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강경’ 김기춘 비서실장…6인회 전면에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허태열 비서실장을 교체하고 후임에 김기춘 전 법무장관을 임명했다. 여기에 크게 두 가지 시선이 중첩되고 있다. 첫 번째 시선은 김 비서실장의 역할이다. 박 대통령을 돕는 원로그룹인 ‘7인회’ 멤버로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것. 두 번째 시선은 법무장관 출신이 비서실장에 임명된 것이 박근혜 정부가 향후 검찰을 단도리하고 사정 정국을 주도해 나갈 공산이 높다는 해석이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새누리당 김용환 상임고문, 김용갑 전 의원,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 기파랑 대표,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강창희 국회의장과 함께 ‘7인회’ 멤버로 불리는 인물이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 등을 바탕으로 박 대통령을 지원해 왔다.
특히 박 대통령이 1998년 정계 입문한 이후 막강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던 배경도 7인회의 역할이 컸다. 이 멤버 중 한명인 김기춘 전 법무장관이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이 김 실장에게 엄청난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만사형통에 박 7인회 만사칠통 가시화
새누리당 관계자들도 김 실장을 ‘박근혜 정부의 실세 2인자’로 보는 경향이 짙다.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박 대통령 스타일상 2인자를 만들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이젠 누가 봐도 김 실장을 2인자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비서실장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내각을 이끄는 정홍원 국무총리는 김 실장의 경남중 후배이고, 검찰 재직 때는 김 실장을 상관으로 모신 적도 있다. 향후 김 실장의 영향력이 정 총리를 능가할 개연성이 다분하다. 검사 출신 인사라는 점도 흥미를 끄는 대목이다. 정 총리를 비롯해 김 실장, 홍경식 민정수석 등이 검찰 출신이다. 특히 김 실장과 홍 수석, 그리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공안통’으로 통한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검찰 출신인 김 실장을 임명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참여정부에서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역할을 커버해줬다면 박근혜 정부에서의 비서실장은 총괄적으로 보좌하는 역할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허태열 전 비서실장은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개성공단 등 북한 관련 이슈가 끊이지 않으면서 김장수 실장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렸다. 특히 김 실장이 비서실장 역할까지 하는 경향도 짙어 허 전 실장은 허수아비로 전락했다. 여기에 ‘실세 3인방’과의 불화설 등도 제기되면서 청와대를 장악하지 못했다”며 “청와대 기강 등을 잡기 위해 김 실장이 임명된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계속된 ‘인사파동’과 최근 공기업 인사 중단 등 불협화음으로 정부 부처 장악력이 약화된 것에 검찰 출신 카드라는 정공법을 통해 청와대 및 정부부처 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제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는 김 실장이 임명된 이후 청와대가 어떤 스탠스를 취할 것인지에 쏠리고 있다. 그가 기자회견에서 “국정철학 구상이 차질없이 구현되도록 성심 성의껏 보필하겠다”고 발언한 내용을 예의주시하며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김 실장은 검찰 다잡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그는 1988년 검찰총장, 1991년 법무장관을 역임했다. 여기에 홍경식 청와대 민정수석도 채동욱 검찰총장보다 무려 6년이나 윗기수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시절, 권재진 민정수석이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보다 윗기수였지만, 이번처럼 선후배 격차가 크게 나지는 않았다며 김기춘-홍경식-황교안 법무장관 라인이 전진 배치됨으로써 채동욱 검찰총장의 입지가 상당부분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선거법 혐의로 기소하면서 쌓인 감정의 골이 생각보다 깊이 박혀 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는 김 실장이 임명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실제 박 대통령이 “나는 국정원으로부터 선거 과정에서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강조했지만 채 총장이 ‘국정원 정치·선거 개입 특별 수사팀’을 만들어 국정원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인정했다. 박 대통령이 아무리 결백을 주장하더라도 검찰이 국정원 선거법 위반을 인정한 이상 ‘국정원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꼴이 됐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한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결국 검찰 장악은 아니더라도 검찰을 통제할 필요성이 있었고, 법무장관을 지낸 김 실장을 임명하면서 검찰 잡기에 나섰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사정정국으로 갈 공산이 크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내년 지방선거는 박근혜 정부가 중간 평가를 받는 선거다. 그러나 현재 분위기로는 ‘필패론’이 제기됨에 따라 이를 돌파할 카드가 필요하다. 때문에 사정정국으로 유도할 공산이 크다”며 “특히 김 실장은 공안통으로 불린다. 검찰을 통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정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판이 이미 다 그려져 있다. 검찰 출신 인사들이 대거 임명된 것도 사정정국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MB정부는 물론 고위관료, 그리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사정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소문이 이미 파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MB 정부 인사 대폭 물갈이 신호탄
특히 김 실장의 임명은 공기업 물갈이 신호탄일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인사위원장을 겸하는 김 실장과 공공기관장 후보 검증을 맡게 될 청와대 민정수석이 임명됐기 때문이다. 이미 김 실장은 공기업 인사 후보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에 따르면 김 실장은 전임자들이 올렸던 후보들을 다시 검토, 대통령에게 재추천할 계획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특히 대통령이 비리 연루자 등에 대해선 엄정한 판단을 강조했으므로 이런 부분을 살펴보지 않겠나”고 말했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 6월 ‘모피아’(재정경제부+마피아) 독식 및 ‘관치 금융’ 논란이 일자 진행 중이던 공공기관장 인선 절차를 전면 중단했다. 이후 새로운 인선 방식을 도입했지만 한국가스공사 사장 임명을 제외하곤 새로운 인선은 없었다.
일부에선 업무 공백이 가중되고 있는 공공기관장부터 검증이 끝나는 대로 순차 인선에 착수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인선 대상으론 원전 부품 비리에 연루된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해 지난 6월 공공기관 평가에서 저조한 성적을 받은 기관장 등이 우선 거론되고 있다.
한편, 김 실장이 임명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선 내심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당에서 올린 정무수석 인사 등은 무시됐고, 여의도 정치도 끝까지 무시했다는 이유다.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썩 좋은 인선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비서실장이 더 크게 되면 국무총리와 내각의 위상이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지난 5일 자신의 트위터에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 1974년부터 79년까지 유신시절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부장. 유신공안의 추억? 한여름 납량특집 인사? 국정원 국조 물타기 인사?…소름끼치네요”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홍원국무총리/검사. 김기춘신임비서실장/공안검사. 홍경식신임민정수석/공안검사. 황교안법무장관/공안검사… 공안검사 공화국시대!”라고 현 정권을 비판했다.
박형남 기자 7122lov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