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3일 새벽 강화군 교동도는 천둥과 번개까지 쳤다.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3시 40분경 한 남성이 월선포구 선착장에 발을 디뎠다. 온 몸은 물에 젖은 채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살피던 이 남성은 불빛이 비치던 포구 바로 앞 민가로 향했다. 2층집 구조로 된 민가는 2층이 가정집이었다. 기진맥진한 이 남성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천천히 계단을 올라 문을 두드렸다. “내레 이북에서 왔습니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나온 집주인을 향해 내뱉은 첫마디였다.
통나무 외에 물통을 이용해 내려온 경우도 있어
해안가 경계 강화 위해 CCTV 설치하는 것도 방법
지난 23일 교동도에는 뜻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귀순자 황모씨다. 황씨는 새벽을 틈타 혈혈단신 맨몸으로 수영을 해 교동도로 귀순해 왔다. 귀순 당시 황씨는 팬티차림이었다고 알려졌다. 목격자에 따르면 40대로 보이는 황씨는 키가 160cm도 돼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단신에 깡마른 체구였다고 한다. 아무런 물건도 지니지 않은 채였다.
뜻하지 않은 손님을 받은 민가 주인은 황씨를 안심시키고는 곧장 해병대에 신고를 했다. 주인이 건넨 담배를 피며 쉬고 있던 황씨는 즉시 출동한 5분대기조에 인계됐고 심문조로 넘겨졌다.
팬티 차림으로 포구로
올라와 민가 ‘노크’
언론에 황씨의 귀순 사실이 보도되자마자 해병대와 국방부는 언론과 네티즌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귀순자가 수영으로 귀순해 온 것도 문제지만 민가에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 군인들이 모르고 있었냐” “민간인이 아닌 군인들이 들이닥쳤다면 어쩔 뻔했냐”는 등의 얘기가 주를 이뤘다. 더군다나 황씨가 귀순했던 23일은 한미합동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군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군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제기된 이유로 날씨 탓을 했다. 당일 새벽 교동도는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시계가 제한됐고 유독 강에 부유물들이 많았다고 했다. 결국 감시장비 운영에 제한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으로는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없다.
게다가 교동도에 북한 주민이 귀순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북한 주민 1명이 통나무를 붙잡고 헤엄쳐 와 마을에서 6일이나 머물다 주민 신고로 발각된 적이 있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교동도의 군 감시 인력은 2배로 늘었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서는 해병 제2사단이 방어를 맡고 있는 김포와 강화 인근 도서 지역의 경계구역이 과도하게 넓어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백령도(50.98㎢)의 경우 1개 해병여단(3000여명)이 주둔하고 있지만, 교동도(43.32㎢)의 경우 백령도와 크기는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증강된 중대 규모의 병력이 전부다. 물샐 틈 없는 경계를 펼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부 군 관계자들도 정책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현재 교동도에는 해병대 청룡부대 군인 200명 정도가 해안경계를 하고 있다.
교동도는 전체 해안 38km 중 24km만 철책이 세워져 있다. 약 14km 구간에는 철책이 없다. 군관계자는 “섬 주민들의 어업활동을 위해서 일부 구간에 철책을 설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실제 이 구간에는 포구와 관광객들을 위한 강화나들길이 조성돼 있다. 이번에 귀순한 황씨는 철책이 없는 동남쪽 해안 중 월선포구 선착장을 통해 귀순해 왔다.

백중사리 이용 귀순
오랜 시간 기다려 준비한 듯
황씨의 귀순 사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점은 과연 수영으로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올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목숨을 건 수영이기에 가능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교동도 일대의 지리적 특징과 해류의 흐름을 이해하면 황씨가 어떻게 수영으로 귀순을 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군 관계자는 “교동도는 북한과 제일 가까운 곳의 거리가 2~3km에 불과하다”며 “황씨가 바닷물의 흐름을 알고 있는 뱃사람인 것 같다. 왜냐하면 수영을 해 넘어온 시기가 백중사리였다. 그래서 안전하게 교동도에 도착한 것 같다. 그만큼 오랫동안 귀순을 준비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백중사리는 해수면의 조차가 연중 최대로 높아지는 것을 말한다. 보통 음력 7월 15일이 백중인데 전후 3~4일이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크다. 달과 태양과 지구의 위치가 일직선상에 있으면서 달과 지구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을 때 발생된다. 백중사리 때는 바닷물의 높이가 높아지면서 저지대가 침수되거나 제방이 유실될 수도 있으며 바닷물이 제방 위로 넘쳐흘러 논과 밭에 피해를 주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물이 빠질 때는 평소보다 더 많이 빠져 갯벌이 더 넓어진다. 황씨가 넘어온 23일은 음력 7월 17일로 바로 백중사리 시기다.
실제 교동도에 거주하는 주민을 통해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958년에 태어나 교동도에서 현재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백중사리때 물이 빠지면 가장 인접한 북한과 불과 200~300m까지도 가까워진다”고 했다. 교동도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북한과 더 가까운 지리적 위치에 있었다.
“북한 주민 귀순 여기서는
놀랄 일 아니다”
이씨는 군대 입대기간과 젊은 시절 조선소 근무시기를 제외하고는 줄곧 교동도에서 살아 왔다. 부모님의 토지를 물려받아 농사도 짓고 식당을 운영하며 교동도를 지켜온 것이다.
이씨는 황씨의 귀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잊을만하면 또 내려온다. 이제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기억하는 것만도 교동도로 북한 사람들이 넘어온 것이 10건은 넘는다”며 “두렵고 걱정스럽기보다는 얼마나 살기 힘들었으면 목숨을 걸고 이리로 내려왔겠냐”고 말했다.
이씨는 “한번은 마을주민들이 밭에서 일을 하다 북한 주민이 내려왔다는 소리에 신고한 적도 있다. 예전에는 우리가 보통 생수를 받거나 막걸리를 받는 말통을 이용해 내려온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교동도 주민들은 북한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보니 귀순이 잦아 이제는 삶의 일부분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교동도에는 주민이 약 3300여명이 살고 있다. 대부분 고령의 노인들이다. 이씨와 같은 50대와 40대가 가장 어린 연령이다. 1981년도에는 1만2000여명의 주민이 살았던 교동도가 3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4분의 1로 줄어들었다.
이씨는 귀순 문제보다 섬의 존폐문제가 더 걱정인 듯했다. 그는 “그나마 강화나들길 등이 조성되면서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섬을 많이 찾고 있다. 섬이 조용하고 한적한데다가 낮은 산도 있어 조용히 걸을 수 있다. 또 풍경이 좋아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삼엄해진 교동도
마을은 썰렁 군데군데 빈집도
북한 주민 황씨의 귀순으로 교동도의 경비는 한층 삼엄해 졌다. 창후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월선포구 선착장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경비중인 군인이 눈에 띈다. 완전무장을 하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낄 정도다. 취재진이 선착장에 도착해 주변 사진을 찍자 곧바로 사진검열을 요구하기도 했다.
교동도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자유롭다. 하지만 군사시설이 있는 만큼 섬 군데군데 출입금지구역도 많다. 특이한 점은 교동도는 조용한 섬이라는 점이다. 인구가 많지 않아 그렇기도 하겠지만 주민의 연령층이 고령인 것도 한몫하고 있다.
자연히 길은 한적할 수밖에 없다. 간간이 다니는 자동차를 제외하면 도로도 텅 비어있다. 마을 안쪽도 마찬가지다. 일부 텃밭을 가꾸기 위해 드나드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크게 눈에 띄는 주민도 없다. 게다가 마을 군데군데는 버려진 빈집이 흉하게 남아있다. 해안가 쪽에는 버려진 초소도 볼 수 있다. 지난해 북한 주민이 교동도에서 6일 동안 주민들에게 들키지 않고 살았던 점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섬 밖에서는 23일 북한 주민 귀순 당시 전 언론매체가 떠들썩했다. 민주당의 한 국회의원은 “북한 사람이 그냥 아주 착하게 노크만 하지 않고 수류탄이라도 한 발 던지고 가버렸으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평시도 아니고 전 군의 지휘 태세가 갖춰져 있는 상태에서도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에 대해 군은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리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허술한 경비태세를 문제 삼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지난해에도 이런 일이 발생해 경계를 강화했는데 또 문제가 발생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번 귀순은 지난해와 다르다. 지난해의 경우 귀순자가 철책을 뚫고 들어온 것이지만 이번에는 철책이 없는 해안선으로 들어온 경우다”라고 부연 설명을 했다.
국방부를 비롯해 교동도의 경계를 책임지고 있는 해병대는 이제 더욱더 강화된 경비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북한 주민의 ‘노크 귀순’을 날씨 탓으로 돌리기에는 변명이 너무 군색하다. 일각에서는 해안가에 CCTV를 증설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현재 전방을 중심으로 CCTV가 설치되고 있는 것을 실제 귀순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역 우선으로 확대하는 것을 고려해야 할 때다.
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