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잡음 파행 속출
인사 잡음 파행 속출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3-09-09 10:32
  • 승인 2013.09.09 10:32
  • 호수 1009
  • 2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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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장 압박…내정설…이래저래 관치 논란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2개월간 중단됐던 공기업 인사가 다시 시작되면서 재계가 또 다시 시끄럽다. 한 자리라도 차지하려는 인사와 그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 간의 다툼으로 해당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부 공기업에선 “낙하산은 없다”는 청와대의 말이 무색할만큼 신·구세력 간 다툼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공기업 주변에선 “금융 공기업 인사가 조만간 재개될 것이다. 또는 공기업별로 후보가 이미 압축된 상태다”라는 말이 나돌면서 그 실체가 윗선의 낙하산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그야말로 재계가 인사를 두고 혼탁양상을 띄고 있는 셈이다. 이에 [일요서울]이 그 속을 들여다봤다.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이후 ‘긴급 인선절차’ 진행
“낙하산 없다”(?)…사후 조치보다 사전 예방이 중요


최근 여의도 증권가와 정치권 일대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이야기는 “A 인사가 현 정권실세 B와 친하고 그 세력으로 C공기업에 들어간다” 또는 “못 들어간다”는 말이다.
실제로도 전직 고위관료 A씨는 요즘 한창 바쁘다. 인사 재개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줄을 대기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인사와 지연·학연 등으로 얽혀있는 지인 찾기는 물론 그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기에 바쁘다. 관할 부처가 올리는 후보 명단에라도 들어가기 위해서다.
그를 지켜본 주변 인사들은 “(과거) 저 정도로 열심히 했다면 모 기업의 사장자리가 아닌 실질적인 운영자가 됐을 것”이라며 “경영에 ‘경’자도 모르는 사람이 해당기업에 취업하려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안쓰러워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기업에 취업하면 신의직장이라는 말처럼 엄청난 금액의 연봉을 노린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공기업 부사장 자리를 원했던 임원 E씨는 좌절에 빠져 있다. 사장이 바뀌면서 승진도 못하고 한직으로 밀려났다. E씨 역시 처음엔 여기저기 줄을 댔다.
관할 부처에는 물론 정치인에게도 부탁했다. 신임 사장이 누가 되는지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은 뒷전인 채 로비에 매달렸다. 열심히 뛰었지만 결과는 승진 누락이었다.

공기업 인사 재시동...김기춘도 속도 낼까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이미 반년 이상이 지난데다 청와대의 새 인사위원장으로 김기춘 비서실장 체제가 완성되면서 부쩍 이 같은 이야기들이 늘고 있다.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공공기관장인사에 대한 잡음이 시끄럽다.
이는 최근 들어 한동안 수장 없이 ‘개점휴업’했던 금융, 에너지 부문 공공기관ㆍ공기업들이 속속 공모 절차를 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2개월 이상 미뤄졌던 우리금융지주 계열사 사장 인사를 시작으로 한국거래소, 신용보증기금, 보험개발원 등의 최고경영자(CEO) 인선에 물꼬가 트였다.
한국거래소 이사장에는 최경수 전 현대증권 사장, 유정준 전 한양증권 사장, 이철환 전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 황건호 전 금융투자협회장, 임기영 전 대우증권 사장 등 11명이 후보로 올랐다.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안택수 현 이사장 임기가 지난 7월 17일 종료돼 자동 연장되고 있다. 현재 서근우 금융연구원 기획협력실장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서 실장은 옛 금융감독위원회 자문관과 하나금융지주 부사장 등을 지냈다. 보험개발원장에는 김수봉 전 금감원 부원장보와 기획재정부 출신 인사가 물망에 올라 있다.
아직 임기가 남은 김정국 기술보증기금 이사장은 이날 신제윤 금융위원장을 만나 임기와 무관하게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신상의 사유라고 밝혔으나 최근 노조와의 갈등, 기보 이사장 후임 인선과 관련한 소문 등이 사의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업계 수장 인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엉터리 원전 사태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차기 사장 후보는 4배수로 압축됐다.
한수원은 지난달 29일 임추위를 열어 압축 후보자 4명 명단을 기재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에 제출했다.
공운위는 다음 주 회의를 열어 한수원 차기 사장 후보를 낙점한다. 후보군 가운데 조석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럴바엔 “낙하산 줘라?” 불만도 있어
이처럼 공공기관장 인선이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은 청와대의 달라진 기류와 무관치 않다. 청와대는 비서실장이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전임 허태열 실장 때는 ‘관치 인사 논란’ 등으로 시간을 허비했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2기 김기춘 실장이 선임되면서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다. 
지난해 공기업의 경영평가 결과까지 공개됐고 청와대와 정부 최고위층이 밑그림을 거의 완성했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어 공기업 인사 잡음의 근원이 청와대라는 업계 비판을 바라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장 임기가 끝난 산업부 산하 F 공기업은 후임 사장 임명이 늦어지고 있는 탓에 몇개월째 현 사장이 출근도장을 찍는 이상한 광경이 지속되고 있다. 실제로도 이 공기업은 새로운 사업 등 정권 초반 힘을 실어 추진해야 할 정부 핵심 정책들이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심점이 없다보니 신규 사업추진은 물론 그동안 진행한 주요사업 일부가 올스톱된 상태다.

해당 공기업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임기가 끝난 현 사장이 결정할 수 있는게 많지 않다”며 “조만간 새로운 사장이 오겠지만 그때까지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공모를 진행하지 않은 곳은 더 심각하다. 기관장 공모와 임원추천위원회 개최, 공공기관운영위 개최, 대통령 최종 임명까지는 보통 한 달에서 한달 반 가량 걸리기 때문에 이달 후속 인선작업을 서둘러 시작해도 기관장 인선작업은 빨라야 추석 전후나 10월쯤 끝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또한 지난 1일 일부언론을 통해 알려진 농어촌공사 사장 선임과 관련된 잡음은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인사의 시급성이 조명되고 있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공모절차를 밟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에 관료 출신의 특정인사가 사실상 내정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이 발견되면서 그 사실 여부를 둘러싸고 정치권과 재계의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들은 이날 “사장 공모자 중 한 특정인 측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문건으로 넘길 수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청와대에서 이미 특정인을 점찍어 놨던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싣기도 했다.
특히 모 신문이 문건을 통해 보도한 ‘취임 전 보고 및 조치사항’, ‘취임 당일 차량 이동경로’, ‘취임 이후 주요 일정’ 등 외에도 ‘전략기획·조직/인사쇄신·청사이전 등 3개반 15명 내외 조직 구성’, ‘CEO 경영철학 구체화를 위한 T/F(혁신본부) 발족’ 등 취임 후 우선 시행할 업무 내용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다. ‘추석 전 언론 매체 간담회 개최 완료’ 및 ‘취임당일 탑승 차량’(현재 사장 후보자의 차량)이 특정되어 있는 것으로 비춰볼 때 이미 사장 내정을 기정사실화하고 취임 수순을 밟았던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더욱이 같은 날 민주당이 이 사안에 대해 “논공행상의 아귀다툼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논란은 가중됐다.

박영진 민주당 대변인은 “양건 감사원장 사퇴로 불거진 박근혜 대통령 대선캠프 관계자의 감사원 낙하산 인사 시도사건, 자유총연맹 회장 선거에서의 청와대 행정관 개입 논란, 이석채 KT 회장 사퇴 종용 논란에 이은 이번 농어촌공사 내정 파문은 정권 핵심부 내에서 또다시 자리 나눠먹기형 대규모 낙하산 인사가 준비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손에 낡은 공포정치를, 또 다른 한손에는 논공행상이라는 떡을 들고 무슨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고 창조경제를 부르짖는단 말인가”라며 “김기춘, 남재준으로 이어지는 공안통치의 낡은 라인이 사실은 나눠먹기 논공행상의 파이프라인이라면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정권의 앞날은 캄캄하다”고 꼬집었다. 이러다 보니 공공기관 현장에선 기관장 인사 결정권을 가진 청와대가 하루빨리 인선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더 이상은 청와대도 수수방관을 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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