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안은혜 기자] 3년 만에 이산가족상봉이 성사될 전망이다. 지난 23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이뤄진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남북 양측은 이날 오전 전체회의에서 기조발언을 통해 이산가족 대면 및 화상 상봉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전체회의 종료 뒤 다시 수석대표 접촉을 벌이면서 구체적인 상봉 관련 사안들에 대한 조율에 착수했다. 추석 전후로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남한 내 이산가족들의 심경을 [일요서울]이 들어봤다.
“북한의 가족 생사만이라도 알았으면…”
지난 22일 북한은 추석 전후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회담을 23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갖자는 우리 측의 공식 제안에 최종 동의했다. 그리고 지난 23일 오전 2010년 10월 이후 3년 만에 이뤄질 남북이산가족상봉 재개 실무회담이 이뤄졌다. 우리 정부는 이번 접촉에서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상봉 정례화, 생사주소 확인, 생사가 확인된 이산가족의 서신교환,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생사주소 확인 등과 관련된 방안을 추가로 북측에 제시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상봉 중요하지만 후속 조치도 필요”
2013년 7월 31일까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이산가족 수는 12만 8824명(생존자 7만 2882명)이다. 1985년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으로 역사적인 첫 상봉이 이루어졌다. 당시 남측 35명과 북측 30명만이 가족을 만났다. 15년 후인 지난 2000년 ‘6ㆍ15 남북공동선언’에서 이산가족문제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로 합의했고, 이후 남북적십자회담이 개최되어 이산가족방문단 교환, 생사ㆍ주소 확인, 서신교환 등 시범적 사업이 논의되었다. 그리고 2000년 8월 역사적인 제1차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이 성사되었다.
2005년 8월 15일에는 분단 후 처음으로 서울과 평양, 그리고 평양과 인천ㆍ수원ㆍ대전ㆍ대구ㆍ광주ㆍ부산 등을 연결한 화상상봉이 이루어졌다. 화상상봉은 2007년까지 7차례 진행됐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2010년 말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중단됐다. 2010년 10월 30~11월 5일을 마지막으로 총 18차의 방문상봉이 이루어졌다.
실향민 김태형씨(평안남도, 84세)의 아들 김모씨(52세)는 지난 21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1.4후퇴 때 증조할아버지는 장남이었던 아버지와 둘째(김인형)만 데리고 먼저 남쪽으로 내려왔고, 조부모님과 삼촌들(김세형: 80세, 김국형: 77세)은 미처 내려오지 못해 헤어지게 됐다”고 사연을 말하며 “피난을 내려와서 경찰공무원 생활을 오래 하셨는데 생사여부도 알 수 없는 북에 있는 가족들을 찾기는 힘들거라고 생각해서 그동안 이산가족 찾는데 신청을 안했었다. 연세가 드시고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아버지께서는 북에 있는 가족들을 찾고 싶어 하셔서 이번에 신청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버지가 실향민이 되고 난 뒤 갑자기 가장이 되셨다. 같은 실향민이셨던 어머니(황해도)와 결혼해 4남매를 낳고 고생이 많으셨다. 아버지는 살아오면서 내내 할머니를 가장 그리워 하셨는데 나이를 계산해보면 알겠지만 살아계신다고 기대하긴 힘들다”면서 “기억력도 점점 없어지신다며 이번에 이산가족상봉이 성사된다면 꼭 동생들이라도 찾고 싶어 하신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에게 바라는 점은 “만나는데는 많은 과정과 절차가 필요하겠지만 고령자들 가족들을 우선적으로 최소한의 생사여부라도 알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이산가족 김일용씨는 “외할머니(이완님, 89세)가 큰외삼촌(최관호, 67세)을 찾고 계신다”며 “남한에 있는지 북한에 있는지조차 생사여부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외할머니께서 매일 눈물바람이시다. 큰외삼촌은 할머니의 이름은 모를 거라고 하셔서 할아버지(최일주)와 형제들(최옥초, 최영호, 최성공)의 이름을 이산가족정보센터에 등록을 해두었다”고 덧붙였다.
충남에 거주중인 이산가족 안미지씨는 같은 날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황해도 출신 아버지(안희천, 83세))의 일가친지의 생사여부를 알고 싶다”며 “북에 있을지 모르는 아버지의 형제들이 할아버지(안두만)의 성함은 알 수 있을 것 같아 사이트에 할아버지 성함만 올려놨다. 남쪽으로 내려와 홀홀단신 고아처럼 사셨다”고 전했다. 안씨는 “예전에 이산가족상봉에 신청을 한 적 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는지 소식을 알 수 없었다”며 이산가족상봉을 추진하고 있는 박 대통령에게 “과거에 이산가족상봉을 했던 실향민들이 지금은 서로 연락을 못 하고 살고 있다. 아버지가 걱정하시는 것은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되고 잠깐 얼굴 보는 것이 좋을 수는 있지만 그 이후에 북측 가족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없어서 걱정이시다. 북 측의 가족들이 잘못될까봐 아버지가 섣불리 신청을 못하셨다. 실향민 모임에 나가면 많은 분들이 그런 이유로 신청을 꺼려하기도 한다”며 “정부는 상봉 한번으로 끝내지 말고 가족들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서로 연락을 할 수 있도록 힘써줬으면 좋겠다. 상봉 이후에도 안전하게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 남북이산가족상봉이 잘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대전에 거주하고 있는 또 다른 이산가족 최성규씨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4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김석자, 77세)의 가족들이 북한에 계신다. 18살에 혼자 내려와 외롭게 사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족들을 그리워하셔서 2010년부터 적십자사에 이산가족찾기 신청서를 냈다”며 “남한에 혹시 계실까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끝내 찾지 못해 가족들의 생사여부도 모른채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최성규씨는 과거 이산가족상봉에 신청을 못한 이유가 ‘고령이신 분들 위주로 선택이 되실거라 어머니의 차례까지는 오지 않겠다는 생각에서’라고 했다. 그는 “지금도 많은 이산가족들이 이산가족상봉을 기다리고 있을 거다. 그분들에 비하면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의 가족을 찾는 것은 욕심일 수도 있다. 그래도 연세가 많으신 실향민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되도록 빨리 많은 분들에게 기회가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대부분의 실향민의 가족들은 자신들의 어머니 아버지의 나이가 많아 기억이 예전보다 희미해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산가족 안미지씨는 “아버지의 부모님들은 연령을 추측해보면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망향제식으로 이름 없이 제사를 지낸다. 아버지의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꼭 형제 조카들이라도 찾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미 돌아가신 부모의 형제라도 찾아서 한이라도 풀어주고 싶다는 이산가족도 있었다. 최성규씨는 “북측에 있는 어머니의 가족들마저 돌아가시면 어머니의 유언을 못 지켜드리는데.. 걱정이다. 어머니의 고향이 금강산 근처다. 거동이 불편해 금강산 관광도 신청 못 해드렸는데…”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전국에서 이산가족들 문의 쇄도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제68주년 광복절 경축식 축사에서 추석 전후 이산가족상봉을 공식 제안했다. 이어 18일 북한은 조평통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이산가족상봉 실무회담을 수용했다. 하지만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실무회담 장소를 남측은 ‘평화의 집’에서 하자고 제안했으나 북측이 실무회담 장소를 금강산으로 수정하고 22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별도의 회담을 금강산에서 갖자고 밝힌 바 있다.
통일부는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북한의 금강산 관광 재개회담 개최 제의는 원칙적으로 수용하되 회담 날짜를 다음달 25일로 변경하자고 역제의했다.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고자 하는 정부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었다. 북한은 우리 측의 수정 제의에 대해서는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을 8월말에서 9월초 쯤 개최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무회담 이후 이산가족상봉 재개 가능성이 커지면서 추가 상봉 신청 등 관련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상봉이 성사된 이후의 절차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을 공식 제안한 지난 15일부터 전국 각지에 거주 중인 이산가족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신청 확인이나 주소지 변경 등의 문의가 대부분이며 추가 신청도 늘고 있는 추세라고 대한적십자사는 설명했다.
적십자사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될 경우 상봉 후보자 선정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인선위원회를 개최한 뒤 고령자와 직계가족 우선 원칙 등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해 무작위 추첨으로 상봉 인원의 3∼5배수를 선정할 계획이다. 이후 상봉의사 및 건강상태 등을 확인해 상봉자를 2배수로 압축한 뒤 북측과 생사확인 의뢰서를 교환하고 생존자 가운데 최종 대상자를 뽑게 된다.
이산가족 신청은 재북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상봉 등, 교류를 원하는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한다. 이산가족 1세대 본인 또는 가족으로 1인 이상 신청이 가능하며 6.25 전쟁 시 및 전후 납북자의 가족들도 신청 가능하다. 신청방법은 인터넷(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 사이트https://re union.unikorea. go.kr/re union/index), 우편(서울 중구 소파로 145 대한적십자사 남북교류팀), 전화(02-3705-3654) 및 각 시도지사, 통일부 이산가족과로 직접 상담을 받아도 된다.
탈북·납북자‘이산가족 상봉’에 엇갈린 시선
“납북피해자 가족들에게도 관심 가져 줬으면”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집계된 남한 내 탈북자 수가 2만 3000명이 넘은 것으로 조사됐다. 분단 이후 탈북자에 대한 최초의 칭호는 ‘귀순자’였다. 1997년 1월부터 ‘북한이탈자’로 부르다가 2005년 1월 9일부터 ‘새터민’이라 불렀다. 2008년 11월 21일부터 ‘북한이탈주민’이라 칭하고 있다. 탈북자 23000명· |
안은혜 기자 iamgrac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