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들어오는 비행기가 착륙하자 인천공항세관 조사총괄과 국제수사1계 직원들이 분주해졌다. 2개월 넘게 진행해 왔던 수사가 막바지에 다다랐다. 김종무 조사총괄과 국제수사1계 팀장은 지난 5월부터 대만 금괴밀수조직을 은밀히 추적해 왔다. 김 팀장은 잠재적 밀수를 근절하고 색출해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분석을 통해 범죄자를 색출해 왔다. 그러던 중 이상한 행태를 보인 대만인들이 눈에 띄었고 동태관찰과 추적조사 끝에 범죄자를 검거했다.
대만인 국제 금괴 밀수조직 16명 검거
5월부터 총 11회 시가 33억원 상당 밀수
대만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국내에 착륙하고 관광객들이 게이트를 빠져나가면서부터 인천공항세관 조사총괄과 국제수사1계 직원들의 눈, 손, 발이 분주해졌다. 금괴밀수범들을 시야에서 놓치는 순간 지난 2개월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금괴밀수범들은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김포공항철도역으로 이동했다. 평소에는 다 같이 움직이던 이들이 이날은 시간을 두고 지하철을 나눠 탔다. 세관직원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기다리고 준비해온 만큼 세관직원들도 두 팀으로 나뉘어 이들을 뒤 쫓기 시작했다.
먼저 출발한 밀수조직 운반책들을 따라 2명의 세관직원들이 출발했고 나머지 세관직원들은 남아있던 운반책들을 주시했다. 세관직원들은 2개월에 걸친 추적조사로 이미 밀수조직들의 지하철 이동경로를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밀수조직 운반책들은 김포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하차했다. 이때까지 김포공항에 있던 운반책들은 출발하지 않은 상태였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하차한 밀수조직 선발대들은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몸 속에 숨겨온 금괴를 빼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때부터 상황은 더욱 급박해졌다. 이들이 몸 속에서 금괴를 빼내기 전에 검거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현장을 잡아야만 이들을 검거할 수 있다.
먼저 출발한 밀수조직을 쫓던 세관직원들은 공항에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상황의 다급함을 알리고 현장에서 밀수조직 운반책을 검거했다. 문제는 김포공항에 남아있던 운반책들이다. 이들이 먼저 출발한 운반책들의 검거소식을 듣는다면 모두 다 도망갈 확률이 높았다.
공항에 있던 나머지 운반책들은 다행히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검거된 운반책들의 소식을 듣지 못한 채 공항철도에 몸을 실었다. 세관직원들은 시간을 끌지 않고 지하철 안에서 이들을 검거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지하철 내에 있는 시민들의 안전이었다. 세관직원들은 운반책들이 있는 지하철 칸으로 이동하며 작전 진행상황을 시민들에게 알렸고 만약을 대비해 도와줄 시민을 섭외했다. 두 명의 시민이 돕겠다고 나섰고 운반책들이 도주할 경우 도주 경로를 막아주기로 했다.
세관직원들은 지하철 내부 앞뒤를 막고 운반책들을 검거했다. 다행히 운반책들은 순순히 검거에 응했고 별다른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인천세관직원들의 2개월에 걸친 금괴밀수조직 검거가 완료됐다.
인천공항세관은 이날 대만에서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면서 금괴를 숨겨 밀수입한 혐의로 대만인 국제 금괴 밀수조직 16명을 검거했다. 이 중 대만에서 금괴를 밀수입한 리모씨 등 9명을 붙잡아 8명을 구속했고 달아난 국내 판매책 화교 샤모씨와 대만에 체류 중인 추모씨 등 7명을 지명수배했다.
이들은 225g짜리 황금괴 5개씩(1125g) 총 1만125g(시가 5억3000만원 상당)을 콘돔에 싸서 항문 속에 은닉한 채 김포국제공항으로 입국했다. 인천세관에 따르면 이들 조직은 지난 5월 2일부터 같은 수법으로 11회에 걸쳐 금괴 270개(60.75㎏) 시가 33억원 상당을 밀수입했다.
이들은 인천공항에서 지난 3월부터 7억원대 다이아 밀수와 금괴 밀수 사건이 계속 적발되는 등 금괴 및 보석류에 대한 인천공항세관의 검사가 강화되자 국내 입국장소를 김포국제공항으로 변경했다. 또 세관의 감시를 벗어나기 위해 신체에 은닉했던 금괴를 빼내는 장소도 공항을 벗어난 시내 지하철역을 이용하는 등 치밀한 범행계획을 세웠다.
대만밀수조직이 밀수를 시도한 금괴는 225g으로 깍두기 모양이다. 국내에서 금 시세가 높아지자 5월부터 본격적으로 금 밀수를 시도했다. 이번에 검거된 밀수조직은 대만에 조직의 본거지를 두고 국내에는 판매책만 둔 조직이다.
10대부터 40대까지,
한 사람당 5개씩
대만 금괴밀수조직을 검거한 김종무 팀장은 35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김 팀장은 “이번 밀수조직검거를 위해 2달 동안 직원 모두 휴일도 반납해가며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치밀하게 준비했다.
이번 밀수조직으로 검거된 운반책들은 국내 여행이 처음이거나 한두 번 정도인 사람들이다. 또 나이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19살짜리고 있었다. 이들은 대만에서 한국여행도 하고 바람도 쐬고 올수 있다는 말로 설득돼 금괴를 항문 속에 넣고 국내로 입국했다. 이렇게 국내에 입국해 금괴를 판매책에게 넘기면 40만원에서 80만원 정도의 운반비를 받는다.
이들이 한국에서 하루동안 머무는 숙소는 판매책이 은평구에 마련한 연립주택 2층이었다. 사글세로 계약한 집으로 운반책들이 공항에서 도착하면 금을 전달받고 하루를 묵은 뒤 다음날 오전 첫 비행기로 대만으로 돌아가는 식이다.
김 팀장은 “사실 항문 속에 금괴를 넣어 밀수하는 방법은 지난 2008년 한국인들이 주로 일본으로 금을 밀수할 때 썼던 방법이다. 당시에는 일본이 국내보다 금값이 비싸 한국인들이 많이 밀수를 했다. 하지만 이제는 국내 금값이 비싸다보니 대만, 홍콩 등에서 국내로 밀수 해오는 경우가 늘고 있는 추세다”라고 밝혔다.
이번에 검거된 대만 밀수조직은 깍두기 크기의 금괴를 항문 속에 다섯 개씩 넣어 밀수해 오다 적발됐다. 처음 이들의 행태를 조사하기 위해 미행할 때만해도 이들이 어디에 금괴를 넣어오는지 확실치는 않았다. 하지만 계속된 미행으로 이들이 공항 도착 후 화장실에 들르는 점을 수상히 여기고 뒤 따라 들어가 확인을 해 보니 쓰레기통에서 피가 묻은 콘돔, 절연테이프 등이 발견했다. 금괴를 항문 속에 넣기 전에 절연테이프 또는 콘돔으로 씌운 뒤 윤활제를 발라 집어 넣은 것이다.
또 운반책들이 항문 속에 금괴를 넣고 오다보니 움직이기가 불편했고 자연스럽게 에스컬레이터가 가까운 지하철 칸을 탑승했다.
구두, 책, 여행용 가방 등도 밀수에 이용
대만밀수범들은 금괴를 항문 속에 넣고 들어왔지만 과거에는 금괴를 다양한 방법으로 밀수했다. 가장 많이 사용된 방법 중 하나가 신발 밑창에 금괴 1kg을 넣어 오는 방법이다. 보통 여행을 다녀오는 아줌마들이 많이 사용하던 방법이다. 또 성경책 같이 두꺼운 책 속을 찢어내고 그 안에 금괴를 넣어오는 경우도 많다.
여행용 가방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여행용 가방의 바퀴, 손잡이 등에 금괴를 넣어오거나 가방 안에 넣는 옷걸이를 금으로 만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머리카락이 긴 경우에는 파마할 때 쓰는 파마롤이나 기타 액세서리를 금으로 만들어 들어오기도 한다.
이밖에 밀수에 항공기 직원이나 용역 직원이 연루됐을 경우에는 항공기 좌석 밑에 금괴를 넣어오는 경우도 있다.
인천공항세관에서 이번에 대만밀수조직 검거를 통해 압수한 금괴의 양은 최근 들어 최고치다. 인천공항세관은 지난해 5건 1.9kg을 압수했으며 올해 6월까지 4건 5.6kg을 압수했다. 밀수입은 증가추세다. 하지만 밀수출은 감소추세다. 2010년에는 6건 57kg이 밀수출됐으나 2011년 5건 11kg으로 줄었고 2012년 2.1kg으로 더욱더 줄었다.
뱀, 전갈, 비아그라,
주류는 꾸준히 밀수
금괴 외에 국내로 밀수입되는 품목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김 팀장은 “과거에 비해 밀수품 되는 양과 품목이 많이 줄었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상승하고 국내 대부분의 제품들이 세계적으로도 품질과 성능을 인정받으면서 한국인에 의한 밀수가 자연스럽게 줄었다. 반면 외국인들에 의한 밀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밀수품은 비아그라, 뱀, 전갈 등의 식의약품이 있다. 비아그라의 경우 대부분 짝퉁이 밀수되고 있다. 최근에는 인육캡슐, 개고기캡슐이 늘고 있다. 또 대마를 이용한 쿠키, 강정, 버터도 있으며 주류는 오랫동안 밀수 돼온 품목이다. 특이한 밀수품으로는 팬티폭탄, 액체폭탄 등이 있다.
한편 인천공항세관 분석실은 발기부전 치료제 표준품 36종에 포함된 성분과 비교해 인체에 해로운 가짜 제품을 판별하는 동시분석법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동시분석법은 안전성이 검증된 발기부전 치료제 5종과 검증되지 않은 유사물질 31종의 각 성분을 일정 농도로 혼합해 한꺼번에 분석하는 방식으로 1∼2회 만에 모든 성분 확인이 가능하다.
기존에는 표준품 36종의 성분을 하나씩 일일이 확인하는 순차분석법을 써서 시간이 오래 걸렸고 차이가 미묘한 성분을 구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치료제 성분을 확인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대 27시간에서 2시간으로 단축되며 분석 정확도도 높아질 전망이다. 인천공항세관 관계자는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는 대부분 여러 성분이 혼합된데다 성분 함유량이 불균일해 심혈관계 질환자가 복용하면 심근경색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동시분석법을 활용하면 앞으로 불법 의약품 반입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