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켐프워커 인근 주택가 노인들 공포의 생활
대구 켐프워커 인근 주택가 노인들 공포의 생활
  • 경북 김기원 기자
  • 입력 2013-08-15 10:45
  • 승인 2013.08.15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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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경북 김기원 기자] 대구시 남구 대명5동 미군기지 캠프워커 인근 주택가. 어른 키 높이의 회색 담장이 골목길 양편에 병풍처럼 세워져 있어 골목길은 어른 1~2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고, 바닥 곳곳엔 잡초가 듬성듬성 자라 있었다.

이 지역의 골목길 한 주택에 들어서자 풍경은 더 황량해졌다. 곳곳에 폐자재와 빈 술병, 먹다 남은 음식 등이 뒤엉켜 폐허를 방불케 했다. 건물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최근 들어 동네를 떠나는 주민이 부쩍 늘었다. 평생 미군부대 헬기장 소음에 시달리다 눈을 감은 주민이 부지기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구지역 대표적인 미군기지인 캠프워커 주변 주택가의 슬럼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헬기장 소음 피해에 시달리던 주민이 숨지거나 이사하면서 하나둘씩 떠난 동네는 폐허로 전락했고 남은 주민의 고통은 커지고 있다.

대구 남구청에 따르면 현재 캠프워커 일대 125가구 중 약 30%인 40여가구가 비어 있는 상태다. 지난해 말 15가구이던 공가(空家)가 불과 6개월 새 25가구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대구 남구청 관계자는 “최근 7~8가구의 주인이 죽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한꺼번에 빈집이 생기기도 했다. 폐가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고 전했다.

40여 년을 살고있다는  주민 김순자씨(여·73)는 “동구지역의 공군기지 소음 피해를 입은 주민은 법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받기도 하는데, 이곳은 감감무소식”이라며 “평생을 살면서 소음에 시달린 것도 억울한데 이젠 밤만 되면 무서움과도 싸워야 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미군기지 주변에 대한 대대적 정비나 보상의 길은 요원하다. 최근엔 이 일대가 대구시의 정비예정구역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대구시는 지난 4월 ‘2020 대구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을 발표하고, 도시환경정비사업을 벌이기로 했던 캠프워커 인근 ‘남구31’(1만8738㎡)과 ‘남구32’(1만9403㎡)의 지정을 해제했다.

남구청은 “이 지역은 2006년 당시 준공된 지 20년이 지난 노후 건물이 전체 40%를 넘어 정비예정구역에 포함됐지만, 주민동의 및 강화된 노후율 등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행정당국과 미군이 헬기장 소음 등의 문제를 두고 평행선을 그리는 사이 애꿎은 주민만 피해를 입는 모양새다.

차태봉 미군헬기소음피해대책위원회 위원장(73)은 “6년 전쯤 80여명에 달했던 주민이 현재 30명에 불과하다. 대다수가 80대 노인이어서 죽음만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헬기가 뜨고 내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는 일을 도대체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kkw53@ilyoseoul.co.kr
 

경북 김기원 기자 kkw53@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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