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수진 기자]국내 경기 침체가 장기화 되면서 실적악화를 겪고 있는 증권사들이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통해 사업부를 줄이는 것은 물론, 실적이 부진한 점포는 통폐합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고통 분담 차원에서 임직원들의 임금 삭감마저 진행되고 있다. 또한 일부 증권사에서는 구조조정에 능한 전략통 인사들을 영입해 업계에서는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동양 정진석, 우리 김원규, 한화 주진형 주목
지점폐쇄에 연봉삭감까지…대대적 조직 재정비
8월 무더위가 한창이지만 여의도 증권가는 싸늘기만 하다. 주가지수가 2년여 동안 1800~ 2000선을 오가면서 주식거래는 떨어졌고, 투자 비중을 늘려온 채권은 미국의 양적 완화(채권을 사들여 돈을 푸는 것) 축소 변수가 불거지면서 막대한 손실을 안겨줄 시한폭탄으로 변했다.
지난달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 증권사 62곳이 보유한 전체 채권은 130조 원 규모에 이른다. 이는 증권사 총 자산의 52%에 해당하는 비율로 은행의 채권 보유 비중이 약 10%인 것과 비교할 때 과도하게 높다.
증권사들의 채권 보유량은 지난해 1분기 105조9000억 원에서 3분기 120조5000억 원, 올해 1분기 134조 원으로 급격히 늘었다. 하지만 미국 양적 완화가 진행되면서 채권 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어 더 큰 손실이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자 각 증권사들은 구조조정은 물론 인사 감원, 지점 축소, 감봉 등 자구책 마련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 골몰
동양증권은 그룹 차원에서 진행되는 구조조정에 발맞춰 대대적으로 조직 재정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동양그룹은 경기침체의 여파로 실적이 계속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유동성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더욱이 정진석 동양증권 CEO가 그룹의 전략기획본부장을 지낸 대표적인 ‘전략통’으로 꼽히는 만큼 동양그룹이 금융 계열사인 동양증권에 대한 구조조정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한화투자증권도 지난해부터 진행된 구조조정 한파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24일 ‘구조조정 전문가’로 알려진 주진형 전 우리투자증권 전무가 대표이사로 내정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해 리테일 적자가 750억 원으로 전체 영업적자를 넘길 만큼 악화된 상황이고, 이를 돌파할 적임자로 주 대표가 내정돼 구조조정 설에 힘이 실리고 있다.
매각을 앞둔 우리투자증권은 지난달 12일 김원규 사장이 공식 취임한 이후 사흘 만에 전체 임원의 30%를 감축했다. 특히 그룹 내부에서는 김 사장이 우리투자증권의 전신인 LG증권 시절부터 29년을 한 회사에 근무한 내부 출신인 만큼, 매각을 위한 몸만들기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다. 이는 신망이 두터운 만큼 큰 갈등 없이 조직을 안정화하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삼성증권은 지난달 중순부터 과장 및 대리급 직원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100여명 이상을 삼성그룹 내 금융계열사와 삼성전자 마케팅 분야 등으로 전환·배치했다. 영업점도 10여 곳을 없애거나 규모를 대폭 줄였다.
현대증권 역시 다음 달 말까지 중복되거나 실적이 악화된 지점 10개를 폐쇄하고 통폐합할 방침이다. 업황 부진에 노조와 갈등도 겪고 있어 실적 개선이 최대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윤경은 현대증권 대표는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밝혔지만 지난달에만 250억 원의 적자를 내 본격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다.
KDB대우증권은 조직 축소와 임원을 줄이는 것을 골자로한 조직개편안을 내놨다. 6부문 31본부에서 5부문 1총괄 29본부로 조직을 축소했고, 임원보직이 기존 37개에서 35개로 줄었다.
앞서 증권업계에 따르면 대우증권은 지난달 22일 임원회의를 가진 뒤 등기임원인 김기범 사장과 윤승한 상근감사를 제외한 부사장 이하 30여명의 집행임원들로부터 일괄 사표를 받았다. 트레이딩·자산관리(WM)·투자은행(IB)·세일즈·글로벌·그룹시너지 등 6개 사업부문장을 맡고 있는 부사장급 7명(수석부사장 1명 포함)은 물론이고 각 사업부문 산하 30개 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사·상무·전무 전원에게도 사표를 받았다.
KDB대우증권 관계자는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조직의 효율성 제고와 영업경쟁력 강화 및 상품마케팅 전문성 강화를 위해 조직개편을 시행했다”고 밝혔다.
사실 매년 하반기 대형증권사들은 사업전략에 따라 일부 조직을 변경하는 조직개편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KDB대우증권처럼 조직개편 직전 임원들이 일괄 사표를 제출하고, 사업부 비중이 큰 IB부문 대표가 경질되자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고통분담 차원의 임원들 임금 삭감도 줄을 잇고 있다.
SK증권은 임원들의 임금을 5% 삭감하는 이사회를 결의했고, NH농협증권도 지난 1일부터 부장급 이상 임원들의 임금 10%를 삭감했다. 대신증권도 올해 1월부터 12월까지 임원들 연봉 30%를 삭감하고 지점 직원은 인센티브를 줄이는 방안을 시행 중이다.
금융권도 허리 졸라매기 한창
이러한 상황은 다른 금융업종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실점포를 없애고 임금 축소는 물론, 심지어 채용까지 줄이는 등 비용절감을 위한 허리 졸라매기가 한창이다.
하나금융은 지난달 18일 중국 웨이하이에서 열린 하나금융지주 이사회에서 김정태 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자들이 모여 하반기 경영전략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김 회장을 비롯한 등기임원들이 급여 반납을 이사회에 보고했다. 김 회장의 급여 30%, 등기임원인에 최홍식 사장, 김종준 하나은행장, 윤용로 외환은행장의 급여 20%를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하반기 추가로 22개 점포를 정리하겠다는 계획을 보고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부실 점포에 대한 정리를 통한 비용절감 카드를 꺼내들었다”면서 “금융권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방안으로 앞으로 수익성 악화를 대비해 비용을 계속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한금융 역시 임원 성과보수 경영 체제에 대한 개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임원 보수가 적은 우리금융은 성과 보수 개편보다 먼저 은행 본점 임원들의 업무추진비를 20% 삭감했다. KB금융도 평가보상위원회에서 회장 급여를 조정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타 금융지주 임원들의 급여 반납 분위기라면 KB금융도 조만간 경영진의 급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박수진 기자 soojina602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