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료에 따르면 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 23분 문세광이 미리 준비해 간 38구경 스미스 앤드 웨슨 리벌버 권총을 꺼내들면서 실수로 방아쇠를 잘못 건드려 자신의 허벅지를 관통한 직후부터 6초간 미처 총소리를 듣지 못한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사 낭독이 계속 이어진다.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우리가 그동안 시종…” 이때 문세광이 다리를 끌며 통로를 따라 곧장 연단으로 돌진하면서 연달아 2, 3, 4탄을 발사한다. 여기까지 총 걸린 시간은 불과 2초. 연설은 중단되었고 박정희 대통령은 즉각 방탄으로 돼 있는 연단 아래로 몸을 숨겼다. 그후 8초에서 15초 사이에 육영수 여사를 제외한 연단 위 대부분의 내빈들이 몸을 숨겼고 장내는 비명소리와 술렁이는 소리로 아수라장을 이룬다.
순식간에 연단 앞까지 돌진하던 문세광이 한 참석자에 의해 다리가 걸려 넘어지면서 경호원들에게 체포된 것도 바로 이때다.문제는 모든 상황이 종결된 15초 이후부터 22초간의 연단 위 대화 내용과 녹음이 끊기기 직전에 녹음된 마지막 5탄의 실체다. 자료에 따르면 이 사이에 ‘가만히 계십시오’ ‘잡혔나’ ‘예 사모님…’이란 대화 내용이 기록돼 있다. 문세광이 검거된 직후에 녹음된 것으로 이대로라면 문세광이 검거된 후에도 여전히 육영수 여사는 건재했다는 것이다. 특히 녹음이 끊기기 직전에 울려퍼진 마지막 5탄은 문세광이 아닌 제3의 인물에 의해 발사된 것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이는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맞아 서거했다는 그동안의 수사내용을 뒤집는 것이다. 자료를 작성한 이건우 당시 서울시경 감식계장은 “문세광이 쏜 것은 총 4탄으로 5탄은 쏘지도 못했다”며 “육여사는 문세광의 총에 맞은 것이 아니다”라고 생전에 주장해 왔다.
그렇다면 누가, 무슨 이유로 영부인을 암살한 것일까. 먼저 자료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김영수 전 서울지검 검사(현 한국농구연맹 총장)를 만났다. 김 총장은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당시 수사의 실무 책임자였던 정치근(74) 전 서울지검 공판부장(현 변호사)의 후배 검사로 수사 및 재판의 전 과정을 일선에서 담당했다. 김 총장은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은 두말이 필요 없는 명료한 사건”이라며 “당시 문세광의 총과 탄환, 탄피가 정확히 일치했다”고 일축했다. 김 총장은 그러나 사건 당일 녹음된 연단 위 대화내용에 대해 묻자 “(이건우가 작성한 자료에 대해서는 ) 처음 보는 것”이라면서도 “수사 당시 연단 위에서 녹음된 테이프가 있었던 건 기억이 나지만 오래 된 일이라서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문세광은 검거 직후 자신의 범행을 일체 자백했으며, 당시에도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됐지만 녹음테이프가 다시 나오는 등 수사자료가 공개되기 전에는 확인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과 관련, 수사자료 일체를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지만 아직까지 수사자료는 공개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본지에서 입수한 자료도 이 계장이 수사 당시 연단 위의 내용을 정밀 분석해 놓은 것으로, 근거가 되는 녹음테이프 원본은 확보하지 못했다. 녹음테이프는 당시 수사를 전담했던 수사팀에서 보관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정부가 이번에 공개한 문세광 사건 관련, 외교문서를 보면 이때 파악한 현장 상황과 범행 모의 경위 등이 비교적 상세히 적혀 있다. 외교문서에 따르면 문세광은 기념식이 시작되고 얼마 뒤 왼쪽 열 맨 뒤좌석(B열 214번)에 앉아 있다가 미리 준비해 간 권총을 꺼내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방아쇠 작동 미숙으로 첫 번째 총탄은 오발로 끝났다. 직후 통로를 따라 연단으로 돌진한 문세광이 2탄을 발사하지만 박대통령이 서 있던 연단 왼쪽에 박혔다. 세 번째는 불발탄. 그리고 네 번째 총알이 귀빈석에 앉아 있었던 육여사의 머리 오른쪽에 명중했다. 마지막 5탄은 한 참석자에 의해 다리가 걸려 넘어지면서 발사돼 연단 뒤 태극기에 박혔다.당시 정부 조사를 종합해 보면 1탄은 오발, 2탄은 연단, 3탄은 불발탄, 4탄은 육여사, 5탄은 태극기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육 여사는 문세광이 쏜 4탄에 의해 저격됐으며, 연이어 5탄을 쏘고 경호원들에 의해 검거되기 전에 이미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는 것으로, 이 계장이 제시한 사건 당시 연단 위 대화 분석표와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계장은 당시 현장 검증 및 탄흔에 대한 정밀 감식 결과 1탄은 오발, 2탄은 연단, 3탄은 태극기, 4탄은 천장으로 문세광이 소지한 모두 5섯발 짜리 리벌버 권총에서 나머지 한발은 권총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육영수 여사를 피격한 실탄은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당시 정부와 이 계장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든가, 아니면 잘못 수사를 한 셈이 된다. 연단 위 녹음 테이프 등 수사자료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육영수 여사 저격 당시 화면을 보유하고 있는 KTV국립방송을 찾았다. 문세광이 검거되기 전에 육영수 여사가 이미 저격됐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KTV국립방송 국가기록 영사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영부인 육여사 서거 장면을 보면 당시 정부의 조사내용과 영상 화면이 불일치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가기록 영사관에서 보유중인 총 304건 중 대통령 영상에 관한 것은 모두 21건이다. 이중 영부인 육여사 서거란 제목으로 1974년 사건 당시 촬영된 것은 총 49분 44초 분량으로 서거장면의 모습, 서거 소식, 조문객 및 장례식등의 화면을 담고 있다. 주목할 것은 49분 44초간의 영상물 중 1분 29초부터 1분 36초간 촬영된 불과 7초짜리의 영부인 서거 장면이다.
문세광이 연단 앞으로 뛰어나오는 동시에 박대통령과 다른 귀빈들은 이미 연단과 의자 밑으로 몸을 숨긴 상태다. 혼자 우뚝하게 앉아 있는 영부인 앞으로 박종규 당시 경호실장이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연단 오른쪽에서 갑자기 경호원으로 보이는 청년 한명이 영부인 좌석 뒤쪽으로 달려나가 몸을 숙인다. 동시에 화면은 문세광이 검거되는 장면을 찍기 위해 문세광이 위치한 연단 왼쪽으로 황급히 크로즈 업 된다. 문제는 카메라가 영부인이 있는 장면에서 문세광이 검거되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이 짧은 순간에 육영수 여사는 여전히 건재해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저격자를 확인하기 위해서인지 문세광이 위치한 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장면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문세광이 검거되기 전에 쏜 4탄에 육영수 여사가 저격됐으며, 문세광은 그후 참석자의 발에걸려 넘어지면서 5탄을 쏘고 경호원들에 의해 검거됐다는 것으로 카메라가 문세광 쪽으로 돌아가는 순간 육영수 여사는 이미 총탄에 쓰러져 있어야 정상이다.
국립방송에서 보유중인 영상물대로라면 오히려 정부가 발표한 육영수 여사 서거 당시 수사자료보다는 이 계장이 제시한 연단 위 저격 순간에 녹음된 22초 정밀 분석표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계장의 측근은 이에대해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진범은 따로 있는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박정희 정권에서 이를 덮는데 급급했다”며 “이 계장은 생전 당시 문세광 사건은 자작극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문세광이 검거된 직후 ‘가만히 계십시오’ ‘잡혔나’ ‘예, 사모님’이란 연단 위 대화 내용을 보면 그 당시 영부인 옆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위치 상으로나 영부인을 사모님이라고 부를 만한 신분상으로 볼 때 적어도 고위관계자 모씨는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건을 수사한 김영수 총장은 “문세광의 발이 걸리면서 (총알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 것으로 이쪽엔(육영수 여사를 향해 경호원이 발사했다는 의혹이 있는 연단 오른쪽)어떠한 경호원도 없었다”며 “당시 긴박한 상황속에서 억울한 죽음이 생길 가능성은 있지만 총탄의 사입구, 사출구와 경호원 위치 등을 고려하면 제 3자에 의한 육영수 여사 저격 의혹은 0%다”라고 밝혔다. 30년이 지나도록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김 총장의 말대로 억울한 죽음이 없게 하기 위해서라도 진실이 밝혀져야 하지 않을까.
이혜숙 neuma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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