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재계 순위 12위인 두산그룹의 박용만 회장(59)이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 차기 회장으로 추대됐다. 이로써 두산家는 아버지와 형에 이어 동생까지 3부자 대한상의 회장으로 배출하게 됐다. 이에 따라 재계는 그동안 두산그룹의 혁신을 주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대중과의 소통을 통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아온 박 회장이 보수적 성향이 강한 대한상의에 어떤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지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분식회계, 방산비리, 공공자금 횡령 등의 의혹을 받은 바 있고, 최근 금산분리 규정 위반으로 철퇴를 맞은 두산의 젊은 회장이 과연 재계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친 박두병-형 박용성 이은 인연…재계 기대감
경제민주화 과제 놓고 불안한 시선도 존재
지난달 29일 대한상의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을 만장일치로 대한상의 회장에 추대한다고 밝혔다. 박 회장의 대한상의 회장 추대는 일찌감치 예견된 결과다. 손경식 전 대한상의 회장이 지난달 9일 CJ그룹 경영 전념을 이유로 사임한 뒤 재계에서는 차기 회장 1순위로 박용만 회장을 손꼽아 왔기 때문이다. IMF 위기 시절 두산그룹의 구조조정을 주도하며 경영 능력을 검증받은 데다 신망까지 두터워 재계 전반을 아울러야 하는 대한상의 수장의 적임자라는 이유에서다.
또 선대부터 이어져 온 두산그룹과 대한상의의 인연도 큰 작용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 회장의 부친인 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과 형인 박용성(3남) 대한체육회 명예회장도 대한상의 회장직에 취임한 바 있다.
박 회장은 오너 기업인이지만 외환은행 사원과 두산건설 사원부터 시작했다. 그는 두산건설, 두산음료, 동양맥주, ㈜두산,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두루 거치며 IMF 외환위기 직전까지 이어진 그룹 구조조정을 선두에서 지휘하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회장직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잡음도 많이 발생했다.
두산은 故 박두병 초대회장 사후 아들들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경영을 맡으며 형제 경영으로 모범을 보였지만 2005년 그의 형 박용오(차남)의 그룹 비리 투서 등으로 두산 판 ‘형제의 난’을 겪었다. 당시 부회장이었던 박 회장은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등에 관여한 혐의로 2007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 원의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재계의 모범이 됐던 두산그룹이 진흙탕 싸움으로 도덕성 타격을 입은 것이다.
이후 2010년에는 방산비리, 공공자금 횡령 등의 의혹을 받기도 했다. 당시 박 회장은 두산인프라코어의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2009년 해군 고속정 엔진 납품 비리 및 국책연구비 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최근에는 금융자회사 소유 규정을 어겨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56억 원의 과징금 철퇴를 맞기도 했다.
지난달 26일 공정위는 “두산그룹의 일반 지주회사인 ㈜두산과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등의 계열사들은 금융사인 두산캐피탈 주식을 소유하고, 두산건설 및 두산캐피탈도 증손회사 외 계열사 주식을 보유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56억3000만 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두 차례의 유예기간을 줬지만 두산그룹 계열사들은 유예기간이 지나도록 금융 지분 정리를 마무리하지 않아 이 같은 처분을 내린 것.
때문에 일각에서는 박 회장이 회장 취임 후 SNS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며 소탈한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곱게만 보지 못하겠다”는 시선도 있다. SNS 상에서의 인간미 넘치는 회장님의 모습이 아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정적인 오너의 모습이 교차하기 때문에 대한상의 회장직에 대한 염려도 전혀 없을 수는 없다.
또 대한상의 회장으로서 박 회장은 대내외적인 경기침체와 경제민주화 바람으로 기업 활동이 위축된 현재 경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최근 대한상의는 경제민주화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면서 정치권과 타협점을 이끌어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어 젊은 회장에 대한 불안의 시선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박용만 회장이 보여준 긍정적인 행보에 대한 기대감도 높게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최근 조사된 그룹 총수에 대한 선호도 조사에서 박 회장은 상위권을 기록할 만큼 그동안 구축해온 이미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크다.
그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통 경영을 추구하며 ‘사람이 미래다’라는 두산 광고 카피를 직접 만든 장본인이며 사람 중심의 경영 전략을 펼쳐왔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소통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현재 대한상의 수장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인물로 박용만 회장을 꼽은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의 소통 경영 추구가 드러나는 일화도 다양하다. 직원들에게 외상 냉면 값을 빌리고, 출근하기 싫어하는 직원에게 차를 보내주겠다는 내용의 SNS 글은 세간의 화제가 됐다. 또 평소 소주와 막걸리를 즐기고 젊은 사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저녁 자리를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직원들을 위한 음악콘서트를 마련해 자신이 직접 사회를 맡고, 매년 대학 기업설명회에 참석해 인재를 구하는 ‘최고경영자’의 모습은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두산이 내부적으로 상무 전무 부사장 등 직급을 없애고, 점수에 따라 일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우는 인사 제도 폐지도 박 회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도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박용만 회장과 함께 거론된 대성 김영대 회장, 동일방직 서민석 회장이 70대가 넘는데, 한번 회장이 되면 최소 5~6년 하는 게 관례기 때문에 계속하기에는 부담스럽다는 의견을 피력했다”면서 “50대의 젊은 회장이지만 박 회장이 우리나라 경제계를 대표하는 기업을 맡고 있다는 점, 상의에 대한 박 회장의 관심과 의지 등을 고려한 결과 그가 회장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회장은 부회장단 16명 중 회장단 회의 참석률이 늘 상위권에 속했다.
장기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재계에 ‘M&A의 귀재’, ‘Mr. M&A’, ‘구조조정 전문가’란 별명이 붙어 있는 박 회장이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