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박근혜 정부의 정책금융기관 재편이 사실상 확정됐다. 정부가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를 통합하는 내용의 재편안을 곧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산은과 정책금융공사의 표정이 교차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탄생시킨 정책금융공사는 4년 만에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노조를 중심으로 성명을 내고 집회를 여는 등 살아남기에 안간힘을 다하는 중이다. 이외에도 이명박 정부의 대표 서민금융정책이던 바꿔드림론은 새 정부의 국민행복기금으로 흡수되다시피했고 미소금융은 재원 부족에 존재감을 상실하는 등 새판짜기의 희생양으로 전락한 현황을 조명해봤다.
산은-정책금융公 통합 초읽기…제 밥그릇 싸움 가열
바꿔드림론은 흡수되고 미소금융은 존재감마저 상실
산은과 정책금융공사의 통폐합은 산은 민영화 불가론이 나왔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이로써 새 정부에서 내려온 홍기택 현 산은금융 회장은 이전 정부의 산물인 정책금융공사를 산은에 흡수통합하게 됐다.
본래 산은과 같은 국책은행은 정부의 지급보증이 이뤄지며 시중은행과 달리 예대율 100%의 규제를 받지 않아도 되는 강점을 지녔다. 또한 낮은 이자율로 산업금융채권(산금채)를 발행할 수 있으며 종합증권사만 보유 가능한 증권 라이선스를 취득할 수 있다. 더불어 부실기업의 인수ㆍ합병 등에서 독점적인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
이러한 국책은행의 이점을 가지고도 산은은 민영화를 전제로 공공기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결국 강만수 전 회장은 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추진하는 광폭행보를 보였고 인력운영과 예산집행 부문에서 완전한 자율권을 획득한 바 있다.
당시 기재부 측은 산은 등 해당 기관들에 대한 정부의 민영화 의지를 분명히 밝혀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할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산은 민영화가 잠정적 중단 상태에 빠지면서 이미 공공기관 지정 해제에 대한 의미를 잃은 형국이다.
앞서 산은은 MB 정부가 내걸었던 국책은행 민영화를 위해 구 4대 천왕인 강 전 회장을 수장으로 맞이했다. 민영화에 수반되는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는 한편 잠시나마 HSBC 인수를 검토하고 다이렉트뱅킹을 론칭하는 등 소매금융을 확대하는 모험도 감수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국책은행 민영화 불가를 외치며 강 전 회장을 내보내고, 홍 회장을 앉히면서 산은의 형편은 크게 달라졌다. 민영화와 IPO 는 전면중단에 야심찼던 다이렉트뱅킹도 축소됐고, 갈라졌던 정책금융공사와의 재통합까지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나마 정책금융공사를 흡수통합한다는 점은 산은에 위안이 됐다.
매번 서민금융정책 실태 점검?
MB 정부의 대표적인 서민 금융정책인 바꿔드림론과 미소금융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서민금융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대출상품은 목적에 따라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기존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전환해 주는 대환대출, 긴급 생활비를 빌려주는 생계자금 대출, 저소득자의 창업을 지원하는 창업자금 대출 등이다.
이 대환대출의 대표적인 상품인 바꿔드림론은 연소득 4000만 원 이하의 신용등급 6~10등급자나 연소득 2600만 원 이하의 서민을 대상으로 최고 3000만 원까지 연 8~12%의 이자율로 대출을 전환해준다. 현재 바꿔드림론은 새 정부가 만든 국민행복기금에 흡수되다시피 했다.
또 창업자금 대출의 대표격인 미소금융은 기초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자나 신용등급 7~10등급의 저신용자 중 창업예정자를 대상으로 최고 1000만 원의 운영자금과 최고 5000만 원의 창업자금을 연 2.0~4.5%의 이자율로 제공한다. 기존에 은행의 휴면예금을 재원으로 활용하던 미소금융은 법원의 판결에 따라 이를 쓰지 못하게 되면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이외에도 생계자금 대출인 햇살론·새희망홀씨·희망드림 등에 이르기까지 전 정부가 창출했던 대부분의 상품은 현 정부의 국민행복기금 등 여타 정책과 중복되는 면이 많다.
햇살론은 농ㆍ수ㆍ신협,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과 저축은행에서 취급하며 자격대상은 바꿔드림론과 동일하다. 대출금은 용도에 따라 생활비 등을 각각 1000만~5000만 원 한도에서 연 8~11%의 이자율로 빌려준다.
시중은행에서 취급하는 생활비 대출인 새희망홀씨는 연소득 4000만 원 이하의 신용등급 5~10등급자나 연소득 3000만 원 이하의 서민을 대상으로 최고 2000만 원 한도에서 연 11~14% 이자율을 매겨 제공한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희망드림이라는 이름으로 연소득 4000만 원 이하의 임금체불 사업장 재직자에게 최고 700만 원까지 연이율 3%로 긴급 생활비를 수혈해준다.
이중 햇살론은 바꿔드림론·미소금융에서 지원하는 부문을 가리지 않고 취급하며, 바꿔드림론은 국민행복기금과 겹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특히 햇살론의 경우 생활비 외에도 대환대출과 사업운영 및 창업자금을 모두 취급하다보니 지원창구마저 상품을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그것도 기관마다 상이한 기준은 물론 실적 경쟁까지 벌어지면서 이용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결국 현 정부는 서민금융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이전 정부의 색을 모두 지우고 있다. 감사원은 시중은행의 새희망홀씨 대출 과정에 일부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올해 초부터 햇살론ㆍ새희망홀씨ㆍ미소금융 등 서민금융 전반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금융감독원은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이 은행권에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신용평가 시스템의 개편을 추진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오는 연말까지 은행의 저신용자 신용평가 모형을 새로 만들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신용도가 낮은 사람은 제1금융권인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가 어려워 제2금융권에서 20~30%대 고금리 상품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은행의 저신용차주 등급 자체를 세분화해 저신용자의 대출을 흡수하겠다는 이야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전 정부에서 시행됐던 정책은 현 정부에서 대폭 수정되거나 사라지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현 정부의 제 색깔 내기는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