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 꿰찬 사연 알고보니…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중견 제지전문 기업 영풍제지. 그 안에선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로 일컬어질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올해 79세를 맞이한 이무진 영풍제지 회장의 35세 연하 아내가 회사의 지분 전량을 손에 쥐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한 매체를 통해 “나는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라는 한마디 말로 상황을 설명했지만 여전히 이들 사연에는 이 회장의 친아들과 관련해 여러 가지 의혹이 남아 있는 상태다. 이에 [일요서울]이 영풍제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추적해봤다.
결혼 5년 만에 李회장 보유 지분 전량 승계
배당금만 25억 원…전 대표 두 아들들은 어디로
1970년 설립된 코스피 상장기업 영풍제지는 주로 지관용 원지와 라이나 원지 등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게다가 2011년 기준 자산은 1105억 원,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각각 1156억 원과 36억 원을 기록할 만큼 튼튼한 중견기업으로 분류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진 영풍제지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일은 거의 드물었다. 코스피 상장사지만 소비재를 다루는 것도 아니고 임직원 역시 100여 명에 불과해 자세한 속사정을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토록 조용하던 영풍제지에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세간의 시선이 몰렸던 것일까. 사건의 발단은 지난 1월로 돌아간다. 이 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지분 51.28% 전량을 자신보다 35세나 어린 아내 노미정 부회장(44)에게 넘겨줬다. 증여일 종가 주당 1만 6800원을 기준으로 삼으면 총 증여가액은 207억 원이었고, 이로 인해 사실상 노 부회장이 영풍제지의 주인이 된 것이다.
물론 단순히 한 중견기업 회장이 자신의 아내에게 지분을 넘긴 자체로 화제가 된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이 결혼한 지 불과 5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 이 회장과 전처 사이에 장성한 두 아들이 있었음에도 현재 아내 노 부회장에게 지분 전량을 넘긴 점 그리고 영풍제지가 최대주주 변경 사실을 극도로 밝히기 꺼려하는 점 등은 대중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2세 경영 실패 속사정은
사실 두 아들이 영풍제지에서 처음부터 벗어나있던 것은 아니었다. 2002년 제지사업은 제품 원가에 따라 부침이 큰 사양산업으로 여겨지고 있었고 70대를 바라보는 이 회장도 경영권 승계 이후를 자신할 수가 없었다.
당시 회사 대표가 장남인 이택섭 전 사장이었다. 2009년 퇴임하기까지 6년 6개월간 대표이사로 주요 의사결정을 도맡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는 대표 자리에 올라 있는 동안 부동산개발사, IT기업 등 인수에 손을 댔지만 손실을 봐야 했다. 특히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자 야심차게 벌인 서울 중구 황학동 아크로타워 분양사업은 더 이상의 2세 경영을 힘들게 했다.
결국 2009년 3월 이 사장이 보유지분을 정리하고 경영에서 물러났고, 이 회장이 다시 대표이사를 맡았다. 차남인 이택노 이사가 등기임원에 올라 경영수업을 받았지만 이마저 오래 가진 못했다. 때문에 2세 경영이 실패로 돌아갔던 이 회장이 35세 연하 재혼녀에게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냐는 설도 돌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전 사장이 회사를 나간 시점과 이 회장, 노 부회장의 결혼 시점을 두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 회장 부부의 재혼이 2008년, 이 전 사장의 퇴임이 2009년 이뤄진 것을 두고 장남 이 전 사장은 아버지와 노 부회장의 결혼으로 인해 밀려 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더욱이 이 회장은 앞서 “두 아들은 이미 지분을 가져갈 만큼 가지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 전 사장이 가지고 있던 지분 3% 마저 모두 팔고 나간 것으로 알려져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현재 이 두 아들들이 보유한 영풍제지의 지분은 단 한 주도 없으며 이들의 행방도 묘연한 것으로 알려진 상태다.
75세에 자식 또 얻어
또 놀라운 것은 두 부부 사이에도 다섯 살 난 자식이 있다는 사실이다.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가졌다고 가정해도 현재 각 79세, 44세인 이 회장과 노 부회장의 나이를 감안하면 이 회장은 75세에, 노 부회장은 40세라는 나이에 노산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근거로 이 회장의 마음이 노 부회장 쪽으로 더울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늦둥이를 봤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만 이처럼 많은 의혹이 나돌고 있음에도 노 부회장의 신상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노미정 부회장이 언제 부회장직을 맡은 지는 정확하지 않다. 지난해 발행된 2011년 사업보고서를 통해 노 부회장이 (미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린 것이 노 부회장 신상의 거의 전부다. 또 사업보고서에는 노미정 부회장의 출생년월(1969.04), 담당업무(경영총괄), 재직기간(1개월) 등이 기재됐지만 그 외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한편 노 부회장의 등장과 함께 영풍제지의 ‘아내 밀어주기’는 급물살을 타고 있는 추세다. 영풍제지는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에서 최대주주 변경 지연공시의 사유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거침이 없다.
지난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영풍제지가 상반기에 등기이사 2인(이 회장, 노 부회장)에게 지급한 임원 보수는 17억940만 원을 기록했다. 시가배당률은 12%에 달했고 지난 3년간 9~16%대 머물던 배당성향도 44%로 상승했다. 이로써 노미정 부회장은 배당금으로 약 25억 원(세전)을 확보하게 됐다. 그야말로 노 부회장에게 여전히 모두를 퍼주다시피 하고 있다.
이에 영풍제지는 “증여와 관련 된 사항은 모두 이 회장의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영풍제지 관계자도 이와 관련 “노 부회장이 최대주주가 된 것은 맞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을 공개해줄 수 없다”며 “이 전 대표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사실과 아직 이 회장의 경영권은 노 부회장이 가져가지 않았다는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