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육 받지 않은 사람에게 수술 칼 쥐어주는 것과 마찬가지
업무 투입 전 관련 업무 교육 진행… 일선서 문제 되지 않을 것
지난달 27일 전국 17개 시.도, 249개 시험장에서 실시된 9급 공무원 공개채용 필기시험에는 20만4000여 명이 몰려 경쟁률 74.8대 1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4만여 명이 늘어난 수치로 역대 최대다. 전문가들은 급증한 응시인원이 올해부터 고등학교 졸업자의 공직 진출 확대를 위해 고등학교 교과목인 사회, 과학, 수학을 선택과목에 추가한 것에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전문성 부족 우려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최모(27)씨는 고졸채용 확대 및 유능한 인재 확보를 위한 제도 개혁은 찬성하지만 직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과목변경으로 채용한 것은 직업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씨는 “지금 일선 현장에서는 법에 대한 무지함으로 인해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경찰이 법을 모르는 상황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목개편으로 인해 ‘경찰’이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닌 ‘공무원’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몰릴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수험생 김모(29)씨는 “경찰이 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법을 잘 아는 시민에게 오히려 비웃음 당할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모든 일은 그 분야에 맞게 전문화 된 사람이 근무해야 하는 것인데 국가가 그것을 모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어 “국민의 옆에서 법을 제일 먼저 집행하는 것이 경찰이다”며 “직업의 특수성에 맞게 형법과 형사소송법은 필수과목으로 조정해야 한다. 경찰 조직의 앞날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우려는 행정공무원 수험생들도 마찬가지다.
세무직을 준비하고 있는 김모(24·여)씨는 “사회, 과학 등의 선택과목 추가로 인해 직렬구분이 무의미해졌다”며 “일반 행정직은 몰라도 전문계열까지 선택과목으로 돌리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전문지식 없이 업무처리를 어떻게 하겠나. 합격 이후 실무현장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수험생 이모(26·여)씨는 “사회, 과학을 선택해서 합격하면 행정학 관련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실무가 시작되는 것”이라며 “실무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우려는 현직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9급 공무원 A씨는 “9급 공무원이 단순 민원 업무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 들어와서 업무를 시작하면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 나도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데 수능 공부하듯 공부한 사람들이 실무를 맡았을 때 당혹감을 생각하면 안타까울 뿐이다”고 말했다.
순경 B씨는 “경찰 준비를 위해 각종 특별법까지 외웠는데 요즘 세상은 참 편한 것 같다”며 “새로 들어오는 친구들은 현장 투입 시 업무가 느려 고생을 많이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 의견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이윤호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MB정권 때 고졸자 취업 확대를 위해 시험과목이 수능과목으로 바뀌었는데 과목을 변경한다고 해서 고졸자에게 취업기회가 많이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시험 과목을 상식화시킴으로서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경찰관을 상식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만들어 버린다면 경찰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트릴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국민의 자유와 신체를 제압할 수 있는 권력을 행사하는데 이 권력이 어떠한 것이고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률적 지식이 없다면 국민의 안전과 인권이 침해될 수 있고 결국에는 경찰관의 자질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는 의대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사람에게 수술 칼을 쥐어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법을 모른다면 그것은 흉기나 다름없다. 적어도 헌법, 형법, 형사소성법 등 경찰에 대한 법률적 지식을 검증하는 시험과목이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 후 실무 투입
이에 대해 경찰청은 충분한 교육 후 실무에 투입하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선택과목 추가로 인해 고교 과목으로만 시험 봐서 합격할 수 있다. 그러나 일선 현장에 그대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8개월의 기간 동안 교육을 받는다”며 “그 기간 동안 관련 법 교육을 시키고 일종의 인증시험을 봐서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 한 뒤 일선으로 내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우려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법률적 지식 부족으로 인한 문제가 예상되기 때문에 내부에서도 그에 대한 대책을 검토 하고 있다”며 “고교 과목으로만 들어온 사람들은 교육기간 동안 형법, 형소법을 택한 사람들보다 법률 과목을 강화할 것이고 해당 과목에 대한 시험 결과를 통해 임용시기를 조절하거나, 재교육을 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법률 지식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지 않는다면 일선 현장으로 내보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안전행정부 역시 9급 공무원들의 업무는 힘들지 않고, 실무 투입 전 교육을 이수하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작년에 법을 개정하면서 내부적으로 (선택과목 추가로 인해)전문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공무원이 됐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9급 공무원들의 업무는 힘들지 않다. 또 기존에 담당하던 직원들도 있고, 대부분 과 서무 업무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우려하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가장 우려되는 세무직의 경우 실무 투입 전 세무공무원교육원에서 해당 업무에 관한 교육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또 공무원 시험이 학력과 상관없이 시험 성적만으로 선발하는 ‘공평한 시험’임에도 불구하고 고졸 채용 확대를 위한 조치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에 대해서는 법률 과목들로 인해 근본적으로 학력에 대한 제한을 가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안행부 관계자는 “9급 시험의 선택과목들은 주로 법률과목이다. 고졸자들은 시험을 보기 위해 학원을 다니거나 독학으로 수년을 노력 해야만 했다. 고졸학력자가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비율은 0.3%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근본적으로 학력에 대한 제한을 가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옛날부터 있었다. 그 문제가 MB정부 때 표면화가 되면서 결국은 제도화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올해 사회과목 난이도가 높았다고 한다. 선택과목에 고등학교 과정 과목을 넣었다고 해서 경쟁시험을 퇴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구조 자체가 경쟁구조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