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김나영 기자]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은 곧잘 부자들을 동경 또는 질시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또 부를 대물림한 ‘세습형’과 자수성가한 ‘성취형’을 막론하고 부를 유지하는 비결을 궁금해한다.
이러한 부자들은 작은 것을 아끼고 큰 것에 투자한다고 자산관리사들은 입을 모았다. 세부적으로는 고위험군에 승부수를 띄워 수익을 내기보다는 이미 모은 자산을 지키는 형태가 많았다. 더불어 기본적으로 몸에 밴 습관은 근검절약인 경우가 대다수였으며 들어오는 돈보다 빠져나가는 돈을 먼저 다잡았다.
가장 부유한 지역들로 꼽히는 서울 성북ㆍ한남ㆍ청담동의 자산관리사들이 말하는 부자들의 비밀을 들여다봤다.

대표적 서울 부촌 성북ㆍ한남ㆍ청담동 부자들의 내면
과감한 베팅보다는 ‘안정형’, 소소한 수수료에는 ‘짠돌이’
국내 주요 시중은행에서 근무하는 은행원인 A대리는 처음 영업점에 발령받았을 때 겪었던 한 고객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은행 지점에서 타행으로 송금하는 수수료는 2000원가량이었고 일부 VIP 고객들만 수수료를 면제 받을 수 있었다. 해당 은행과 거래가 거의 없던 이 고객은 설명을 듣고는 수수료가 아깝다며 송금을 미루고 발길을 돌렸다.
며칠 후 다시 찾아온 그 고객의 신규 거래를 담당하려던 A대리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소액의 수수료에 벌벌 떨던 모습과는 달리 금융권에 예치한 자산만 20억 원이 넘어가는 부자였던 것이다. 프라이빗뱅킹(PB) 센터로 인계하기 전 A대리가 고객에게 넌지시 그 비결을 묻자 “작은 것부터 아껴야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A대리는 “유동자산의 100만분의 1 수준의 수수료를 그토록 아끼는 부자의 모습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면서 “수입도 없는 학생일 때 타행 ATM기에서 1000원 안팎의 수수료를 물어가며 출금을 일삼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의 웰스매니지먼트(WM)센터에서 일하는 B차장은 최근 고객들의 문의가 미세한 수익률 차이에 집중되는 것을 보고 숫자 싸움에 한층 더 열을 올려야만 했다. 일반 고객들을 대면할 때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던 0.1%, 0.01%의 차이가 자산가들에게는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B차장은 “특히 거액을 보유한 부자일수록 작은 차이에도 굉장히 민감한 것이 특징”이라면서 “자산 단위가 클수록 수익금도 함께 출렁이며 증감하니 그때마다 함께 의견을 조율하며 포트폴리오를 재작성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KB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부동산을 제외하고 금융자산만 10억 원 넘게 보유한 고액자산가는 지난해 기준 16만3000명이다. 이는 2011년 14만2000명에 비하면 15% 늘어난 수치다. 화폐가치나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더라도 한 해 동안 늘어난 자산가의 수가 상당하다는 의미다.
이러한 고액자산가들이 선호하는 투자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금융상품의 경우 주로 원금보전이 확고한 방식들에 집중돼 있었다. 고위험 고수익보다는 일단 보유한 재산을 지키며 안정적인 수익률을 추구하는 형태인 것이다. 또 손해가 나면 계속해서 묻어두기보다는 손절매를 한 후 다른 투자처에 눈을 돌리는 결단력도 보였다.
‘한탕’이나 ‘한방’과도 거리가 멀었다. 고액자산가일수록 투자금을 분할하는 분산투자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 시장 흐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평정을 유지할 수 있게 마련이다. 특히 자수성가로 부를 구축한 부자들의 경우 돈의 흐름에 대한 이해력이 뛰어나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가나 아파트 투자에는 여전히 신중을 기했다. 예전처럼 자고 일어나면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하던 시절이 지났기 때문이다. 빌딩의 경우 강남지역 일부 중소형 등 상권이 이미 형성돼 안정적인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곳에 주목했다. 또한 건물 가치의 상승 추세가 뚜렷한지와 매매 활성화로 비상 시 환금성이 뛰어난지도 꼼꼼히 따졌다.
빠져나가는 돈을 더 아까워하는 부자들의 특성상 일명 ‘세테크’도 빼놓을 수 없다. 세금을 획기적으로 절약하는 방법은 수익률을 제치고 최고의 관심사로 떠오를 정도다. 이름난 세무사를 찾은 한 자산가는 “개인적으로 보유한 법인이 있어 세금 이슈에 상당히 밝지만 전문가에게 맡기면 내는 돈이 달라진다”면서 “적당한 선에서 계산했을 때에 비해 추가적으로 1억 원가량의 세금을 공제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 WM센터 관계자는 “세대를 이어 부자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푼돈을 아껴 목돈을 만드는 것이 자산가가 되는 첫걸음”이라며 “새 세법개정안 발표 이후 증여세 공제에 대한 문의가 급증하는 등 세테크에 대한 열기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박스]
부자 얼굴에 먹칠하는 얌체 체납자는 누구
해외여행에 펑펑 써도 건보료는 안 내?
부자들 중 건강보험료를 고의적으로 체납한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 파장이 일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신 의원에게 제출한 ‘건강보험료 장기체납자의 해외출입국 현황’ 분석 결과 이 같이 나타났다고 지난달 21일 밝혔다.
신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6개월 이상 건보료 장기체납자 중 4.1%인 6만2404가구는 올해 들어 4월까지 1회 이상 외국을 다녀왔으며 이들이 체납한 건보료는 903억 원에 달했다.
일례로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A씨는 2010년 4월부터 지난 4월까지 건강보험료 2071만2000원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A씨는 체납기간 해마다 2~3차례씩 모두 10회에 걸쳐 외국을 드나들었으며 재산도 104억6000여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비슷한 기간 건보료 5321만6000원을 체납하면서도 같은 기간 외국에 2차례 다녀온 B씨, 311만 원의 건보료를 체납하고도 4차례 해외여행을 한 C씨도 눈에 띈다. B씨의 재산은 122억 원에 달했으며 C씨의 경우 각각 6000cc와 3500cc의 수입자동차 두 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30회 이상 외국을 다녀온 건보료 장기체납자가 총 231가구로 밝혀지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더했다. 외국 출입국 횟수별로는 100회 이상 3가구, 51~100회 141가구, 31~50회 87가구, 11~30회 357가구, 2~10회 1만6659가구, 1회 4만5157가구 순이었다.
신 의원은 “건보료 체납자 중 일부는 체납기간이 수십 개월에 달했는데도 건보공단이 특별관리대상자 명단에 넣지 않은 채 내버려두다시피 하고 있었다”면서 “고소득 전문직이나 고액자산 보유자로 건보료를 낼 능력이 있는데도 100만 원 이상 체납한 특별관리대상자 중 1380명 역시 건보료 18억5656만4000원을 내지 않은 채 해외를 들락거렸다”고 지적했다.
또한 신 의원은 “국세청, 출입국관리사무소 등과 자료를 연계해 건보료 고의 체납자의 예금과 재산을 압류하고 해외 신용카드 사용을 제한하는 등 철저한 징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