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간성의 요람 ‘날개 없는 추락’
호국간성의 요람 ‘날개 없는 추락’
  • 이지혜 기자
  • 입력 2013-09-02 10:50
  • 승인 2013.09.02 10:50
  • 호수 1009
  • 2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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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생도 성범죄, 훈육생도의 책임인가?

▲ <뉴시스>
[일요서울|이지혜 기자] ‘호국간성의 요람’ 육군사관학교가 추락하고 있다. 명예와 리더십으로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진다던 육사 생도들의 든든한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성폭행범이라는 불명예만 남았다.
지난 5월 발생한 육사 생도 성폭행 사건으로 인해 당시 교장이었던 박남수 중장이 전역한 바 있다. 그러나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해외 봉사활동을 간 생도들이 무단으로 음주를 하고 마사지 업소를 출입하다 적발됐으며, 채팅으로 만난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하다 경찰에 붙잡혀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육사 생도들의 어긋남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에 학교 측은 지난달 26일 3금제도(금혼, 금연, 금주)와 1학년 생도 이성교제 금지, 여생도 생활관 안전장치 보강 등의 내용을 담은 혁신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혁신안은 효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생도 성폭행서 태국 마사지, 미성년자 성매매까지
3금 제도 및 1학년 생도 이성교제 금지? 효과 의문

생도 축제 기간이던 지난 5월 22일 지도교수가 주관한 점심 식사에서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마시고 취한 4학년 생도 A씨는 생활관에서 2학년 여생도 B씨를 성폭행했다. 육군 조사 결과 취한 B씨를 교수가 생활관으로 데려다줬는데 A씨가 뒤따라와 구토를 하고 있는 B씨의 등을 두드려주다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무절제한 음주로 생도의 품위를 훼손하지 않도록 규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사 개교 이래 처음 발생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결국 이로 인해 박남수 육사 교장이 불명예스럽게 옷을 벗게 됐다.

고개숙인 육사

육사 내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후 육군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관생도들에 대한 인성교육 및 관련 규정 교육을 강화하고, 관련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8월 태국으로 해외 봉사활동을 떠난 생도들이 무단으로 숙소를 이탈하고 음주와 마사지 업소를 출입한 ‘일탈’이 드러났다.

당시 육사 생도 173명은 7박8일의 일정으로 정전 60주년 기념 한국전쟁 참전국 봉사활동을 위해 태국에 머물렀다. 이들 중 3학년 생도 9명이 예정된 일정을 마친 후 규정을 어기고 숙소를 무단 이탈, 술을 마시고 마사지 업소에 출입했다가 순찰 중이던 훈육장교에게 발각됐다.

거기에다 지난달 25일에는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중학생 C양과 성매매를 한 혐의로 4학년 생도 J씨가 육군본부 군검찰에 구속됐다. J씨는 성매매를 한 뒤 C양의 휴대전화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3개월 만에 성폭행, 무단이탈, 성매매까지 연이어 사건이 터지자 생도들의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지적이 어졌다. 이에 따라 육사는 지난달 26일 ‘육사 제도·문화 일대 혁신 추진(안)’을 발표했다. 골자는 훈육교원 전원 교체와 휴가 조기 복귀 및 학사 일정 연기, 3금제도 정비, 진학·졸업 요건 강화, 정성 우수자 선발방법 개선 등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당직근무, 불침번 제도, 뜀걸음, 내무검사, 점호 등을 강화하고 기존 2~4학년을 대상으로 매주 가능했던 외박을 월 2~3회로 축소했다. 또 교내 사복 반입을 금지하고 음주 승인권자를 훈육관, 학과장 이상에서 학교장 이상으로 변경했다. 1학년 생도들의 이성교제 및 같은 중대 생도 간, 지휘계선 상 생도 간 이성교제, 생도와 교내근무 장병·군무원 간 이성교제가 금지됐다. 중대별 훈육장교는 1명이 추가 편성된다.

군 적성우수자 선발을 위해 입시에서 일반 전형 적성(인성 및 가치관 등) 반영 비율을 증가시켰고, 양성평등상담센터를 설치하고 양성평등 동료상담자 제도를 운영한다.

고성균 육사 교장은 이날 “구성원 모두가 자정 노력을 경주할 수 있도록 우선 조치할 예정”이라며 “신뢰 받는 정예장교 양성 요람 육사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근본 대책 미흡

그러나 육사에서 내놓은 혁신안에 대해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이 없고 효율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육사 혁신안은 어떤 원인이 문제인지에 대한 진단과 그에 따른 실질적인 대책이 빠졌다”며 “우리 군은 성폭력을 전담하는 부처가 따로 없다. 성범죄를 예방하는 주무부처의 신설이 절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지나 사무국장은 “군대는 굉장히 계급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조직이다. 그 안에서 여성의 성이 다뤄지는 방식이 문제”라며 “여성과의 성경험이 희화화돼 이야기되는 남성문화가 점검이 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육사 혁신안에 대해 최 사무국장은 “실효성이 없다. 규제로 다뤄질 수 있는 문제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번 육사 발표가 군대 내에서 성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결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볼 수 있다”며 “법이 있다고 법에 위배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듯이 무조건 금지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육사는 학교다. 학교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곳이고 그 안에서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규제를 대책으로 발표했다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군대 내에서 생도들의 성교육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생도들의 성의식에 대해 얼마나 비중을 두고 교육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충고했다.

최 사무국장은 “계급중심적인 조직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면 그 원인은 성욕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권력 중심적인 조직이기 때문에 상급자에 의한 하급자의 성폭력이 많고 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며 “육사 안에서 얼마나 성폭력에 대해 엄중한 태도를 가지고 있고 성교육을 확실하게 실시하고 있는지가 투명하게 보여야 한다. 이런 내용이 들어간 혁신안을 대안으로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장 교체해야?

고성균 육사 교장이 임명된 지 2달 반이 지났다. 당시 고 교장의 임명은 일반적으로 중장급 인사가 임명되는 육사 교장에 소장급 장성이 임명되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박남수 교장이 육사 내 생도 성폭행 사건으로 인해 불명예스럽게 전역한 후의 임명이라 고 교장의 어깨는 무거웠다. 땅바닥으로 떨어진 육사의 위상과 명예를 다시 살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달도 채 지나지 않아 생도들의 숙소 무단이탈과 성매매 사건까지 연달아 터지면서 ‘고 교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지 않겠나’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군 관계자는 “일반 부대에서 휴가나간 사병이 미성년자 성매매를 하다 붙잡혀 구속되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 부대 간부들은 책임을 진다”며 “육사도 마찬가지 아닌가. 1건도 아니고 2건이나 연달아 발생했다면 최고 책임자인 교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군 관계자도 “이번 사건으로 인해 훈육장교들만 교체됐다”며 “물론 그 사람들도 책임이 있겠지만 더 큰 책임자가 있지 않느냐”며 육사 교장 교체를 언급했다.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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