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박쥐같은 ‘지적재산권 보호’ 논리…입지 좁아지나
애플의 삼성 밀어내기 본궤도…로열티 협상도 난항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이하 ITC)는 지난 6월 “애플의 아이폰4와 아이패드2가 삼성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수입금지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ITC의 결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해 논란을 일으켰다.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애플은 나스닥증권시장에서 1.5% 가량 상승하며 4개월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 정부는 오바마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유감이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또 지난 9일 발표된 애플 측이 삼성을 상대로 낸 특허 소송에 대한 ITC의 최종 판정 결과를 앞두고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번 논란의 당사자인 삼성은 “ITC가 특허 침해를 인정한 것 외에 3건이 더 있다”며 “현재 연방순회 항소법원에 항고한 상태”임을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애플이 삼성의 표준 특허를 침해했다는 판정은 부당하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이번 항고심에서도 특허침해가 인정되면 거부권 행사의 명분은 사라지게 된다.
거부권 행사를 두고 미국 정·재계의 로비가 영향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7일 애플이 ITC 문제에 대해 미국 의회와 연방거래위원회(FTC), 법무부를 상대로 로비하기 위해 지난해 초부터 250만 달러(약 28억 원)를 썼다고 보도했다. 또 애플은 로비를 위해 미국 의회의 중량급 전직 보좌진을 영입했고, 이 중에는 미 하원 에너지위원 회의 전문위원과 공화 상원위원 보좌관 출신이 포함 돼 있었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애플은 여전히 구글보다는 워싱턴에서 훨씬 적은 돈을 로비활동에 쓰고 있지만 법무부에 로비의 초점을 맞춘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애플 편들기’가 로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해외 진출 미국 기업들의 미국 내 복귀 정책에 화답한 애플에 대한 ‘보답’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스티븐 잡스의 행보와는 다르게 팀 쿡 현 최고경영자의 ‘미국 내 생산 결정’으로 큰 힘을 얻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이 그동안 보여준 행보와 모순되는 결정 때문에 오히려 삼성이 ‘득’을 보고 애플이 ‘역풍’을 맞을 것이란 예측도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09년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미국의 지적 재산권 보호를 강조해 왔다. 특히 미국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중국을 지목해 강하게 압박하며 시진핑 주석에게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또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을 향해 강력한 특허권 보호 제도를 도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26년 만에 ITC의 결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제무대에서 미국 행정부의 입지가 작아질 수 있는 위기를 만든 셈이다.
‘악재’라도 ‘득’이 더 큰 삼성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의 거부권 행사가 삼성을 좌절시켰지만 결과적으로는 삼성이 득을 봤다는 분석이 큰 힘을 얻고 있다. 국내 업계 뿐 아니라 외신들도 이번 결정을 두고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주의가 작용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USTR(미국 무역대표부)은 거부권 행사를 발표하면서 “삼성은 법원을 통해 특허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덧붙여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거부권을 주도한 USTR의 대표는 오바마 대통령의 로스쿨 동창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삼성이 거부권 행사에 대해 불복할 방법이 없지만 ITC가 ‘수입금지 판정’을 내릴 때 삼성의 상용 특허는 인정하지 않고 표준 특허만 인정한 사실을 이용해 항소는 가능하다”는 평론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삼성 입장에서 항소에 대한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 삼성 측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우리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또 지난 9일(현지시각) ITC가 발표한 삼성의 애플특허 침해 여부 판결에 오바마의 거부권 행사가 영향을 미쳤는가 아닌가를 두고도 시선이 집중 돼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 갤럭시S2, 넥서스10 등은 이미 구형에 해당해 큰 여파가 있진 않겠지만 특허침해 논란이 ‘악재’임에는 분명하다. 때문에 삼성은 ITC의 발표를 앞두고 3가지의 시나리오를 예상해 준비했었다. ▲애플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인정될 경우 ▲특허를 침해했다고 인정됐지만 애플처럼 오바마 행정부의 거부권으로 수입 금지를 당하지 않을 경우 ▲특허를 침해했다고 인정되고 오바마 대통령 승인이 날 경우의 수를 예상해 로열티 관련 합의 협상 진행을 계획한 것이다. 또 이 과정에서 삼성은 애플처럼 ITC의 최종 판정 번복을 기대하기도 했다. ITC의 ‘애플의 삼성전자 특허 침해 인정’ 판결은 지난해 9월 예비 판정을 완전히 뒤집은 결과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지난 9일 ITC가 발표한 삼성의 애플특허 침해 여부를 인정을 두고 사실상 삼성이 '완패'한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다시 한 번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지, 삼성의 수입금지 및 조건부 판매 여파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어 삼성-애플간의 ‘특허전쟁’ 결론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애플은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 발언 후 미국에서 삼성 ‘밀어내기’를 본격화 하고 있다. 삼성제품에 대한 판매금지 신청을 통해 “돈을 받아내는 것보다 일부 제품 판매 금지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을 전망이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