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이지혜 기자] “이런 법은 없지요. 아무리 땅 속에서 흐른다고 해도 우리 집 밑으로 지나가는데 이에 대한 설명 한번 없다가 공사 시작하고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반대하니 그제야 공청회를 열고 무조건 공사 진행해야 한다고 우기는데 이건 잘못된 겁니다.”
삼성 에버랜드 고압 송전선 매설 공사를 두고 인근 마을주민들이 뿔났다. 154㎸가 흐르는 전기선이 마을 정중앙을 관통하는데 이에 대한 주민설명회 한 번 없었기 때문이다.
공사가 시작된 후에야 그것이 송전로 매설공사라는 것을 알게 된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유운1리 185가구의 주민들은 ‘반대’를 외치고 나섰다. 구청에 민원을 제기해 잠시 공사가 중단됐으나 이듬해 봄 다시 재기되자 주민들은 몸싸움을 감수하며 공사 진행을 막고 있는 상황이다. 마을 곳곳에는 ‘주민 동의 없이 지중화 고압선을 매설하는 삼성 에버랜드는 각성하라’, ‘삼성 이건희 회장은 가면을 벗어라’ 등의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주민 무시하는 처사” vs “합법적 절차 거쳤다”
골프장 들어서도 수십억… 보상금 10억 원 요구
삼성에버랜드는 지난 2011년 한국전력 용인지사와 양해각서를 채결하고 용인 모현변전소에서 에버랜드변전소간 5.23km구간에 154㎸급 고압 지중송전로를 개설하기로 결정했다.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조치였다.
한전 약관상 전력 소비가 많은 기업은 수요자 부담 원칙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번 공사비 전액을 에버랜드가 부담해야 한다.
이에 에버랜드는 같은 해 8월 도로점용, 국유재산 사용, 하천점용 허가를 받고 11월 공사를 시작했다. 현재는 총 연장 구간 5011m중 미설치 연장구간 80m를 제외한 4931m의 공사가 완료(공정률 98%)된 상태다.
주민 “전자파 안고 살아야”
80m의 미설치 구간은 바로 에버랜드 인근 마을인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유운1리 구간이다. 이 마을은 185가구가 모여 살고 있는 자연부락이다.
이 마을의 주민들은 송전선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154㎸ 고압전선이 마을 도로와 하천을 따라 500여m 가량을 통과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신들의 발밑으로 수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고 이에 따라 평생 전자파를 안고 살게 된 마을 주민들은 이에 대한 에버랜드 측의 주민공청회 한 번 없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에버랜드에서 무작정 전기선을 땅에 집어넣는다는데 이는 합법적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이런 위험한 공사를 주민설명회 한 번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한다고 하니 우리는 수용할 수가 없습니다.”
유운1리 주민들은 마을 중앙으로 위험시설이 통과한다며 해당관청(처인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2012년 9월 공사가 중지됐다. 구청에서는 안전진단기관의 안전성 검토와 주민공청회를 열어 그 결과를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에버랜드 측은 전문 외부기관을 통해 전자파 유해성 실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전자파 피해는 없다는 결과가 나왔고 이 내용을 토대로 주민공청회를 열어 마을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유운1리 주민들은 공사 철회와 노선 변경을 요구하고 나섰다.
유운1리 이장 A씨는 “에버랜드라면 충분히 우리 마을을 지나지 않고 우회해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힘을 이용해서 인위적으로 밀어 붙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 같은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마을 곳곳에 현수막을 걸고 인터넷에 글을 올렸으며, 시. 구청은 물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게도 탄원서를 보냈다고 했다. 그러나 A씨의 힘없는 외침은 아무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A씨는 “아무리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안이라고 해도 일방적으로 설계지도를 가져와서 (우리에게)통보를 하니 수용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 했다.
양해를 구하는 에버랜드 측에 마을 주민들은 “우리는 이 마을을 고향으로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이다. 제발 송전선을 마을 밖으로 우회해 달라”고 여러 차례에 걸쳐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에버랜드 측은 “그렇게 한다면 38억 원이 더 든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 후 에버랜드 측이 다시 공사를 재개하자 지난 7월 9일 마을 주민이 공사 중인 인부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절정에 치닫고 있다.
마을 관계자는 “우리는 힘없는 시골사람들이고 에버랜드는 막강한 대기업”이라며 “상당히 어려움이 많지만 몸으로라도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에버랜드 측에서는 타협안으로 마을에 발전기금 1억여 원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마을 측은 이런 에버랜드가 ‘괘씸하다’는 입장이다.
“공사 준비 다 해놓고 우리가 촌놈이라고 발전기금 1억 원만 주겠다며 위압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돈을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송전선을 마을 밖으로 우회하라고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압적으로 나오니 너무 괘씸해요. 에버랜드가 주민을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니 속상하기까지 합니다.”
마을 측은 에버랜드에 보상액수로 10억 원을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시골에 골프장이 들어와도 수십억 원을 보상해 준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제안을 에버랜드 측은 거절했다.
양 측의 입장차이는 이렇듯 분명하며, 공사가 진행되면 마을 주민들이 몰려가 강제로 막아서기 때문에 공사 진전도 없는 상황이다.
거기에 마을 측은 에버랜드에서 실시한 전자파 유해성 실험 결과 역시 믿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마을 주민은 “전자파 유해성 실험도 주민과 함께 진행한 것도 아니고, 우리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에버랜드가 제시한 수치만 보고 진위여부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마을 주민은 “수만 볼트가 흐르는 전기선이 발밑으로 흐르는데 전자파 문제가 없다는 거짓말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적으론 아무 책임 없다”
반면 에버랜드 측은 모든 허가를 받아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으며, 주민간담회를 통해 마을 주민들에게 전자파 피해 등 우려하는 사항이 없다는 것을 수치로 제시했다는 입장이다.
또 지중화 법적 규정인 1.2m보다 2배 이상 깊은 2~3m에 케이블을 묻고 있으며, 법적으로는 아무 책임 없지만 인근 주민들이 공사에 따른 우려를 제기하는 만큼 마을발전기금 등의 보상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공사가 시작되던 지난해 9월에 마을에서 공청회와 주민설명회를 모두 실시했다”며 “전자파 검사 결과 아무 문제가 없다고 나와 공사를 재개한 것이다. 주민에게 피해가 간다면 관공서에서 우리에게 공사 재개를 허락해 줬겠느냐”고 반문했다.
에버랜드 측은 지난해 9월 전문회사에 의뢰해 마을 복지회관 앞 도로, 철탑 주변, 지중화 선로 공사 주변 등 전자파 검사를 모두 실시했다. 그 결과 마을 주변과 송전선 공사 현장 주변의 전자파 수치는 기준치 보다 낮게 나왔다고 설명했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조사 결과에 대한 주민들의 의문에 대해 “전문가가 측정한 결과”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치도 믿을 수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또한 에버랜드 측은 마을에서 보상으로 마을발전기금 10억 원을 제시한 것에 대해서는 “난감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정상적으로 법적 문제없이 공사를 진행함에도 불구하고 마을 주민들이 계속적으로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적법한 절차와 (전자파)조사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현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측에서는 문제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마을 측에서 10억 원을 요구하니 난감하다”고 말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송전선 매설공사는 이미 지난 봄에 완료됐어야 한다. 그러나 주민들의 지속적인 반대로 인해 유운리를 지나치는 80m구간은 전혀 진전이 없는 상태다.
에버랜드 측은 지속적으로 마을 주민들을 만나 ‘송전선이 기준보다 더 깊은 땅속으로 매설하기 때문에 안전에 문제가 없고’, ‘발전기금 등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며 설득을 하고 있는 중이다.
“(유운리는) 같은 동네 이웃 같은 분들입니다. 반대가 워낙 커져 공사가 지연되고 있지만 (에버랜드 측은) 법적인 부분과 주민 설명, 보상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하는데 노력할 것입니다”
한편 이 문제에 대해 용인시 관계자는 “위법사항이 전혀 없다”며 “도로점용, 하천점용 및 국유재산 사용수익허가 사항은 적법한 사항으로 허가 취소 및 공사중지는 불가하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