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평화의 소녀상’ 조각가 김운성·김서경 부부
[화제의인물] '평화의 소녀상’ 조각가 김운성·김서경 부부
  • 조아라 기자
  • 입력 2013-08-12 11:02
  • 승인 2013.08.12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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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만들때 얼굴에 신경 써 약하지만 결코 약하지 않아요”

[일요서울|조아라 기자] 1993년 8월 일본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은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위안소를 설치했고, 위안소 설치·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일본군이 관여했다”고 발표했다. 그 후로 약 20년 후인 2012년 9월. 일본 아베 총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일본군이 마치 여성들을 유괴해 강제로 위안부로 삼았다는 불명예를 일본이 짊어지고 있다”며 고노 담화를 수정할 뜻을 내비쳤다. 그 사이 수요 집회는 1000회를 넘어섰고, 234명의 피해자 할머니 중 171분이 세상을 떠났다. 20년 간 거리에서 투쟁해 온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염원하는 평화의 소녀상도 건립됐다. 일본의 역사 왜곡이 자행되는 요즘, 역사의 일을 오늘날 우리에게 불러낸 김운성·김서경 조각가를 [일요서울]에서 만나봤다. 

 
“나라가 어린 소녀들을 지켜줘야 해요. 하지만 결국 이를 못했기 때문에 그 피해를 소녀들이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어요. 평화의 소녀상을 만들면서도 내내 괴로웠어요. 이렇게 작고 여린 소녀에게 끔찍한 짓을 강요한 일본과 현실을 회피하려고 한 우리 정부에게 화가 났어요. 할머님들은 그 나름대로 안쓰럽고요. 그 괴로움을 극복하면서 작업하는 게 힘들었어요. 그런 만큼 소녀상에 대한 사람들의 큰 관심이 고마웠어요. 이 관심이 조금 더 널리 알려져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꼭 해결되길 바라고 있어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1000번째 수요 집회가 열렸던 2011년 12월 14일.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짧게 잘린 단발머리에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두 손과 뒤꿈치를 들고 있는 맨발. 연약해보지만 일본대사관을 직시하고 있는 단호한 눈매까지. 소녀상의 등장은 누군가에겐 위로와 반가움이었고, 누군가에겐 불편함 그 자체였다. 
 
소녀상 제작 초기 기획단계에서는 할머니 조각상을 만들거나 추모비를 제작하려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하지만 김운성·김서경 조각가는 “할머님들이 끌려갔을 당시 모습을 형상화해보자”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일본이 어리고 여린 소녀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만약 동상이 웅장했다면 이만큼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을 거예요. 소녀상에게서 연민의 감정도 느끼지 못했겠죠. 소녀상이 총·칼을 든 강한 모습으로 일본대사관을 째려보고 있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일본이 요구하는 데로 끌려 다녔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소녀상은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다소곳하게 앉아있어요. 그게 일본은 불편한 거예요. 허를 찔린 듯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녀가 나타났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소녀상을 제작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다소곳한 양 손이 불끈 쥔 주먹으로 바뀐 것도 일본의 제작 방해 때문이었다. 놀라운 건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소녀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인권을 주제로 열린 전시회에 작은 소녀상이 출품됐지만 한국 미술인에 의해 전시장에서 분실되는 사건이 있었다. 일본에서 열린 전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에 소녀상이 건립되는 일도 한인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소녀상이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뒤에는 말뚝테러라는 비상식적인 일을 당하기도 했다. 국내·외에 산적한 반대파들에게 트집 잡히지 않으려 두 조각가의 일상생활은 조금 조심스러워졌다는 후문이다.
 
▲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 참석한 길원옥 할머니와 소녀상<뉴시스>
“할머님들은 수요 집회 때마다 ‘평화’를 이야기 하세요. 다시는 아이들이 자신들처럼 당하지 않는 평화롭고 인권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하세요. 그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름도 ‘평화의 소녀상’이에요. 근데 일본은 ‘평화’라는 보편타당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서 소녀상을 불편해하는 거고 잘못된 역사를 왜곡하려고만 하는 거죠.”
 
소녀상은 국가지원이 아닌 시민성금으로 제작됐다. 지난달 30일 미국 글렌데일시에 세워진 소녀상 역시 한인사회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정부기금을 받아 위안부 문제를 한일정부간의 문제로 가져가는 게 아니라 전쟁범죄와 여성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민간에서 하자는 의지 때문이다.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도 뜻있는 일본인들의 지원이 있었다. 할머니들께 개인적으로 찾아와 사과와 반성을 하고, 수요 집회마다 참여하는 양심 있는 일본인도 다수다. 
 
하지만 한 나라가 조직적으로 다른 나라의 소녀들을 성노예로 데려간 전례 없는 일에 대해 여전히 국가적 사과와 배상, 관련자 처벌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소녀상을 만들 때 얼굴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썼어요. 소녀는 약하지만 약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20년 전 스스로 위안부임을 밝혔던 할머님들의 의지를 표현하려 했어요. 두 눈은 부릅뜨고 있지만 화는 내고 있지 않는 모습이요. 고통을 승화시킨 할머님들을 함축적으로 담아내려고 공을 많이 들였죠.” 
 
일본대사관을 직시하는 소녀상의 눈빛에는 우리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시각도 담겨있다. 아픔을 극복하려하지 않고 회피하려고만 하는 정부에 대한 쓴 소리다. 남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라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1991년이 돼서야 위안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소녀상은 할머님들의 마음이 저희 손을 빌려 세상에 태어난 거예요. 소녀상을 작업하는 내내 조각하길 잘했다고 생각했거든요. 앞으로 이런 감동적인 작업을 또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들어요. 그만큼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도 큰 게 사실이에요.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앞으로 소녀상2탄을 준비하려 해요.”
 
김운성·김서경 조각가가 사회문제를 조각으로 표현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두 사람은 대학시절부터 이어온 민족미술인협의회 활동을 통해 꾸준히 사회 참여적인 전시회를 열어왔다. 또 지난해에는 효순·미선양 10주기를 맞아 추모 조형물 ‘소녀의 꿈’을 제작했다. 하지만 이 조형물은 유족과 지방자치단체 등의 난색으로 지금까지 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소녀상은 한일문제지만 효순·미선양 사건은 한미문제기 때문에 몸을 사리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억울한 죽음인데도 불편해해요. 우리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할 필요가 있는데도 말이죠. 이 추모비는 그 친구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잊지 말자는 내용이지 결코 미국을 꾸짖는 게 아니거든요. 나라가 소녀들을 외면하려고 하는 과거가 되풀이 되고 있는 거죠. 딸이 있어서 그런지 이 친구들도 위안부 할머님들도 다 남일 같지가 않네요.”
 
앞으로는 더 이상 아픈 소녀가 아닌 행복한 소녀를 만들고 싶다는 김운성·김서경 조각가. 두 사람의 소망이 이뤄지기를 바라본다.
 
chocho621@ilyoseoul.co.kr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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