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 베끼기 범람
식품업계 베끼기 범람
  • 강휘호 기자
  • 입력 2013-08-26 10:39
  • 승인 2013.08.26 10:39
  • 호수 1008
  • 3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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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운해태·오리온 등 개선할 의지조차 안보여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식품업계의 표절 실태가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IT업계에선 ‘제품 모서리에 각진 부분이 있느냐 없는냐’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표절시비가 붙고, 회사 간 전면전을 벌이기까지 하는데 식품업계의 표절은 아직도 단순 ‘벤치마킹’으로 치부되고 있다. 특히 업계에서도 소문난 ‘카피캣’ 크라운해태, 오리온, 롯데 등은 이러한 행태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조차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초코파이·새우깡·빼빼로 원조는 일본
미투제품 모방은 맞지만 표절은 아니다?

미투제품(잘 나가는 제품을 그대로 모방해 만든 제품)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끊임없는 논란에도 각 기업들이 미투상품을 고집하는 행태에 대해 ‘투자비 절감’과 ‘시장성 확보’를 주요인으로 지목한다. 즉 미투제품을 내놓는 기업들은 시장분석 및 연구, 제품개발 등에 쏟아야 하는 막대한 자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비판을 감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투제품은 항상 선발 업체의 인기를 아무런 노력도 없이 가져온다는 점에서 비도덕적인 상술이라는 비난이 따르기도 한다. 또한 하나의 시장에서 유사한 제품의 공급이 늘어나게 되면 시장전체가 붕괴되는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다수다.

비신사적 시장 잠식의 실상

이와 같은 미투제품을 넘어선 표절시비의 정점을 찍는 곳이 바로 식품업계다. 실제 그동안 식품업계에선 미투제품이 잇따라 오리지널 제품을 내놓은 기업이 밀려나는 일은 비일비재해왔다.

엄청난 유통경로를 갖추고 있는 유통업계의 큰 손 롯데그룹은 미투제품의 온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한 포탈사이트에선 ‘미투제품’을 검색했을 때 관련 검색어로 롯데그룹의 계열사의 이름이 나열될 정도다.

특히 롯데음료의 표절논란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1980년대 후반 코카콜라사의 암바사보다 뒤늦게 출시한 롯데음료의 밀키스가 암바사를 업계에서 거의 퇴출직전까지 몰아낸 것은 미투제품의 초시로까지 불린다. 이후 1990년대 말 음료업계를 들썩인 ‘2% 부족할 때’ 역시 3개월 먼저 나온 남양유업 ‘니어워터’의 짝퉁의혹이 짙었지만 인기를 등에 업고 논란을 잠재웠다.

이 외의 미투제품으로는 광동제약의 ‘비타500’과 유사한 ‘비타파워’, 코카콜라의 ‘환타 쉐이커’와 닮은 ‘쉐이킷 붐붐’, CJ제일제당의 ‘컨디션 헛개수’와 비슷한 ‘아침헛개’, 웅진식품의 ‘하늘보리’를 잇는 ‘황금보리’ 등 끊이지 않았다. 음료수가 전부인 것도 아니었다. 롯데제과는 크라운 쵸코파이를 따라한 ‘롯데 초코파이’를 시작으로 크라운제과의 ‘버터와플’에는 ‘롯데와플’, 해태제과의 ‘홈런볼’과 유사한 ‘마이볼’ 등을 생산해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제재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롯데칠성은 지난 8월 과도한 베끼기로 공정거래위원회의 경고장을 받기도 했으며 크라운, 국순당 등의 업체로 하여금 고소를 당한 기억도 있다.

이와 관련,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가 대대적인 유통망을 활용해 기존 제품을 앞서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이미지적인 부분이라든지 수익성을 고려해도 롯데가 타사제품 베끼기를 멈출 이유가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또 이처럼 국내 시장을 통해 베끼기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것이 롯데그룹이라면 한 발 더 나아가 타 식품업체들은 일본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다만 표절제품이 판매되는 시장이 국가 간의 경계를 갖고 있어 소비자들에게 확실히 다가오지 않았던 것뿐이다.

국내에서 수년, 수십년 넘게 히트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농심 새우깡, 오리온 초코송이, 고래밥, 해태 칼로리발란스, 아미노업, 남양유업 17차 등이 그 주인공이다. 분명 이들 제품은 국내 제과 및 음료시장에서 굵직한 획을 그었지만 제품들에 대한 표절시비는 그치지 않고 있다.

일례로 농심 새우깡은 일본 스낵 브랜드인 가루비의 ‘갑파에비센(かっぱえびせん)’과 매운맛 새우깡이나 쌀새우깡 등 후속 라인업까지 유사하다. 다이어트식품으로 주목받던 해태제과 칼로리바란스와 일본 오츠카제약의 ‘칼로리메이트(カロリ-メイト)’도 포장 디자인부터 제품 형태까지 유사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똑같아 보여도 줄 하나가 더 들어가 있으면 모방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결국 표절 논란이 된 제품군은 버젓이 팔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국내 식품업계가 아직 일본 영향권 안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일기도 한다.

각계 비난 못 듣는 기업들

이처럼 국내 시장 뿐 아니라 일본 제품들까지 베끼기에 열중하는 기업들은 각계에서 비판의 메시지를 강하게 어필받고 있다. 과거 일본 TV도쿄는 인기 시사 프로그램 ‘월드 비즈니스 새틀라이트’를 통해 한국 제과업계의 일본 과자 베끼기 관행을 고발하며 “일본도 모방을 통해 발전한 나라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비난한 적도 있다.

국내 한 재계관계자 역시 “국내 식품업계는 개발보다 모방에 집중하는 경향이 크다”며 “유독 식품업계가 모방에 대해 관대한 측면이 있는 것은 외국 제품을 따온다고 해도 제재를 받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물론 모방을 통해 발전하는 부분도 있지만 과도한 모방은 결국 업계의 쇠퇴를 가져올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베끼기를 일삼는 기업들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오리온 관계자는 “우리는 할 수 있는 답변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롯데제과 관계자도 “국내에 출시해 있는 모든 과자류들은 수입해서 들어온 제품이 많다. 과자 자체가 서양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어떤 제품이든 수입 후 응용하는 가운데 새제품이 개발되기도 한다. 때문에 현재 논란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일축했다. 또 “롯데는 일본 롯데와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상호간의 정보 공유가 있는 상황이 있어서 그런 부분에서 공통점이 발견되고, 벤치마킹이 이뤄지기도 한다”며 표절이 아닌 벤치마킹임을 강조했다.

과연 이들의 도를 넘어선 벤치마킹이 미래의 소비자들에게 어떠한 판단을 받을지, 식품업계의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에 이목이 집중된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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