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함바(건설현장식당) 비리’로 구속됐다 지난 3월 출소한 유상봉(67)씨가 재차 경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유씨는 정관계 인맥을 동원해 전국적으로 함바 운영권을 따내고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하지만 그가 구치소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도 탄탄한 인맥을 활용해 자신에게 금품을 받은 인사들과 연락을 취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출소 후에는 형집행정지 기간에도 불구하고 ‘함바 운영권을 주겠다’고 속여 수십억 원을 챙긴 혐의로 경찰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유씨로부터 돈을 받은 청와대 전 직원이 파면되는 등 출소와 함께 ‘함바 비리’가 재현되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유씨가 과거 금전 거래가 있었던 현직 광역단체장 및 사립대 총장과 접촉을 시도하는 등 재차 거물급 인사들이 거론되면서 정치권을 긴장케 만들고 있다.
- 유상봉-사위, 盧·MB정부 검·경·청 ‘마당발’
- 형기마친 유씨, “믿는 구석이 있어 전국 다닌다”
올해 3월 1년 6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유상봉씨에 대해 경찰은 ‘함바 비리’관련 의혹을 다시 살펴보고 있다. 특히 그가 형기중에도 자신에게 금품을 받은 인사들과 서신왕래를 하면서 함바 관련 업무를 꾸준히 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금품’수수 청 직원 ‘몸통’은 따로 있어
특히 그가 출소하던 날에는 함바 비리 관련 피해자들로부터 해코지를 피해 BMW 세단이 교도소 입구앞까지 올 정도로 삼엄한 호위 속에 빠져나갔다. 그런 유씨가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출소하자마자 4~5월경에 일반식당 운영자 박모씨에게 접근해 ‘함바 운영권’을 두고 20여 억 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경찰이 긴급 체포했다. 하지만 경찰의 구속 영장 청구를 검찰이 기각하면서 유씨 사건은 수면아래로 가라앉는 듯 했다.그러나 7월15일 청와대 경호실 직원 박모(46)씨가 2010년 4~5월경 부적절한 돈을 받아 파면되면서 재차 부상했다.
박씨는 서기관급 직원으로 유씨측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그 대가로 세 차례에 걸쳐 1억2천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유씨를 잘 알고 있는 피해자 조모씨는 7월26일 [일요서울]과 통화에서 “우리가 알기로는 2000만원은 용돈이고 1억 원은 더 높은 사람을 주라고 준 돈인데 혼자서 독식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박씨는 ‘깃털’이고 ‘몸통’이 따로 있다”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사실 그동안 유씨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인사를 보면 관료 출신 고위직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유씨가 2011년 구속기소되기전까지 그와 연루돼 옷을 벗거나 곤욕을 치룬 사람들을 보면 배건기 전 청와대 감찰팀장, 강희락 전 경찰청장, 이철규 전 충북지방경찰청장,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 김병철 전 경북경찰청장, 이동선 전 전북경찰청장, 양성철 전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 이길범 전 해양경찰청장, 최영 전 강원랜드 사장 등 고위 공무원과 전.현직 경찰 간부가 대거 연루됐다.
특히 조모씨는 2011년 6월 자살한 임상규 순천대 총장관련 “업계에서는 유씨가 지명수배를 당할 때에도 순천대 총장이었던 임 전 농림부장관에게 친인척을 통해 40억 원을 내놓으라고 협박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특히 임 장관이 기획예산처 실장출신에 차관, 장관을 거치면서 인맥이 상당해 유씨에게 고위 공무원들을 많이 연결 시켜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임 전 장관의 자살 배경에 유씨와 ‘부적절한 관계’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임 전 장관은 참여정부 시절 승승장구했는데 기획예산처 실장을 시작으로 과학기술부 차관, 농림부 장관, 청와대 국무위원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마친 후 2010년 7월 순천대학교 총장으로 갔다. 조씨는 “유씨가 한창 잘 나갈 때가 2000년도 전후로 전국적으로 함바를 60여 곳 이상 운영을 한 적이 있다”며 “당시 유씨는 지인들에게 ‘검찰, 경찰, 청와대에 내 돈을 안 받은 사람이 없다’고 공공연히 자랑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그는 “유씨는 한 정권에만 줄을 대는 사람이 아니다”며 “이미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서울시장 시절부터 서울 시청을 들락거리면서 ‘시장 만나러 간다’, ‘부시장 만나러 간다’며 돌아 다녔다”고 회고 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정두언 의원은 유씨와 연루 의혹 관련 “2003년 서울시 부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사람의 부탁으로 유씨를 만난 적이 있다”면서 “그러나 브로커 분위기가 짙어서 그 후로는 상종도 하지 않았다”고 관련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유씨, “한 정권만 줄 대지 않아”
한편 조씨는 유씨의 사위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설도 제기했다. 그는 “유씨의 사위가 법무법인 서정에 다니는 오모변호사인데 한때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사위 역시 마당발로 정관계 인맥이 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한편 유씨 출소후 허남식 부산시장과 수도권 소재한 A 사립대 총장이 주목받고 있다. 허 시장의 경우 함바 비리 수사가 한창일 당시 유씨와 만남이 알려지면서 곤혹스런 처지에 놓였었다. 하지만 허 시장은 ‘중앙에 있는 사람의 부탁으로 두 세 차례 만났지만 청탁같은 것은 없었다’, ‘문제될 게 전혀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A 사립대 총장의 경우 2000년대 중반 대규모 빌딩을 세우면서 함바 운영권을 유씨에게 넘기는 대신 수억 원의 금품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다. 두 인사 모두 현직이라는 점에서 유씨와 연루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사회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킬 전망이다. 조씨는 전화통화에서 “유씨가 병보석과 구속집행정지 기간인 2011년에서 2012년 사이에도 허 시장을 찾아 다닌다는 소문이 무성했다”며 “주모씨, 최모씨, 김모씨 3인방이 최측근들로 활발하게 부산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씨는 이 과정에서 ‘내가 검찰에서 밝힌 것은 10%도 안된다’, ‘전부 불면 다 죽는다’, ‘다시 다 모여라’고 당근과 채찍 전략을 구사하며 돈 받은 인사와 측근들을 확실하게 단도리 했다는 후문이다. 나아가 조씨는 “유상봉 함바 비리 의혹 사건의 핵심은 최측근인 박모씨의 수첩이다”며 “유씨가 컴맹이라 수첩에 모든 것을 적어 놓는데 박씨 역시 그 수첩을 갖고 있어 경찰이 수첩을 입수할 경우 함바 비리 사건 후폭풍은 상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함바 비리 의혹 수사를 다시 살펴보는 경찰은 허 시장이나 정 의원을 포함해 두 인사가 ‘중앙에 있는 사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사람’의 부탁을 받아 만났다는 점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전 ‘함바 비리’ 검찰 수사에서는 여야 정치인이나 단체장, 전현직 장관 등이 유씨와 유착 의혹은 무성했지만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현직 국회의원, 장관, 단체장 드러나나
당시 실명으로 거론된 정관계 인사들을 보면 민주당 J 의원,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L 의원, 공기업 K사 C 사장 등이 ‘유상봉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또한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의 또 다른 여야 의원 2~3명과 공기업 C사 전 사장 J씨의 이름도 오르내렸다. 동생이 유씨와 1억5000만원가량의 돈거래를 한 현직 장관 L씨와 전직 차관 M씨의 이름도 거론된 바 있다. 경찰이 검찰 수사가 종료된 함바 비리 의혹 사건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을지 검찰과 정치권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mariocap@ilyoseoul.co.kr
대형 함바집 얼마나 버나
- 화력 발전소 현장 월매출 6억원 거뜬
함바집은 ‘노무자들의 합숙소’라는 뜻의 일본어 함바 ‘飯場(はんば. 반장)’에서 유래한 말로 ‘건설현장의 식당’을 일컫는다. 검찰수사에서 함바집 브로커인 유상봉씨가 함바집 운영권을 따내기 위해 실력자를 동원해 상당한 로비를 한 혐의에서 드러나듯 건설업계에서 함바집은 상당한 이권을 가진 업종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경쟁이 치열한 일반 식당과 달리 함바집은 공사장 내 인부를 상대로 한 독점 운영권을 얻기 때문이다. 함바집의 한 끼당 식대는 통상 4천원 안팎으로 하루 3끼 식사와 오전, 오후 두 차례의 참까지 합치면 인부 한 명당 최소 하루 2, 3끼의 식사를 하게 된다.통상 인부가 500명 정도인 1천 가구의 대형 아파트단지 건설현장의 함바집 순수익은 연 2억, 3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공사기간이 2, 3년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이익이 보장된다.
예를 들어 한 도시에 500가구 규모의 택지개발 공사 현장에 있는 함바집의 사례를 살펴보자. 이곳에서 일하던 건설인부들은 400명 남짓. 함바집이 치르는 식객은 비오는 날 등 휴무일을 제외하고도 연간 14만 인분 수준이었다. 끼니당 3천500~4천원을 받을 경우 연 5억6천만원의 매출이 생긴다는 게 함바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유씨가 눈독을 들인건 당진·보령 등에 들어설 화력발전소와 가스저장시설들이다. 이들은 하루 공사장에 투입되는 인력만 어림잡아 3000~4000명 정도인 대규모 현장들이다. 한 끼당 5000원으로 계산해 3000명이 하루에 두 끼를 먹으면 매일 3000만원의 매출이 발생하고 한 달(20일 기준) 매출이 무려 6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공사 기간도 몇 년이 걸린다는 점에서 몇 백억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1997년 말 IMF 직전까지 지역 건설업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에는 우방, 보성, 청구 등 전국적인 명성을 가진 지역 업체들의 건설공사가 많아 지역에서도 ‘합바집’이 큰 호황을 누렸다. 과거 한 기업인은 함바집을 운영하면서 건설 공사를 배우기 시작, 나중에 대형 건설회사를 세운 '함바집 신화'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철>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