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11월 5일 충북 제천에서 4남4녀 중 7번째로 태어난 김종학 PD는 경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1977년 MBC에 입사했다. 첫 작품은 범죄 추리극으로 유명했던 <수사반장>(1981)이다.
<광대가>, <다산 정약용>, <고산자 김정호>(1983), <인간의 문>, <조선 총독부>, <동토의 왕국>, <일곱송이 장미>(1984), <영웅시대>(1985), <북으로 간 여배우>, <회천문>, <남한산성> (1986) 등의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81년 ‘수사반장’으로 데뷔 ‘신의’ 찍으면서 내리막길
1987년 <퇴역전선>에서 ‘애증의 인연’ 송지나 작가와 처음으로 만났다.
그리고 1992년 제작기간 2년4개월, 출연자 2만1000명, 평균 시청률 44.3%로 김 PD를 스타PD 반열에 오르게 만든 <여명의 눈동자>(극본 송지나)가 방영된다.
<여명의 눈동자>는 1940년대 일제의 강제징용 이야기와 8.15 광복, 부민관 사건, 제주 4.3사건 등의 이야기로 최고 시청률 58.4%를 기록하며 채시라, 최재성, 박상원을 인기 스타로 만들었다.
그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최재성과 채시라는 남녀연기상에, 박상원은 인기상, 김 PD는 연출상을 받게 된다. 또 채시라는 모교인 동국대학교 졸업식에서 ‘학교의 명예를 드높인 점’을 인정받아 민병천 당시 동국대 총장으로부터 공로상을 받기까지 했다.
그 후 김종학 PD는 MBC를 떠나 제작사 제이콤을 설립한 1995년, 전설의 드라마 <모래시계>(극본 송지나)를 만든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격동의 현대사를 세 명의 주인공을 통해 묘사한 <모래시계>는 평균 시청률 50.8%를 기록할 정도로 방영 기간 내내 대단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며, 당시 <모래시계> 방영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일찍 귀가해 거리에 사람이 없을 정도여서 ‘귀가시계’라고 불리기도 했다.
주연배우 최민수, 고현정, 박상원, 이정재 등 모두 최고의 스타로 등극했으며 그해 연말 연기대상에서 최민수는 대상을, 이승연은 여자 우수상을 받게 된다.
김 PD는 1999년 ‘김종학 프로덕션’을 설립한 후 2007년 <태왕사신기>(극본 송지나)를 통해 다시 한 번 입지를 굳히게 된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일대기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서사 무협 드라마 <태왕사신기>는 배용준, 문소리, 이지아 등의 출연으로 인기를 끌면서 시청률 35.7%를 기록했다.
배용준은 그해 MBC연기대상에서 남자 인기상, 베스트커플상, 대상을 수상했으며, 이지아 역시 여자 인기상, 베스트커플상, 여자 신인상을 수상했다. 김종학 PD는 공로상을 수상했다.
20여 년 인연 송지나 작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잘나가던’ 스타 김종학 PD에게 위기를 가져다 준 건 지난해 방송된 SBS 드라마 <신의>(극본 송지나)였다. 김희선, 이민호 주연의 <신의>는 최고 시청률이 15.8%를 기록하며 김 PD의 기존 작품에 비해 실패했다는 평을 받았다.
거기에 출연 배우 출연료 미지급 사태가 발생하면서 김 PD는 지난 5월 이와 관련 배임.횡령.사기 혐의로 피소됐으며 최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에서 조사를 받던 중이였다.
또 김 PD는 1995년 MBC를 나간 후 ‘제이콤’을 설립하면서부터 뛰어든 사업에서 계속된 실패로 인해 힘든 시간을 겪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이콤’은 결국 문을 닫았다. 이에 김 PD는 1998년 ‘김종학프로덕션’을 차리며 재개에 나섰다. 퓨어나노텍이라는 회사를 흡수합병하며 사업을 키워나갔으나 결국 2009년 김 PD는 자신의 이름을 건 ‘김종학프로덕션’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어 2005년 청암엔터테이먼트와 청암영상테마파크 두 회사를 차렸으나, 청암엔터테이먼트는 2007년에 청암영상테마파크는 지난해 폐업했다.
여러 차례 실패를 겪은 김 PD는 2010년 지인들과 함께 ‘김종학앤컴퍼니’를 설립했으며 현재까지도 김 PD는 김종학앤컴퍼니의 이사 직급을 맡고 있었다.
이렇듯 잦은 사업 실패와 드라마 <신의> 출연료 미지급과 관련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억울함에 괴로워하던 김 PD는 결국 지난 23일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어느 고시텔에서 연탄가스를 사용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드라마 거장과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죽음이었다.
김 PD가 남긴 유서에서는 최근 검찰 수사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를 엿볼 수 있다. 김 PD가 남긴 A4용지 4장 분량의 자필 유서에는 “OOO 검사, 자네의 공명심에…. 음반업자와의 결탁에 분노하네. 드라마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에게 꼭 사과하게”, “함부로 쌓아온 모든 것들을 모래성으로 만들며 정의를 심판한다? 귀신이 통곡할걸세. 처벌받을 사람은 당신이네. 억지로 꿰맞춰. 그래서 억울하이”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서울 아산병원에서 진행된 김 PD의 장례식에는 배우 나문희, 김영옥, 조형기, 변희봉, 임현식, 이정재, 안재욱, 명세빈, 유준상, 문소리, 박성웅 등 많은 후배 연기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특히 고현정과 배용준은 상주 역할을 자처하며 조문객들을 맞이하기도 했다.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잠을 깨면 '아, 이상한 꿈을 꿨어'라고 말할 것 같아요."
김 PD와 20년 넘는 인연을 이어온 송지나 작가가 남긴 글이다. 송 작가 뿐 아니라 김 PD의 드라마를 봤던 모든 시청자들의 심정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편 케이블채널 SBS플러스는 김 PD를 추모하는 특집방송을 준비했다. 김 PD의 대표작 <모래시계>를 29일부터 3주 동안 월~목요일 오후 8시 40분부터 2회 연속 편성했다.
“드라마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김 PD를 애도하기 위한 추모특집 방송입니다. 시청자들이 그의 대작을 보고 다시 한 번 진한 감동을 느끼기 바랍니다.”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