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여사 피격 4대의혹 총탄 - 탄흔 불일치
육여사 피격 4대의혹 총탄 - 탄흔 불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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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5-01-27 09:00
  • 승인 2005.01.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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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들은 정부가 발표한 외교문서 공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식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제기돼 왔던 육 여사 저격사건 미스터리를 종합, 총 4가지로 분류했다. 가장 큰 미스터리는 총탄과 탄흔의 불일치다. 사건현장을 취재했던 뉴스위크에 따르면 당시 기념식장에서 울린 총성은 총 7발. 정부는 수사보고를 통해 1탄은 오발, 2탄은 단상, 3탄은 불발, 4탄은 육여사, 5탄은 태극기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 감식을 나간 고(故) 이건우 시경 감식계장에 따르면 1탄은 오발, 2탄은 단상, 3탄은 태극기, 4탄은 천장, 5탄은 권총 안에 남아 있었다는 수사내용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치하지 않는 한발이 과연 육 여사를 맞힌 것인지, 천장을 맞힌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총 7발 중 불발된 한발과 당시 행사장에 참석하고 있던 여고생을 맞힌 한발을 제외한 나머지 2발의 행방도 의혹이다. 관객석에서 바라보았을 때 육 여사는 연단 우측에 위치해 있었다. 육 여사를 저격한 것으로 밝혀진 문세광의 위치는 연단 좌측. 당연히 육 여사의 우측 머리를 강타했을 것으로 육여사의 머리는 물리적인 힘에 의해 좌측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러나 육 여사의 머리는 우측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문세광은 조총련 간부로부터 대통령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은 대북 공작원이었다. 그러나 사건 당일 행사장으로 통하는 차량을 검문하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문씨는 극장안까지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또 극장 로비에서 문씨가 청와대 경호계장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시 국가 상황은 김대중씨 납치사건으로 혼란스러웠던 때다. 김씨가 일본 도쿄에서 납치되자 일본 언론은 중앙정보부 관련설을 제기했고, 미국에서도 한국정부를 비난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압력을 받던 때이다. 이번 사건을 김대중씨 납치사건 무마용으로 보는 의혹도 이 때문이다.<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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