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약값이 약장수 마음대로 책정돼 소비자들의 불만이 증가했다. 서울지역 약국마다 약품 가격이 최대 60% 이상 차이나는 것으로 밝혀져 소비자들이 바가지를 쓰기 십상이다. 이는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이 없고 처방전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아픈 것도 서러운데 너무한다”며 원망 섞인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정작 약사들은 “표준소매가제 폐기를 반대할 땐 들어주지 않더니 왜 책임을 전가하냐”고 반발하고 나섰다.
보험 적용 안 되면 기준 없어…소비자 혼동
약사들 “책임 묻기보다 표소가제 부활 필요”
산부인과를 다니고 있는 A씨는 약국에서 “같은 약의 가격을 부당하게 올려 울컥했다”고 털어놨다. A씨는 한 달 치로 처방받은 약을 10만 원에 구입해 복용해 왔으나 최근 가격이 12만 원으로 오른 것. 약사는 “제조업체에서 가격을 올려 어쩔 수 없다”고 말했지만 직접 확인해본 결과 제조업체로부터 “지난해 이후로 약값을 올린 적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후 다시 약국을 찾아 항의했지만 이번에는 가격상승을 유통업체 탓으로 돌렸다. A씨는 “의약품은 소비자 임의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판매자 마음대로 가격을 올려 받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호소했다.
B씨는 “얼마 전 약값을 10배가량 바가지 쓸 뻔하다 보험 적용 덕분에 이 사실을 알고 환불받았다”고 말하며 당시의 황당함을 토로했다. B씨는 종합병원에서 처방 받은 약값으로 25만 원을 청구받았다. 이후 가입된 의료실비보험에 약값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하루 결제 금액이 5만 원 이하여야 된다’는 규정을 발견하고, 분할 결제를 위해 다시 병원을 방문했다. 그런데 B씨는 문의 과정에서 처방받은 약값이 실제로는 2만 원 안팎이였음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려 10배가량 바가지를 쓴 것이다. 곧장 약국으로 달려가 항의하자 “금액을 잘못 찍었다”며 환불처리 받았다. B씨는 “약값을 병원과 약국만 알고 있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며 “소비자가 바가지를 써도 알 수 없는 제도가 황당하다”고 일갈했다.

소비자단체의 조사 결과 서울시내 약값의 차이가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소비자문제연구소 컨슈머리서치(대표 최현숙)에 따르면 전문의약품인 여드름치료제 로아큐탄과 비만치료제 제니칼 2종, 일반의약품인 우루사, 써큐란, 아로나민골드, 이가탄 4종 등 총 6종의 의약품 가격을 조사한 결과 같은 서울 시내에서도 제각각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의사의 처방을 받아서 구입하는 비급여 전문의약품의 가격차가 40~60%로 소비자가 임의로 선택해 구매하는 일반의약품 20~40%보다 크게 벌어졌다.
로아큐탄의 경우 풍납동의 한 약국에선 4만8000원이지만 종로의 한 약국에선 3만 원으로 판매돼 60% 이상의 가격 차이가 났다. 제니칼도 마찬가지로 잠실역 부근의 한 약국에서는 11만5000원에 판매하고 있는 반면 면목동의 약국에서는 8만2000원에 판매하고 있어 40%의 차이를 보였다.
일반의약품인 우루사와 써큐란의 경우도 각각 42%, 44%의 가격차를 보였지만 비교적 전문의약품보다는 가격차가 작은 폭으로 나타났다. 우루사는 강남구에서는 3만4000원, 영등포에서는 2만4000원으로 42% 정도의 가격차가 났다. 써큐란도 청담동에서는 2만3000원, 증산동에서는 1만6000원으로 44%의 가격 차이가 났다. 아로나민골드, 이가탄 등도 20% 차이가 난 것으로 조사됐다.
[일요서울] 취재진이 약값 차이에 의문을 제기하자 한 약국 관계자는 “가격은 약국에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판매자의 마음이 기준이지 않겠냐”며 “이 부근에서는 우리가 가장 싸게 판매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은 1999년 약국들이 판매 가격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한 ‘의약품 판매자 가격 표시제’ 때문으로 보고 있다. 현재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 가격은 정해져 있으나 일부 비급여 의약품이나 일반의약품 가격은 약국에서 자율적으로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 약품 오픈프라이스인 셈이다. 당초 가격경쟁을 유도해 판매가를 낮추기 위함이 목적이었으나 되레 약국의 폭리를 조장하는 폐단을 낳고 있다.

가격차이 심할 땐 보건소 신고 가능
약값 논란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최종 판매자가 약품 가격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임대료 등의 차이로 가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며 “가격차이가 과도할 경우 관할 보건소에 신고해 시정을 요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를 통해 ‘약제비 계산기’로 가격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약제비 계산 결과는 약국 관리료와 조제기본료, 복약지도료, 처방조제료, 의약품관리료를 포함해 조제료 전체로 평가하고 있다.
한편 약사들은 이번 약값 실태에 대한 논란을 두고 부당하다며 보건복지부와는 다른 입장을 내비쳤다. 전국 실천하는 약사들(이하 전실약)은 “약사회 입장과는 달리 의약품 표준소매가제도(이하 표소가제도)를 폐지한 것은 정부인데 비난은 약사들이 감수하고 있다”며 이번 논란에 대한 책임 여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전실약은 “약사들은 정부의 표소가제도 폐지 당시 부작용을 우려해 반대했었다”며 “약사회와 복지부까지 우려했던 것에 대한 책임을 모두 약사들이 지라는 것이 말이 되냐”고 말했다. 이어 “현행 의약품 판매자 가격표시제 폐지와 표소가제 부활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 최근 계산대 바깥쪽에 진열하는 품목을 늘려 소비자가 직접 가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추세”라며 “내부적으로는 자율표시제에 문제가 없다는 여론이 우세하지만 가격차이로 피해를 보는 소비자가 많은 만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