실시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어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이처럼 주민들의 호불호가 엇갈리면서 사업 무산에 책임을 둘러싼 소송전도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화가 난 지역 주민들은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서울시 등에 대규모 소송으로 이어질 것이란 주장에 힘을 얻는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6년 이상 소유 주택 매도가 금지돼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만큼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됐다. 또 보상을 기대하고 대출을 받은 주민도 상당수다.
서부이촌동 주민대책위원회 등에 따르면 2298가구 중 절반이 넘는 1250가구가 대출을 받은 상태다. 대출 금액은 평균 3억4000만 원으로 이에 따른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빚·소송 얼룩질
서부이촌동…희망은 없나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탓인지 박원순 서울시장도 “무엇보다 주민들이 5~6년 재산권 행사도 못하고 어렵기에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업이 민간 주도의 개발 사업으로 직접 관여할 부분이 없다던 서울시가 한 발 물러선 태도다. 그럼에도 주민들의 서울시에 대한 불만은 커지고 있다. 주민들은 시가 개발계획을 내놓으면서 사업 좌초나 부작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장밋빛 희망만 심어준 것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김찬 서부이촌동 11구역 비상대책위원회 총무는 “서울시는 이촌동 주민을 용산사업에 끼워 넣은 채 방치했고 코레일은 대주주로서 사업을 제대로 꾸려가지 못했다”며 코레일에 이어 서울시를 대상으로도 소송을 제기할 뜻을 밝혔다. 서울시도 이번 사업 파산으로 SH공사의 지분 4.9%를 날리게 됐다.
용산지역 부동산관계자는 [일요서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용산지역 전체가 용산사업 부도에 유탄을 맞았다”며 “용산개발사업이 한강로 및 동부·서부이촌동 전체를 아우르는 호재였기 때문에 디폴트는 이 지역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기업들의 줄도산도 예견된다. 만약 사업이 백지화되면 사업 시행자인 드럼허브는 1조 원 규모의 자본금이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된다. 최대주주 코레일은 땅값 3조 원을 민간출자사들에 모두 되돌려줘야 한다. 2대주주로 참여한 롯데관광개발 역시 자본금의 32배 수준의 베팅을 한 상황이라 동반 파산이 불가피하다.
민간출자사인 삼성물산은 초고층빌딩 시공사 선정 등으로 전환사채 780억 원, 공사비 130억 원, 지분 투자 640억 원 등 건설사 중 가장 많은 금액인 총 1550억 원의 자금이 투입된 터라 자금 압박이 불가피하다.
GS건설·현대산업개발·금호산업 등이 각각 200억 원, 포스코건설·롯데건설·SK건설 등이 각각 120억 원, 한양(100억 원), 태영건설(60억 원), 두산건설·남광토건·반도건설·유진기업 등이 각각 40억 원의 공사금이 사용된 터라 도산 위기까진 아니더라도 다른 사업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강승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향후 용산 역세권 사업이 기업회생 절차 또는 파산 절차가 진행된다면 드림허브의 자본이 크게 감소해 대부분 건설사들은 지분투자만큼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삼성물산의 공사비와 전환사채는 드림허브가 자본 잠식에 빠지지 않는다면 돌려받을 가능성이 높다. 지분을 투자한 다른 건설사는 지분 투자만큼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편 일각에선 청사진이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외부 투자자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드림허브 측에 따르면 “최근 코레일과 드림허브에 용산개발에 최소 2500억 원에서 1조 원까지 투자하겠다”는 국내외 투자자가 등장했다. 그중 한 곳은 투자확약서(LOC)까지 제출하는 등 용산개발 투자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드림허브 관계자는 “코레일이 사업 추진 의사를 다시 밝힌다면 투자가 시작될 것이고 사업은 곧 정상궤도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이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도 사업 재개에 대한 기대치가 남아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코레일은 아직 공식적으로 사업 재개를 위한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는 상태다. 지난 6월 정창영 코레일 사장이 사임한 뒤 현재까지 CEO 자리가 공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식적으로는 전임 사장이 결정한 방향으로 용산개발 사업을 끝내기 위한 토지소유권 명의이전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럼에도 새 사장이 취임하면 용산개발 사업을 재개하기 위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내부 의견도 나오고 있다. 코레일이 용산개발사업 재개를 위해 토지이전 등기 절차를 소극적으로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색다른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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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