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정부가 근로소득자들에게 부담을 지운 세법 개정안을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다시 수정안을 내놨다. 그러나 수정안 역시 봉급생활자가 집중된 서민층을 겨냥했다는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정작 대기업이나 고소득 전문직 및 사업자의 탈세는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는 것이 작금의 조세정책이다. 결국 만만한 봉급생활자의 ‘유리지갑’만 털리는 데 대해 국민들은 허탈감마저 느끼는 형국이다.
소득공제 → 세액공제로 전환…일반적 조세원칙과 달라
과세형평성도 논란…두 마리 토끼 잡으려다 헤매는 정부
애초 정부가 발표한 ‘2013년 세법 개정안’은 지난 5년간 줄었던 세수를 다시 늘려 부족한 세원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이전 MB 정부에서 감세로 어그러진 과세 체계를 증세 없이도 정상화하겠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확충한 세원으로 복지를 강화해 서민들의 어려움을 살피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발표된 내용은 그토록 공언하던 ‘증세 없는 복지’와는 사실상 거리가 멀었다. 처음에 발표된 개정안은 소득공제제도의 세액공제 전환과 농ㆍ수산물 의제매입세액공제 한도 설정 등으로 약 4조4800억 원의 세수가 늘어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와 자녀장려세제(CTC)의 도입 및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 한도 인상 등 약 1조9900억 원이 감소요인으로 작용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총 2조4900억 원의 세수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했다.
이중 소득공제제도의 세액공제전환이 논란의 불씨가 됐다. 개정안은 연소득 3450만~7000만 원 구간 근로자들의 소득세를 단계적으로 연간 16만 원까지 높이도록 설계됐다. 세액공제로 전환되는 대상은 자녀공제와 의료비ㆍ교육비ㆍ기부금ㆍ보험료ㆍ연금저축ㆍ보장성보험 등 필요경비 항목이다. 개정안대로라면 세부담이 늘어나는 근로자는 총급여가 연 3450만 원이 넘는 434만 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28%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경제부총리)는 “고소득층에 유리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해 새롭게 확보하는 세수는 전액 서민과 중산층에게 돌아가도록 함으로써 조세를 통한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도 “총급여가 3450만 원에서 7000만 원 사이인 사람들의 추가 세부담은 1년에 16만 원”이라며 “우리 사회가 이 정도를 분담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정부가 대기업이나 고소득층 대신 만만한 근로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간다는 것이 대대적인 문제로 꼽혔다. 성난 여론에 대한 정부의 변명도 궁색했다. 청와대 측은 “근로소득자를 때려잡기 위한 것이 아니며 상대적으로 소득이 많은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세금을 더 많이 내게 하는 구조”라며 해명하기에 급급했다.
계속해서 국민들의 불만이 증폭되자 정부는 꼬리를 내렸다. 발표 직후 중산층에게 소액의 세부담은 거부가 없을 것이라는 논리로 4일간 버틴 것과 대조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2일 “서민과 중산층의 가벼운 지갑을 다시 얇게 하는 것은 정부가 추진하는 서민을 위한 경제정책 방향과 어긋난다”면서 원점 재검토로 방향을 틀었다.
하루 뒤인 13일 발표된 수정안에서는 세부담이 증가되는 기준을 연소득 5500만 원까지 끌어올렸다. 또 연소득 5500만~6000만 원까지는 연 2만 원, 6000만~7000만 원까지는 연 3만 원만 세부담이 늘어나도록 바꾸기로 했다.
이로써 세부담 납세자의 수는 기존 개정안의 434만명(28%)에서 절반 수준인 210만명(13.6%) 수준으로 축소됐다. 또 5500만~7000만 원 구간의 100만명(6.5%)은 당초 정부안보다 13만~14만 원의 세부담을 덜게 됐다. 개정안이 발표된 지 불과 5일 만에 일어난 해프닝이다.
실질적 생활비 부족한 계층서 증세?
수정안에도 불구하고 아직 문제점들은 산적해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이 일반적인 조세원칙과 사뭇 다를 뿐 아니라 과세형평성도 깨졌다고 지적했다.
현 세법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면 전반적으로 세부담이 늘어나게 되는 구조다. 정부가 과표기준에 따라 세율이 올라가는 누진세율을 채택하고 있어서다.
원래 소득공제는 전체 소득에서 의료ㆍ교육비 같은 필요경비를 뺀 과표기준에 세금을 부과한다. 반면 세액공제는 일단 전체 소득을 과표기준으로 보고 과세한 뒤 필요경비를 돌려준다. 필요경비를 많이 쓴 근로자일수록 세액공제가 불리한 셈이다.
일반적인 조세원칙대로라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필요경비를 공제한 나머지에 세율을 곱해 소득세를 계산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 필요경비가 높다는 것은 실질적인 생활비는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 계층에서 세수를 확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도 크다. 사실상의 증세지만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이 아니라 비과세 감면 또는 축소이기 때문에 증세가 아니라는 교묘한 논리도 조롱거리가 됐다.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장(인천대 교수)은 “연간 근로소득이 아무리 많아도 필요경비를 지출하지 않았던 납세자는 더 내야 할 세금이 없는 반면 노후ㆍ사고에 대비하거나, 큰 치료를 받은 가족이 있거나, 대학생 2명의 자녀나 유치원생 2명의 자녀를 둔 근로소득자들만 세부담이 증가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