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LH공사 이상한 미술품 심사
[단독] LH공사 이상한 미술품 심사
  • 박시은 기자
  • 입력 2013-07-29 10:18
  • 승인 2013.07.29 10:18
  • 호수 1004
  • 2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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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 조형물 ‘표절이다’ vs ‘아니다’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LH공사가 입주민들 눈치 보기에만 급급해 위례지역본부의 미술작품공모전 당선 결과를 번복한 정황이 포착됐다. [일요서울]은 이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조각가 정기웅(43)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술작품 공모전의 허술함을 파헤쳐봤다. 조각가 정씨는 지난 4월 건축 미술작품 공모전에 당선됐지만 입주민들이 ‘자기표절’로 문제를 제기해 당선이 취소됐다. 그는 “부당한 결격사유로 일방적인 취소 통보를 받았다”고 말하며 LH공사를 상대로 소송에 들어갔다. 정씨는 인터뷰에서 “LH공사의 행태가 문화예술계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한 채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의 심사 기준을 두고 표절문화를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각가-입주자 애매한 심사 기준에 날선 대립
외부세력 결탁·표절문화 조장 등…루머 돌아

LH공사의 이상한 공모전 심사 의혹엔 많은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다. 갑 위의 또 다른 갑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을은 ‘시어머니에 시할머니까지 생긴 격’이 돼 그저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LH공사는 단지 내 미술작품 설치를 공개 공모를 통해 시행하고 있다. 조각가 정씨는 지난 3월 진행된 위례신도시지역본부의 건축 미술작품 공모전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돼 가계약까지 마쳤다. 하지만 일부 입주민들이 정씨를 향해 ‘자기표절’을 했다고 주장하며 작품이 ‘혐오스럽다’는 등을 이유로 집단 반발을 유도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4월 26일 심사에 참여한 입주민 중 일부가 입주민카페 게시판에 ‘미술작품 심사에 다녀왔다’는 제목으로 정씨의 작품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당선 공고가 난 30일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민원제기를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정씨 측에 따르면 카페 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일부가 LH공사 홈페이지를 비롯한 각종 사이트에 민원을 제기해 분위기를 선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심사에 참여하기 전부터 미술작품을 심사할 입주민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이 왔다는 내용의 글을 기재해 해당 입주민이 외부 세력과의 결탁이 있었으리라는 의혹도 쉽게 무시할 수 없다.

보통 미술작품 공모전은 최종 결과 발표 전까지 보안 유지를 하는 것을 기본 지침으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심사위원들은 서약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례신도시 공모전 심사는 진행 당일 심사에 참여한 입주민들이 작품에 대한 내용을 유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았다. 오히려 이의를 제기하는 정씨에게 “소송으로 해결하라”는 답변을 보냈다. 뿐만 아니라 최초 당선 통보 이후 당선작품 결격 사유에 대해 모든 검토가 끝난 상태였음에도 민원 등의 이유로 일방적으로 당선 취소 및 계약을 파기했다.

▲ LH공사 아파트 단지 내 조형물 공모전에서 논란이 된 강원지역본부(사진 왼쪽) 작품과 위례신도시 작품.

결격사유 없이 당선 확정 됐지만…

입주민들은 정씨의 당선 작품이 LH공사 강원지역본부에 설치되는 정씨의 또 다른 당선작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자기표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씨는 “당선 연락을 받았을 때 LH공사로부터 타 지역본부 당선 사실이 있으므로 중복 유사작품 등 결격사유의 검토를 위해 작가경력서 및 당선작가 서약서를 제출하라는 요청이 있었다”며 “당시 요청받은 자료 외에 비전문가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작가 의견서까지 작성해 두 작품이 ‘연작’이며 어떠한 결격사유에도 해당하지 않는 것을 확인받고 가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그는 주민들의 반발이 일어나자 담당자로부터 “‘계약까지 체결하긴 했지만 민원이 집단적이고 강렬해 당선 취소 가능성이 크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담당자는 민원으로 인한 업무 차질을 설명하며 조심스럽게 정씨 스스로가 ‘포기’할 의사가 없는지를 물어봤다고 밝혔다. 그는 “작품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당선을 포기하면서까지 자기표절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LH 측은 위례 공모전 이전에 당선됐던 강원지역본부 당선작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일방적인 당선 취소 조치를 취했다.

이 과정에서 LH 측은 다시 자체 심의를 열었지만 해당 작가의 의견을 비롯, 문제가 없다고 검토됐던 자료와 미술협회에서 문제가 없다고 했던 답변서 등은 모두 심의에 반영하지 않았다.

정씨는 “개인적인 억울함보다 미술 공모전 절차의 잘못된 점을 제기해 잘못된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아 인터뷰를 하게 됐다”고 밝히며 공모전의 문제점들을 짚어냈다.

현재 LH공사 공모전의 문제점은 심사 조항이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점이다. 지침서에 표기된 작품의 결격사유는 ▲기성작가의 작품을 모작, 표절한 경우로 법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 ▲미술작품 설치 확인서 및 중복응모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을 때 작품의 형태·재료·규모가 모두 같거나 작품의 형태는 같고 재료 혹은 규모가 다른 경우, 작품의 형태·재료·규모가 상당히 유사한 경우 등으로 나타나있다.

‘상당히 유사하다’는 표현은 추상적인 표현이다. 때문에 정씨는 “회사 측이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말을 바꾸고 이용할 수 있는 조항”이라고 이의를 제기하며 “모작을 막기 위한 조항을 연작에도 같이 적용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 “20세 이상 대한민국 국적만 있으면 공모전에 참여할 수 있어 암암리에 가족이나 지인의 이름으로 중복 응모하는 경우도 많더라”고 털어놨다. 정씨는 “회사 측에서는 법적 분쟁만 없다면 이를 문제 삼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실정이다”며 “한 작가의 작품 세계는 무시하고 표절을 묵인하는 건 대놓고 표절을 하라고 부추기는 셈이다”고 주장했다.

당선 취소 염두 해 둔 심사 조항

일례로 정씨가 최근 타 지역 공모전 당선작이 기성작가의 작품을 표절한 것으로 의심돼 이의를 제기했으나 LH 측은 “소송 제기가 없다”는 이유로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이처럼 LH공사는 입주민들의 입김이 무서워 자사가 추진하는 사업을 시행하는 기준에 일관성이 없고, 일각에서는 LH 측이 문제가 일어나도 “차라리 소송을 걸어와서 법정에서 난 결론을 따르는게 마음 편하다”는 식의 방조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씨는 “자신의 입장에서 갑에 속하는 LH공사부터 그 위의 또 다른 갑인 입주민들까지 모두 집단이 나서서 힘없는 개인을 짓밟는 처사”라고 말했다.

한편 LH공사 측은 “이번 문제가 불거지면서 법률사무소 3곳에 자문을 맡겼지만 3곳 모두 유사성이 있는 작품이 당선된 사실을 알리지 않은 작가의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규정에 따라 문제없는 판단 절차를 진행해 공정하게 판단했다”고 정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정씨가 제출한 자료는 왜 심의에 반영되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미술협회에도 공식적인 답변을 줄 것을 문의했지만 ‘의견을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었고, 정씨가 받은 답변서 얘기도 금시초문”이라고 답했다. 또 애매모호한 지침서 조항이 지원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법적 분쟁만 없다면 관대한 처사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작은 법적 분쟁이 없다면 회사 입장에서 어쩔 도리가 없다”며 “이번 문제는 ‘유사성’의 문제기 때문에 모작의 개념과는 다른 범위에 놓고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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