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희생활과학③]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한경희생활과학③]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 박수진 기자
  • 입력 2013-08-07 10:55
  • 승인 2013.08.07 10:55
  • 호수 1005
  • 4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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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홈쇼핑서도 ‘한경희 승부수’ 통했다

한국경제가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스물일곱 번째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국내 가전제품 시장의 역사를 새로 쓴, 생활가전 전문기업인 한경희생활과학이다.

2006년 한경희 대표는 자체브랜드인 HANN을 앞세워 스팀청소기 사업의 정점을 찍었다. 스팀청소기는 더 이상 확장하기 어렵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그것은 한 대표에게 또 하나의 장애물로 다가왔다. 이 정도의 판매 속도라면 1~2년 내로 스팀청소기의 국내 보급률은 50%에 다다를 전망이었고, 포화 시장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내리막길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이에 한 대표는 새로운 시장에 대한 개척이 절실했고, 그 대안으로 미국 시장에 주목했다. 당시 미국은 우리나라 가전제품 시장 규모의 10배에 이르렀다. 소비 인구도 3억 명에 달했다. 또한 독신가구 수가 많다보니 전자제품 수요층이 넓고, 소비 관련 유통 인프라도 잘 구축돼 있었다.

그야말로 달콤한 기회의 땅이었다. 특히 한 대표는 미국에서 알레르기 질환이 급증하면서 카펫 문화가 서서히 원목마루 문화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도 놓칠 수 없는 호재였다. 그간 미국에서 출시된 청소기는 카펫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을 테니, 마루용으로 개발된 HANN 제품이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한 대표는 곧바로 미국 시장을 조사하고 본격적인 진출 준비에 돌입했다.

美 QVC 채널 통해 홍보

1년 후인 2007년, 한 대표는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한 대표가 일차 공략 대상으로 삼은 목표는 홈쇼핑 채널이었다. 국내에서도 홈쇼핑을 통해 높은 판매 성과를 거둔 경험이 있었고, 미국 소비자에겐 낯선 스팀청소기를 알리려면 친절하고 구체적인 설명이 가능한 홈쇼핑 홍보가 유리하다는 분석이었다. 곧장 한 대표는 미국 종합 홈쇼핑 채널인 QVC의 문을 두드렸다. 어차피 쉽지 않을 처음이라면 크고 높은 목표를 잡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관문은 바이어와의 미팅이었다. 품질에는 자신 있었던 한 대표였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좋은 품질을 자랑하는 제품이 하루에도 수백 가지씩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었다. 품질은 기본이여야 했고, 그들을 매혹시킬 또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홈쇼핑 관계자가 가장 매력을 느낄 요소는 무엇일까? 상품성이 아닐까?’ 한 대표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바이어의 관심을 끌 핵심 키포인트를 3단계로 설정했다. 주부로서 산 경험에서 출발한 제품의 특징과 한국 시장에서 이룬 성공, 마지막으로 미국의 생활 방식에 맞춰 업그레이드한 제품 성능이었다.

한 대표는 치밀한 사전조사를 바탕으로 각 단계마다 예상 질문을 수십 개씩 뽑아 답변을 준비했다. 학창 시절 밤새 공부하던 저력을 한껏 발휘해 시나리오 작성에 들어갔다. 주어진 기회는 단 한 번. 이번에 성사시키지 못하면 다음을 기약하기는 어렵다는 절박함에 배가 고픈 줄도, 졸린 줄도 모르고 미팅 준비에 매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QVC의 바이어 메이건(Megan)과의 미팅 날 한 대표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말문을 열었다.

“스팀청소기는 제가 주부로서 겪은 고충에서 출발한 제품입니다. 아무리 걸레질을 해도 바닥의 청결을 유지하기도 힘들고, 무릎을 꿇고 바닥을 훔치는 일도 고역이었죠. 그래서 사용하기도 편리하고 살균력까지 갖춘 스팀청소기를 개발하게 됐습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착안하고 만든 제품인 만큼, 고객친화적인 제품이라고 자신합니다.”

한 대표의 제품 설명이 끝나자 QVC 바이어는 적극적으로 받아 적는 등 관심을 보였다. 1단계는 성공했다고 확신한 한 대표는 차분하게 2단계 시나리오로 설명을 옮겨갔다.

“한국에서 스팀청소기는 한 집 건너 한 집에서 가지고 있을 만큼 가정의 필수품이 됐어요. 홈쇼핑 방송 중 주문 전화가 폭주하는 바람에 시스템이 다운되는 사태까지 벌어졌으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실 수 있겠죠? 사이트에 올라오는 평점도 대부분 별 5개일 만큼 사용 후의 반응도 폭발적입니다.”

한 대표가 해외시장에 진출해보니 한국의 홈쇼핑 인지도는 꽤 높았다. 인구 대비 홈쇼핑 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국 홈쇼핑 마케팅 전략의 탁월함은 업계에 잘 알려져 있었다. 때문에 이 점을 미리 파악한 한 대표는 미국 바이어들을 만날 때면 HANN이 한국 홈쇼핑에서 얼마나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어필했다.

이어 한 대표가 홈쇼핑 소비자를 상대로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하자, QVC 바이어의 눈빛은 훨씬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이제 쐐기를 박을 차례였다.

“현재 미국 내 알레르기 질환이 급증하고 있죠? 우리는 카펫의 진드기와 먼지를 깨끗이 청소할 수 있는 ‘살균 트레이’를 개발했습니다. HANN 스팀 청소기는 타일 바닥을 청소하기 편할 뿐 아니라 침대나 소파의 살균 처리까지 가능해요. 이 청소기에 새롭게 개발한 살균 트레이를 부착하면 카펫까지 살균할 수 있죠.”

순간 QVC 바이어 두 눈이 반짝거렸다. 그녀는 살짝 흥분한 듯 한 대표의 손을 감싸며 이야기를 꺼냈다.

“아주 좋아요! 당신이 제안한 가격 그대로 진행하도록 하죠.”

대성공이었다. 세계 최대 홈쇼핑 채널에서 HANN 제품을 소개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HANN 측에서 제시한 조건이 100% 받아들여졌다. 어느 정도는 협상할 각오를 하고 일부러 유리한 조건을 불렀는데, 그것이 그대로 성사된 것이다. 제품 공급가 및 수수료에 대한 신경전 없이 바로 그 자리에서 계약서에 사인을 하다니, 한 대표 스스로도 믿기 힘든 결과였다.

6분을 위해 8개월간의 전투

이제 소비자의 정면 승부만 남아 있었다. 주어진 방송시간은 단 6분. 이 시간 안에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구매를 이끌어내야 했다. 한국에서 갈고 닦은 노하우가 있긴 했지만, 새로운 무대에서는 새로운 방법과 이야기가 필요한 법. 이에 한 대표는 미국 소비자에게 어필하기 위해 바로 준비에 착수했다. 더욱이 HANN에게 배정된 방송시간은 오후 2시였다. 홈쇼핑 시청률이 가장 낮은 시간대 중 하나였기에 성과를 올리기에는 여러모로 불리했다. 악조건을 타개할 전략을 강구해야만 했다.

단 6분의 방송을 위해 한 대표는 8개월 동안 매달렸다. 한 대표와 직원들 모두 밤낮 가리지 않고 준비에 사활을 걸었다. 한 대표는 마치 차안대를 찬 경주마처럼, 오로지 홈쇼핑에서의 성공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보고 달렸다. 이것저것 재고 따질 겨를이 없었다. 목표를 이루어내는 것, 오직 그것 하나만 생각했다.

미국의 홈쇼핑 방송 규정은 매우 까다로웠다. 엄격한 규정을 다 맞추느니 차라리 돈을 더 들여서 광고를 찍는 편이 빠르고 편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미국은 제품에 관한 과대·허위광고를 극도로 경계한다. 워낙 소송이 일반화돼 있고 작은 규정이라도 어기면 높은 벌금이 매겨지는 관계로 처음부터 문제의 소지는 만들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방송에 나가는 문구 하나도 QVC 법무팀에서 승인을 받아야 했다.

“여러분, 스팀청소기가 진드기는 물론 대장균 같은 박테리아 살균까지 가능하다는 사실 모르셨죠?” 이 멘트 하나를 위해 한 대표는 각종 증빙서류를 제출했다. 정말 살균이 되는지, 살균력은 어느 정도인지를 증명하는 갖가지 실험결과를 모두 넘긴 후에야 간신히 사용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저희 스팀청소기는 한국 시장 점유율이 70%를 넘습니다” 이 대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갤럽 자료까지 준비해야 했다. “패드는 일반 극세사가 아닌 초극세사를 사용해 흡수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 세탁도 용이합니다”라는 대사에서 극세사와 초극세사의 차이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와 함께 원사시험 연구원에서 증빙한 문서까지 요구했다.

너무 깐깐한 요구에 한 대표의 기분이 상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서 나온 광고인 만큼 소비자도 멘트 하나하나를 의심 없이 받아들일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까탈을 부리면 부릴수록 감사히 여길 일이었다.

도무지 끝이 없을 것 같은 복잡한 절차를 거쳐 간신히 대본이 완성됐다. 대본이 나오기까지 보낸 시간만 몇 개월.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HANN 제품의 이미지와 부합하면서 소비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게스트 호스트의 섭외가 남아 있었다. 다행히 QVC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게스트를 어렵게 섭외해 방송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변수를 놓고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했다.

한 대표는 카메라의 위치, 제품을 설명할 때의 게스트 표정, 실제로 제품을 테스트할 때의 몸동작 하나하나까지 점검했다. 작고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이 성공과 실패를 결정할 수도 있기에, 무엇 하나 허술하게 할 수 없었다. 그렇게 8개월의 혹독한 전투 끝에 드디어 다가온 방송 당일,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사람들은 미국 홈쇼핑에서 대박을 터뜨린 한 대표를 두고 운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대표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QVC라는 최대 홈쇼핑 채널을 뚫은 것도, 첫 방송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둔 것 모두 사전에 빈틈없이 시나리오를 짰기에 가능했다. 치밀한 분석과 연구를 거친 덕분이었다. 모두가 행운이라 일컫는 성공의 뒤에는 ‘6분을 위한 8개월의 전투’가 있었다.

현재 HANN은 스팀청소기 점유율 73%, 스팀다리미 점유율 60%로 국내시장 1위를 점하고 있다. 국내에서 제품력을 인정받은 스팀가전을 필두로 미국은 물론 중국, 일본 등 해외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에 HANN은 해외진출 3년만에 1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성과를 달성하는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끝>
<정리=박수진 기자>
<출처=너무 늦은 시작이란 없다 中│한경희 지음│동아일보사>

박수진 기자 soojina602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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