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세상은 전직 대통령 두 사람과 관련한 ‘찾기’ 정국으로 소용돌이 치고 있다. 정치권은 감쪽같이 사라진 노무현의 NLL 발언 녹음기록물을 놓고 여 야 공방이 치열하다. 국가기록원에 기록물이 애초부터 없었다는 쪽으로 사실상 결론이 나면서 '엄정수사'와 국정원의 녹음 파일 공개 여부가 또 한 차례의 격랑을 일으키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담록 폐기 지시’가 의혹 차원에서 사실로 드러나는 게 아니냐는 긴장감이 고조돼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이와 동시에 또 국민 시선이 집중되는 곳이 이 나라 대통령 지냈다는 사람의 비밀 통로 속 보물섬(?) 찾기다. 박근혜 정부 문 열고 첫 여름은 긴 장마, 폭염의 이중고 속에 또한 이 두 가지의 메가톤급 사안으로 금방 터져 버릴 것처럼 펄펄 끓고 있다. 미쳐 예상치 못한 검찰의 전 씨 일가 압수 수색전이 펼쳐진 이틀 후 살벌한 분위기에 서울 연희동 본집을 찾은 그 집 둘째 아들 전재용 씨의 표정은 언론에 환한 웃음을 나타낼 정도로 여유만만 해보였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의 자신감마저 비춰졌다. 알고 보니 충분히 그럴만 했다. 검찰이 크게 두 가지의 실책을 저질렀다. 그 하나는 쥐가 들락거리는 구멍을 안다고 해서 고양이를 풀면 쥐를 숨차게 만들고 질리게 할 수는 있어도 구멍 깊숙이 통로를 모르면 놓치기가 여반장이다.
보다 치밀했어야 옳았다. 1987년 대통령 퇴임 후의 사저 리모델링에 동원됐던 인부들을 통해 내부 구조를 정확히 파악해서 요소요소를 전광석화처럼 덮쳤다면 상황이 아주 다를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크다. 사저 압수 수색이 지나간 뒤 일부 언론에는 사저 보수공사 때 이순자씨 옷 방 벽을 깨 비밀 방을 따로 만들고 출입문을 벽처럼 위장했다는 당시 작업인부의 증언이 실렸다. 뒤에 다시 방을 확인하니 이미 빈방이었다고 했다.
또 하나의 중대한 실책은 전 씨 일가의 미술품 구매 중개 등 ‘비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진 ‘전(Jun)갤러리’를 운영했던 전호범 씨 동향을 안중에도 넣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가 전두환 씨 일가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검찰의 첫 압수수색 직후 해외로 빠져나간 사실이 본인 미국 도착 며칠 후 확인됐다. 도피성 출국인지, 정당한 목적의 출국인지는 그의 조기 귀국 여부에 달렸다. 아직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전 씨 일가 비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된 사람의 출국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검찰 책임론을 비켜갈 수 없게 됐다.
전두환 씨가 얼마나 비밀스러운 곳에 보물섬처럼 만들어 재산을 잘 갈무리 해두었으면 29만원짜리 통장을 내놓고 이게 전 재산이라고 자신감 넘치게 흔들어 댔을까 말이다. 검찰이 이번에도 뚜렷하게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국민 실망과 냉소가 극에 이를 전망이다. 보통사람들은 법치와 정의를 짓밟고 우롱한 전 씨가 전직 대통령으로 버젓이 행세하는 것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을뿐더러 불의로 쌓은 재산으로 그 일가가 누대에 이르도록 떵떵거리고 사는 불공정을 용납 못한다.
이런 점에서 “역대 정부는 뭐했느냐”는 박근혜 대통령의 일갈에 시퍼런 서슬이 느껴졌다. 압류집행현장을 지켜보면서 “전직 대통령인데 이런 모습만 보이게 돼 국민들에게 면목이 없다”고 말한 전두환 씨가 스스로 선택할 일이 분명하게 있어 보인다. 나라 대통령을 지내고 팔십 넘게 살아온 국가 원로의 생각이 아등바등 늙은 필부의 마음가짐과 같을 수는 없을 노릇이다.
고재구 회장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