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무부 “사면 검토 없다” 방침에 의혹만 증폭
롯데·삼양사…친일기업 논란 때마다 휩싸여
‘소문’은 확인이 어렵지만 때로는 파장이 크다. 때문에 잘못된 소문 하나에 큰 타격을 입는 경우가 발생한다. CJ그룹의 검찰수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다음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기업들 소문이 증권가에 퍼지면서 해당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일부 대기업 등은 기업 풍문팀을 운영하면서 민감한 소문을 취합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광복절 관련 이슈들이 주목되면서 또 다시 소문이 형성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매년 광복절마다 재계 인사들의 사면이 이뤄졌던 만큼 이번에도 사면을 위한 물밑접촉설이 퍼졌다.
공교롭게도 A그룹과 B그룹의 총수 구명로비 의혹이 불거진 시점은 지난달 초부터다. 광복절을 한 달 이상 남겨둔 상태에서 이 두 그룹을 둘러싼 소문이 증폭됐다.
특히 A그룹은 지난 설 즈음해서 구명로비를 벌였다는 소문이 있던터라 이번 역시 자연스레 주목받는다. A그룹은 총수 구속 이후 총수 부인 집안의 정치권 인맥을 총동원해 구명로비를 하고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K의원을 통한 자금로비설이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여론이 좋지 못해 시기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광복절을 최대 적기로 생각하고 물밑작업을 벌였고, 청와대 인맥까지 동원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또 다른 그룹 B사 역시 광복절특사를 노리고 현 정부 측근들을 포섭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는 후문이다. B사는 방송계 인맥을 통해 정치권 줄 대기가 한창이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일부 사업을 하면서 정치권 인맥과 검찰인맥을 상당수 확보한 터라 그 인맥을 통해 광복절 사면을 받기 위한 로비를 벌였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두 기업은 매 년 광복절때마다 사면이 되풀이되자 이번에도 은근한 기대를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게다가 검찰의 CJ그룹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검찰이 숨고르기에 들어갔고, 총수 구속으로 기업이 타격을 입었다는 주장이 계속되면서 혹시나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란 게 재계 주변의 전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법무부가 사면을 검토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혹시나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현 정부에서 사면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재계인사에 대한 특별사면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두 건 모두 단순하게 시기상 떠드는 소문이라는 설득이 힘을 얻고 있지만, 그렇다고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이목을 더 끌고 있다.
‘친일기업 리스트’소문도 마찬가지다. 친일명단에 기업명이 오르기라도 하면 광복절사면 구명로비 의혹보다 더 큰 후폭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레 흘러나온다.
소문에 움츠린 재계 광복절 지나가기만 기다려
광복절의 특성상 애국정신이 깃들었고, 최근 전범기 파문으로 일본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어져 있어 일본과 조금이라도 친밀한 기업에 대한 부정여론이 민감하다.
게다가 지난 3월 일본의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반발해 소비자연맹 800여개 업체와 소상공인 600여개 단체가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나선바 있어 이번 소문마저도 달갑지 않다.
당시 불매운동의 대상이 됐던 아사히(맥주)·마일드세븐(담배)·니콘(카메라)·유니클로(의류)·도요타 렉서스 혼다(자동차)·소니(전자제품) 등을 수입·유통하는 업체들은 더욱 당혹스럽다. 특히 아사히맥주는 롯데가 수입·판매하고 있고, 롯데家가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함께 부각되면서 매출 타격이 불가피했다.
삼양사도 자유롭지 못하다. 삼양사의 창업주인 故 김연수 씨는 1922년 형인 김성수가 운영하던 경성직뉴 주식회사 전무이사로 사회에 첫발을 들였다. 이후 1924년 집안 소유의 여러 농장을 관리하기 위해 삼수사(삼양사의 전신)를 설립했다. 1934년 삼양사를 합자회사로 변경해 사장에 취임하며, 재계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1936년부터 1942년까지 군수용 석유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일본 거대 자본들이 중심이 돼 설립한 조선석유주식회사 이사로 활동했다. 1937년 6월 조선실업구락부 감사, 8월 경기도 산업조사회 위원을 지냈다. 같은 해 7월 경성부에 국방헌금 1만5000원, 황군위문금 5000원을 헌납했다.
이로 인해 1939년 4월 조선총독부 조선중앙임금위원회 위원에 위촉됐다. 1939년 6월 에는 경주주재 만주국 명예총영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그의 친일 행적은 끊임없다. 1939년 10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사업자금으로 3만 원을 헌납해 1940년 9월 일본정부가 주는 감수포장 수여하는 등 그 이후에도 지속됐다. 이에 매년 광복절이 되면 친일 논란이 불거질까 가슴을 쓸어내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축구를 빗대면 우리나라 국민은 일본에게 지는 걸 싫어하듯이 일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해당기업을 불신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기업 입장에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재계 일각에선 확인되지 않는 두 건의 소문이 광복절을 전후해 조용히 사정되기를 은근히 기대하면서도 혹시 모를 후폭풍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여전히 그 실체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어 당분간 관련 의혹이 여론의 주목을 받을 전망이기 때문이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