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시즌 언론과 관객들의 줄을 잇는 호평 속에 막을 내린 연극 <모범생들>은 2013년 여름, 깔끔하고 세련된 연출로 또 한 번 관객들을 환기시킬 계획이다. 큰 덩치를 작게 구겨 넣어야 할 것만 같은 책상 4개와 의자 4개가 전부인 미니멀한 무대가 화장실, 결혼식장, 교실, 채플실을 오가며 공간을 꽉 채우고 막 패션잡지에서 튀어나온 듯한 매끄러운 수트 차림의 의상이 작은 변화들을 통해 교복이 돼 극을 과거로 되돌릴 때 관객들은 어김없이 탄성을 자아낼 것이다. 이번 공연은 오는 9월 29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관객들을 맞이한다.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 명문 외고 3학년의 한 학급.
다른 이들보다 일찍 사회 상위계층을 차지하는 것이 성공하는 길이라고 인식한 모범생 명준과 수환은 진정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 지를 잊은 채 컨닝을 모의한다.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 전학생 종태와 답안지를 돈으로 산다는 소문에 휩싸여있는 반장 민영까지 휘말리면서 사건은 두 명에서 세 명, 네 명, 그리고 반 전체로 일파만파 커져간다.
결국 그들의 컨닝은 서로의 욕망의 충돌에 의해 발각되고 실패하지만 그들은 내부적으로 합의한 친구를 희생양으로 삼아 누구도 처벌받지 않고 사회적 엘리트로 성장한다.
그리고 그들이 오늘, 민영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다시 모였다.
연극 <모범생들>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특목고 3학년 학생들을 통해 삐뚤어진 교육 현실과 비인간적인 경쟁 사회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욕망이 과연 그들 스스로의 것인지 또한 그 모습을 통해 우리는 과연 정당하게 내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백색 느와르’를 표방하는 이 작품에는 조직 폭력배, 마약 밀매단, 총격전 따위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한 ‘무폭력의 폭력’이 있을 뿐이다.
스스로의 욕망인지 사회에게 강요받은 욕망인지도 모른 채 신분상승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사회에 의한 또는 스스로에 의한 ‘백색 전쟁’을 치르는 듯 보인다.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는 다소 무거우나 곳곳에 포진 된 적재적소의 유머들과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네 명의 캐릭터들이 뱉어내는 현실감 넘치는 대사들의 절묘한 합이 그 무게를 반감하며 극의 균형을 맞춘다.
또한 미세하고 감각적인 조명과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음향과 시계소리, 심장 박동소리 등 강력한 비트의 음악소리와 함께 펼쳐지는 배우들의 절제된 군무는 극을 빠르고 리드미컬하게 전개하며 뮤지컬에만 익숙한 관객들마저도 극 속으로 깊숙이 흡입한다.
섬세하고 빈틈없는 세련된 감각이 느껴지는 스타일리쉬함을 선보이며 <모범생들>은 연극의 날카로움과 뮤지컬의 강렬함을 겸비한 이 시대 젊은 연극의 진수를 보여준다.
티켓 가격은 3만5천 원이며, 예매는 인터파크(ticket.inte rpark.com)에서 가능하다.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