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수식어의 종말 오려면
전세, 수식어의 종말 오려면
  • 김나영 기자
  • 입력 2013-08-26 10:06
  • 승인 2013.08.26 10:06
  • 호수 1008
  • 2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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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이사철 오는데…‘돌아버린 전셋값’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전세대란’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전셋값으로 이미 기정사실화됐다. 최근 서울의 전셋값 주간 오름폭은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일주일새 무려 2500만 원이 뛴 곳이 있을 정도다. ‘미친 전세’, ‘전세 거래절벽’ 등 수많은 수식을 달고 신조어를 양산해 내는 전세제도의 현황을 짚어봤다.

 

<사진=뉴시스>

수급 불일치 심화…월세로 전환되는 과도기
싸늘한 시장…8ㆍ28 전월세 대책 효용성은

작금의 부동산 상황은 거래절벽과 전세종말론으로 요약된다. 그중에서도 전세시장의 불안은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 기인한다.

전세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임대차 제도다. 여타 국가의 경우 대부분 연 단위나 월 단위 렌트가 주를 이루고 있다.

국내에서 유독 전세가 발달한 이유는 고도 성장기에 이뤄졌던 급격한 집값 상승 탓이 크다. 주택 가격이 오름으로써 이를 통한 자본 이득을 기대하던 시대의 산물인 것이다.

당시 자고 일어나면 오르는 집값을 사이에 두고 집을 사려는 이와 집을 빌리려는 이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전세 제도다.

일례로 하루라도 빨리 목돈을 마련해 집을 사고 싶은 A가 있다면, 일정 기간 추가적인 부담 없이 집을 빌리고 싶은 B가 있다. 이러한 경우 임대인과 임차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해 전세 계약이 성립하는 셈이다.

그때만 해도 집값은 무섭도록 올라 주택 구입자들을 웃음 짓게 했다. 또 전세 세입자들에게는 종자돈을 마련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부푼 희망을 줬다.

전세의 종말이 오지 않는 한 집값이 대세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여전했다. 최근 국내 주택시장을 들여다보면 동일한 매물의 전세가격이 7년 후에는 매입가만큼 올라 따라잡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예를 들어 시가 6억 원인 주택의 현재 전세가가 3억6000만 원이라면 7년 후에는 같은 주택의 전세가가 6억 원가량으로 치솟는 현상이 이어지는 것이다. 앞서 노무현 정부 시절만 보아도 5년 동안 아파트 매매가격은 33.8% 증가했고 전세가는 11.3% 상승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는 5년 동안 아파트 매매가가 15.9% 상승한 데 반해 전세가는 39.4%가 오른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국민은행이 발표한 아파트 시세 통계에 따르면 1986년부터 지난해까지 26년간 우리나라 아파트 전세가 상승률은 매년 평균 8.3%에 달한다.

보통 전세계약이 2년 단위인 것을 감안하면 집을 옮길 때마다 16.6%의 비용을 더 지불해야만 비슷한 환경에서 거주할 수 있다. 같은 주거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년마다 16.6%의 전세금을 올려 주어야 하는 셈이다.

이를 계산해보면 주택을 구입한 후 그 전세가가 매입가를 추월하는 데는 평균적으로 대략 7년이 소요된다. 만약 시가 6억 원의 주택을 3억6000만 원의 전세를 끼고 나머지 2억4000만 원을 투자해 샀다고 가정해 보자. 7년 후 전세가는 6억2907만 원으로 가만히 앉아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집값과 전셋값의 상관관계

하지만 이제는 집값이 더 이상 오르지 않으면서 이러한 꿈이 모두 깨졌다.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주택이 과잉 공급되면서 집값은 정체되다 못해 하락하고 있다.

이미 주택 구입자들 중 상당수는 ‘깡통주택’을 보유한 ‘하우스푸어’로 전락했다. 그나마 대출이 없는 경우도 금리가 떨어지는 바람에 전세금을 굴릴 방도가 없어 머리를 싸매고 있다.

사람의 심리란 눈에 보이는 이득이 줄어들면 다른 곳에서 채우고 싶기 마련이다. 집값은 내려가는데 대출은 갚아야 하고 전세금 이자도 미미하면 차라리 월세를 놓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주택 보유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전세를 월세로 전환 중이다. 여기에 오갈 데 없는 세입자들의 불만은 폭증하고 있다.

전세난이 심화될수록 세입자들은 주거비를 증가시키거나 타 지역으로 이동하는 등 원치 않은 선택을 해야만 한다. 실수요자들 사이에서는 지금 전세를 구하려면 깡통주택 외에는 물건이 없다는 한숨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세입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줄 방도는 미비하다. 정부는 ‘목돈 안 드는 전세’와 같이 전셋값 상승을 부추기는 대책을 발표해 시장의 원성을 샀다. 곧 확정될 8ㆍ28 전월세 대책도 상한제를 두고 공방을 벌일 뿐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사실 전세시장의 불안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며 적어도 3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면서 “전세시장은 공급이 모자라는 부족 현상과 수요가 지나치게 넘치는 초과 현상의 엇박자로 좀처럼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박 위원은 “전세자금 대출 확대 같은 임시방편은 오히려 전셋값을 더 올려놓는 부작용이 뒤따른다”면서 “전세자금 지원은 비싼 전세를 구매할 수 있는 유효수요를 늘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박스]

대세는 월세?…전세 누르고 등극할까
올해 전월세 거래량 중 약 40% 차지

최근 거래된 전ㆍ월세 주택의 약 40%가 월세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전세와 월세의 역전 현상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전월세 주택 거래량 83만6637건 가운데 월세 주택이 총 32만5830건으로 38.9%를 차지했다고 지난 20일 밝혔다.

국토부에 따르면 전월세 거래량에서 월세 비중은 2011년 평균 33%였으나 지난해 34%로 높아진 뒤 올해 들어 다시 4.9%포인트가 올라갔다. 이는 국토부가 월세 거래량을 조사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특히 이번 결과는 전세와 반전세만 포함하고 순수 월세는 집계되지 않아 실제 부동산 시장에서의 월세 비중은 훨씬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부의 전·월세 거래량에는 계약 후 확정일자를 받는 전세를 비롯해 보증금 예치 후 매월 약정액의 월세를 지급하는 보증부 월세만 포함돼 있다.

이처럼 월세 비중이 급격하게 높아진 이유는 저금리로 인해 집주인들이 인상된 전셋값을 일부 월세로 돌리는 ‘반전세’가 늘어난 탓이다. 현재 시중은행 금리가 2%대 중반인 데 반해 월세형태의 임대 수익률은 약 6%로 분석된다.

월별로는 지난 1월 42.3%, 3월 40.2%, 7월 39.6%로 40%대를 넘나들면서 지난해의 30~35%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기류를 형성했다. 아파트의 경우에는 지난 1월 32.6%, 7월 33.3%를 넘기는 등 확연히 높아진 월세 거래 형태가 드러났다. 올해 아파트 월세 비율은 평균 30.4%로 2011년 25.4%, 지난해 25.7%에 비해 크게 상승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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