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산관광·현대건설 이행보증금 해결에 기대
신용등급·황두연 사건 등 리스크 해결이 우선
현정은 회장은 이번 방북 중 금강산을 방문했을 당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으로부터 구두 친서를 받았다. 그 내용은 고 정몽헌 전 회장에 대한 추모와 현대그룹을 향한 덕담으로 한정돼 있었지만 말 속의 의미는 그 이상을 담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와 관련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여러 가지 전망도 주목을 받고 있지만 재계에선 역시 현대그룹의 재도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주력 사업의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이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현대아산 측도 “올 2월부터 금강산 관광사업 재개 추진 태스크포스를 구성, 정부 승인이 날 경우 두 달 안에 관광을 재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을 만큼 한껏 고무된 상태다.
또 현대그룹은 지난 8일 현대건설 채권단의 80% 이상이 이행보증금 반환에 동의함에 따라 이행보증금 2066억 원과 이자 322억 원 등 총 2388억 원을 확보하게 됐다. 현대그룹은 허공에 날릴 뻔했던 자금을 이번에 되찾으면서 유동성 확보에 숨통을 텄다는 평가다.
현대그룹은 2010년 현대건설 인수전 당시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돼 채권단 주관기관인 외환은행에 이행보증금 2755억 원을 냈다. 그러나 당시 채권단이 인수자금 성격에 문제를 삼으면서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했었다.
여기에 주식투자자들 역시 현대그룹 관련 주들을 사들이며 주가를 높이면서 힘을 실어주고 있다. 현대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의 주가는 두 가지 호재에 따라 가격제한폭까지 급등하기도 했다.
앞으로 예정된 남북 실무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남북 경협주들은 더욱 오를 것이라는 예측도 상당하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현 회장이 직접 움직였고 대북 사업의 상징성이 큰 만큼 현대의 전반적 실적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다”며 “주가가 오르는 분위기도 이를 반영하지 않았겠냐”는 의견을 내비쳤다.
심리적 효과일 뿐 속단 못 한다
다만 일부에선 현대그룹의 내부문제인 신용등급의 하락, 검찰의 황두연 ISMG 대표 압수수색, 급격히 높아진 주가에 따른 위험성 증가 등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는 판단이 나오고 있다.
실제 현대그룹은 올해 정기 신용평가에서도 하락을 막지 못했다. 그룹 주력 계열사의 신용등급에 줄줄이 ‘부정적’ 전망이 붙었다. 현대상선을 비롯, 현대엘리베이터도 마찬가지였다. 그 중에서도 현대상선은 신용평가 3사로부터 ‘A-’ 등급에 ‘부정적’ 전망 통보를 받으며 ‘BBB급’ 기업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다. 더욱이 계열사 간 복잡하게 얽힌 재무 지원 관계는 현대상선을 시작으로 신용위험을 그룹 전체로 확산하게 만든 상태다.
신용평가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북 사업이 단기간 내 신용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면서 “잠시 심리적으로 전망이 밝아 보일 수는 있겠지만 딱 그 정도가 한계인 상황으로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도 사업성과가 명확히 나온 후에야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력사업 시장 자체가 불황이다. 이 불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단순한 기대감이라는 말 이외엔 어떤 속단도 할 수가 없는 상태”라고 덧붙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재 오르고 있는 주가들은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펀더멘털과 상관없이 오르고 있기 때문에 조정이 불가피 하다는 우려가 많다.
송재학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현대상선의 급등세는 펀더멘털이 강화됐다기 보다 현대건설 이행보증금 반환, 남북협상 기대감, 유동성 리스크 완화 등의 재료에 기인한 상승으로 판단된다”며 “현 시점에서는 다른 해운주에 비해 과도하게 오른 부담으로 일시적인 조정이 나타날 전망이다. 영업외수지 적자, 벌크선부문 적자폭 확대 추정 등 수익성 약화가 전망된다”고 밝혔다.
또 외부적으로는 현대그룹의 보이지 않는 실세로 지목되고 있는 황두연 대표의 압수수색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면서 그룹 내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검찰이 비자금 조성 및 현대그룹 경영 부당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황 대표를 본격적으로 수사하는 만큼 현대그룹 경영권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그룹의 강성노조로 유명한 현대증권 노조 역시 황두연 의혹에 관해 계속 주시하고 있어 이번 검찰의 압수수색이 그룹에 가져올 변화를 커다랄 전망이다.
현대증권 노조의 한 관계자는 “황두연의 경영권 개입에 대한 규탄은 항상 강조해오던 사항”이라며 “우리 역시 검찰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한 뒤 대응책을 마련할 생각이다. 분명한 것은 현대그룹이 부당한 인사의 경영권 개입을 확실하게 없애고 깨끗하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결국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일부 전문가들이 대북 사업에 대한 기대감도, 이행보증금 반환도 현대그룹이 직면해 있는 리스크들을 해결해 내기엔 부족하다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가적 관심을 받고 있는 사업에 대한 기대감과 내부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악재가 정면으로 충돌해있는 가운데 어느 쪽의 힘이 더 세게 작용할지가 현대그룹의 흥망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